'애노'

. . 노무현 대통령, 그 짧고 강렬한 추억 1996년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는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재야 단체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었다. 전농, 민주노총, 한총련, 전교조, 전국빈민연합 등 우리나라 재야 단체를 총 망라한 연합 본부인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에서 인권위원회 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 인권위 부서에는 참여정부 법무부장관을 지낸 천정배 변호사를 비롯하여 전 현직 국회의원인 전해철, 임종인, 이종걸, 유선호, 부좌현 등 인권 변호사 23분이 인권위원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한편 당시 내 업무는 학생과 재야인사들이 민자당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싸우다가 체포되면 이들을 위해 인권 변호사를 지원하거나 법률적 집단 대응을 위한 연대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이런 문제를 상의하고자 지금도 열정적인 인권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덕우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동의 해마루 합동법률 사무소를 찾았다.  그런데 도착해 사무실 유리문 너머로 해마루 안을 얼핏 보니 매우 어수선했다. 누군가가 새로 입주를 하는 듯 소파와 책상, 그리고 책 뭉치를 든 이들로 분주했다. "날을 잘못 잡고 왔구나" 싶어 후회했지만, 그래도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였다. 그렇게 짐을 들고 부산하게 움직이던 일행 중 낯익은 한 사람이 보였다. 바로 정치인 노무현이었다. 내가 처음 정치인 노무현을 각인하게 된 때는 1989년 12월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그해 말, 광주 민주화운동 마지막 청문회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자리에서 당시 노무현 의원은 '자위를 위한 정당한 발포' 운운하는 전두환을 향해 명패를 집어 던졌다. 그 정의로운 분노에 나는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이후 노무현 의원의 정치적 행보는 순탄하지 못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통일민주당의 총재 김영삼이 3당 합당을 결정한 후 "통합에 대해 이의 없냐"는 형식적 물음과 동시에 방망이를 내리치자 "이의 있다"며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으로 혹독했다. 이어진 선거 낙선 행진. 92년 부산에서의 총선 실패,  95년 부산시장 낙선, 연이어 96년 서울 종로에서 그는 또 낙선했다. 그래서 붙게된 그의 별명은 '바보 노무현'이었다.  사람들은 노무현이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니 충분히 잘 견디었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연이은 3번의 낙선 앞에 당시 노무현 의원도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내가 해마루에서 우연히 그분을 뵌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연에 의하면 1996년 총선 당시 종로에서 맞붙은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에게 또 다시 패배하자 노무현 의원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결국 고민 끝에 노무현 의원은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접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해마루 대표 변호사였던 이에게 전화한 노무현 의원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해마루로 합류할 수 있겠냐"고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내가 그 분을 뵌 날은 그렇게 사무실로 새로 입주하기 위해 이삿짐을 부리던 중이었던 것이다. . . .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95009

모바일앱 ・ 코스프레 ・ 채식요리 ・ 원예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