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의혓바닥>. Who wants to live forever.

좋아하는 영화 중에 '블레이드 러너'와 '하이랜더'라는 영화가 있다. 시간을 테마로 하는 이 두 영화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시간의 의미를 전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유한한 시간을, '하이랜더'는무한한 시간을 플롯으로 한다. 벌써 15년이나 전에 본 영화임에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몇 장면. 이후 그보다 더 슬픈 테마를 접한 적이 없다. 무한한 시간과 유한한 시간이 만나는 접점에는 본질적인 슬픔이 담긴다.인간이 가장 직면하기 힘들어 하는 바로, 영생과 죽음의 문제가 그것이다.

1982년도 작품인 '블레이드러너'를 나는 97년 정도에 보았다. 그때만 해도 15년이나 이전에 만들어졌었는데, 지금으로부터 따져보니 무려 33년 전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본 '블레이드 러너'는 지금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아니 현재의 영화를 뛰어넘는플롯과 표현주의적 미장센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주인공 헤리슨포드는'블레이드 러너'라는 사이보그인간 사냥꾼이다. 돈있는 자들은 우주의 개척지로 모두 떠나고 지구는 거대한 할렘으로 전락했다. '리플리컨트'라고 불리우는 인조인간은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 인간과 똑같지만, 위험성을제거하기 위해 수명이 4년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창조주와 창조물로 빗대어진 인간과 인조인간. 그러나 인간은 오로지 식민지 개척과 위험한 임무 수행을 위해 인조인간을 사용할 뿐이다. 리플리컨트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생각을 하고감정을 느끼는 한, 활용이 아닌 존재 자체로서 살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숭고한 본능이다. 데카르트도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들의 반란은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노예해방의 역사, 독립운동의 역사.인간의 역사 또한 존재 자체로 살고자 하는 투쟁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인간처럼 오래 살고싶어하는 그들의 바램은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은유한다. 이번에 다시 본 '블레이드러너'에서 특히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다. 리플리컨트임을 구분하기 위한 테스트에서의 질문. '어릴적 엄마는 어땠습니까.' 리플리컨트들은 당황한다. 4년을 사는 사이보그는 3, 40년의 기억의 축적을 흉내낼 수가 없다. 존재란 기억의 축척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고유의 기억을 축적하고 사는 존재들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리플리컨트, 베티는 말한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봤어( "I've seen things you peoplewouldn't believe.) 오리온 전투에도 참전했었고,(Attack ships on fire off theshoulder of Orion.) 탄호이저 앞에서 빛나던 바다도 보았지. (I watched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이 모든 순간들이 이제 사라질거야. 이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다.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Time to die.") 자신을 죽이려던 블레이드러너를 구하고, 죽음의 시간을 맞이하는 베티의마지막 대사는 '블레이드 러너'를 내 인생의 영화로 자리매김해놓았다. 우리도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다. 이 모든 모멘트들이 빗속의 눈물처럼 사라지는 죽음의 순간이 우리에게도 온다. 언젠가는.

진시황은 영생하고 싶어서 안달복달을 했지만, '하이랜더'의 주인공 맥클라우드는 불사조이다. 그렇다면 죽지 않고 영생을 사는인생은 행복할까? 스스로가 불사조인지 알지 못했던 시절, 맥클라우드는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사랑하는 여인 '헤더'와 일생을 보냈으나, 늙어가는 연인의 곁에서 그는 늙을 수 없다. 여전히 젊은 그의 품안에서 할머니가 되어버린 연인이 세상을 떠나던 날, '헤더'는말한다.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내가 죽거든, 매년 촛불을 켜서 나를 기억해 주세요." 그 위에 깔리던퀸의 노래 'who wants to live forever.' 어느 사진자료에서 허연 백발의 노인이 2차대전 참전기념 행사에 홀로앉아 있는 사진을 보았다. 동기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마지막으로 떠날 날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처연했다. 어떤 노인의 글에서 늙어서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늙어서 모두가 죽을 때까지 죽지 않는 것이 더 두렵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영생을 얻는 대신 절대고독을 선물 받는다면, 영생은 저주일까 축복일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수 없다면 영원한 삶이, 천수를 누리는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람은 살아 있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을 나눌 수 있기에 행복한존재가 아닐까. 검은 코트를 입고 성당에서 촛불을 바라보던 맥클라인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먼저 늙어 죽어버린 연인을 기억하며, 450년동안 촛불을 켜는 그의 영생은 영원한 슬픔이었다. 같이 늙어가고 더불어 죽을 수 있음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아이러니. 삶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것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영원히 살기를 바라는가.

짧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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