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소년의 이야기_우리동네 목욕탕_20160219

낯선 곳이 익숙해졌다고 느끼는 일들이 있다. 내게는 그 지역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과 대중목욕탕을 가는 것이 그렇다. 이사든 여행이든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아무래도 걷는 일이다. 소위 말하는 '동네탐방'을 하며 이곳에는 뭐가 있고 저곳에는 뭐가 있는지…. 앞으로 내 삶을 꾸려나가야 할 곳 주변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어느 정도 사정 파악을 마치고 나면 그제야 전철이나 버스를 탈 수 있다.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내가 주로 가는 곳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길 헤매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길을 잃는다는 건 여전히 무서운 일이니까. 그리고 걷기에는 부담이 있어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활동반경을 넓힌다는 의미도 있다.

대중교통은 그럴 듯한데 목욕탕은 왜일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사실 목욕탕을 가는 일은 흔하다.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간다거나 친구와 술 한잔을 하고 딱히 잠자리를 구할 수 없어 가까운 사우나를 찾게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 집에서 동네 목욕탕을 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동네'라는 말이 붙기 때문이다. 집 안에 빈둥거릴 때 그 복장으로, 언제든 마음 내킬 때 슬리퍼 질질 끌면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비로소 우리 동네가 된다. 그 경계는 처음 이사 왔을 때 집 근처 슈퍼를 동네슈퍼로 부르게 되는 것과 비슷한 어디쯤이다. 어쩌면 안면이 익었을지도 모를 동네 주민을 민낯과 맨몸으로 마주하게 되더라도 상관이 없는 순간이기도 한 것 같다. 아니다…. 아무래도 그건 그냥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 목욕탕을 갔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 6개월, 반년만이었다.

핸드폰과 지갑을 모두 두고 만 원짜리 한 장만 꺼내 들어 집 밖으로 나왔다. 가장 가까운 목욕탕은 동네에서 나름 큰 상가건물의 6층에 있다. 입욕 비는 6천 원. 대중탕이 워낙 오랜만인지라, 그리고 대부분 돈은 아빠의 주머니에서 나온지라 비싼지 싼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다만 5천 원이었으면 돌아가는 길에 거스름돈으로 국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기분 좋게 목욕하고 나와서 다시 내 손으로 밥을 해야 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이냔 말이다.

늘 그렇듯 바지와 팬티를 한 번에, 겹겹이 껴입은 상의를 또 한 번에 벗어버렸다. 체중은 71kg. 조금 더 줄여야겠다 생각하며 적당히 김이 서린 두꺼운 유리문을 열었다. 평일 오전인지라 그런지 탕은 한산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어르신들만 몇 분 드문드문 계셨다. 그래서일까 물이 아주 깨끗했다. 떼는커녕 먼지 하나 떠 있지 않았다…. 라고 하면 거짓말 같겠지만 그 정도로 좋았다. 열탕도 아닌 온탕에 들어갔지만, 몸이 차가운 탓인지 몸을 깊숙이 담그지 못했다. 급할 것 없다. 그저 천천히 천천히 물과 나의 온도를 맞춰나간다. 따뜻했다. 가만히 눈을 감아보니 괜스레 몸까지 노곤해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온다. 어허~ 어허~ 어허~ 어르신들의 사자후가 들려온다. 왠지 '청~사아~~~안'이어야 할 것 같았는데…. 굳이 눈을 뜨고 보지 않아도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목욕탕에서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했었다. 이제는 빙긋이 웃는다. 그런 것이 한두 개였을까. 술 한잔을 넘기고 나서 내뱉는 캬…. 뜨거운 걸 먹었는데 시원하다 하질 않나…. 하다못해 피곤하다는 말도 도대체 어떤 느낌인건지..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하지만 어린 날의 내가 알 수 없었던 그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세상에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보기보다 많다. 이런 걸 자연스럽다…. 라고 하는 거겠지. 나이 들어 늘어질 대로 늘어진 불알도, 등허리의 어디쯤인지 뭔지 전혀 구분할 수 없는 평평해져 버린 엉덩이도…. 서글프기보단 다 그런 거겠지 싶은 거다.

면봉으로 귀를 후비고 머리를 말리고 목욕탕을 나선다. 맞이하는 찬 공기가 싫지 않다. 샤브작 샤브작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근처 방앗간에서 기름 짜는 냄새가 고소하다. 마침 점심때가 되었다. 주머니 속 4천 원을 꼭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지만 그 돈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밥집은 보이지 않는다. 에라이 집에 가서 뭐 해먹을지나 고민해보자. 무엇이든 배부르게 먹고 늘어지게 누워 방귀나 뿡뿡 뀌면서 글이나 써야겠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86년에 태어난 대한민국 보통 남자. 작년에 가출 겸 독립을 했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만 하루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읽기와 쓰기. 가장 노력하는 것은 내 삶의 주인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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