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흠 선생 묘소

[네이버 지도] 장성군 삼계면 내계리 산39-1 http://me2.do/Ig8xPTUR 송흠(宋欽), 1459년(세조 5) ~ 1547년(명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흠지(欽之), 호는 지지당(知止堂)·관수정(觀水亭). 영광 출신이다. 참판 구(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좌랑 처은(處殷)이고, 아버지는 문소전참봉(文昭殿參奉)가원(可元)이다. 어머니는 생원 정필주(鄭弼周)의 딸이다. 1480년(성종 11) 사마시에 합격하고 149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있다가 연산군의 포학한 정치로 물러난 뒤 후진 교육에 전심하였다. 1516년(중종 11)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로 복직, 저작(著作)·박사·수찬(修撰)·정언(正言)·헌납(獻納)·병조정랑·전라도도사·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528년 담양부사, 1531년에 장흥부사를 지내고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전주부윤으로 전임, 뒤에 광주목사·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노모의 봉양 외에는 처자와 노복이 굶주림과 추위를 겨우 면할 뿐, 벼슬이 갈려 돌아오는 날에는 집에 한 섬의 곡식도 없었다 한다. 가는 곳마다 청렴하기로 소문이 나서 상사(賞賜)를 받았다. 1534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나, 다시 노모를 위해 왕의 특허를 받고 집에 돌아갔다. 101세를 산 노모로 인해 전후 7회에 걸쳐 효렴(孝廉)으로서 상을 받았다. 1538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고, 그 뒤 한성부우윤·이조판서·병조판서·우참찬 등을 역임, 1534년 판중추부사 겸 지경연사에 이르렀다. 기묘사화 뒤에는 한때 시냇가에 정자를 짓고 ‘觀水亭’이라는 액자를 걸어서 자기의 뜻을 붙였다. 수학(數學)에 정통했다고 한다. 영광의 수강사(壽岡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右旋水,木局未破口,借庫消水自生向,壬子(旺方)得水,坤申向(生方),丁未(養方)破水,艮坐坤向,旺來生養(浴來絕墓)。(61O)

온터풍수지리 010.5824.2120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