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2주 동안 휴가차 사무실을 비웠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 흔히 하는 일들을 했다. 책상 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기사를 몇 개 마무리 지어놓고, 이메일에 ‘부재중’ 설정을 했다. 부재중 자동응답 메시지는 이랬다. ‘저는 2주 동안 휴가를 갑니다. 이메일이 오더라도 ‘절대로(이 부분에 밑줄을 쳤다)’ 답하지 않을 겁니다.’ 자리를 비운 동안 대신 연락할 연락처도 남겨놓았다. 하지만 ‘플러그를 뽑아놓으려는’ 이런 노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고 뜨면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저항해보려고 했지만 금세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메시지를 확인하고 말았다. 하루인가 이틀 전에 이메일을 보내 놓고 내가 답이 없자 후속 이메일을 또 보낸 경우가 적어도 너댓 통은 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발신자가 이메일을 보낼 때는 이미 내가 설정해놓은 이메일 ‘부재중’ 자동응답이 작동하기 시작할 때였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내가 휴가 중이라서 응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 중 한 명은 자동응답 부재중 메시지를 받고도 내 개인 휴대전화로 문자까지 보냈다. 자기가 해야만 하는 얘기가 너무 중요하다고 확신했나보다(읽어 보니 별로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다). ‘부재중’ 메시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 올 초 뉴요커에 실린 한 칼럼은 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사람들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다고 말해놓고 실제로는 확인하기 때문에 ‘연락을 받지 않겠다’는 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지 않다. *스마트폰을 꺼라 스마트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고 뜨면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차라리 스마트폰을 아예 꺼놓으면 누군가가 연락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것이다. *휴가 중에 보낸 이메일은 다 삭제하겠다고 알려라 톰슨로이터스에서 자산관리 관련 기사를 쓰는 로렌 영 기자는 이메일 부재중 설정을 할 때 자동응답 메시지를 ‘휴가에서 돌아와서 읽지않은 이메일이 수천 통이나 되는 상황을 피하기위해 휴가 중에 수신된 이메일은 전부 삭제할 수도 있다’고 써놓는다고 한다. 영 기자는 ‘정말 중요한 이메일이라면 내가 휴가에서 돌아왔을 때 다시 보내라’고 부탁했다. 영 기자는 “답장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몇 천 통이나 되는 이메일 중에서 어떤 것은 답장하고 어떤 것은 답장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 기자는 자동응답 메시지를 무시하고 보낸 이메일은 삭제해달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며 “응답을 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메일을 꼭 보내야 한다면 제목에 내용을 압축하게 하라 관리자와 동료는 여러분이 휴가를 간 기간에는 그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관리자나 동료가 휴가를 갔을 때 여러분이 그들의 시간을 존중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관리자나 동료가 여러분이 휴가를 간 동안 어쩔 수 없이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내용을 제목에 압축해서 적으라고 부탁하는 게 좋다. 가령 바로 답장을 할 필요는 없으니 휴가에서 돌아와서 답해도 되는 이메일 제목에는 ‘NNTR(No Need To Repond)’을 넣는다. 또한 ‘제목이 곧 내용’이니 이메일을 굳이 열어볼 필요가 없을 때는 ‘제곧내’라는 약어를 쓴다. (‘제곧내’는 ‘사원증 찾았어’나 ‘누가 찾아왔었어’라는 내용을 전달할 때 편리하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지하라 ‘스마트폰 끼고 자기(Sleeping With Your Smartphone)’라는 책을 집필한 레슬리 펄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휴가 중에 온 메시지에 답하지 않고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겸손함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휴가를 가기 전에 자신이 하던 업무를 동료직원에게 맡기고 나서 내가 자리를 비워도 회사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나면, 앞으로 펼쳐질 휴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