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과 결핍의 사이에서

*위의 사진은 군산 해저에 침몰한 일본 화물선에서 나온 중화민국과 홍콩의 주화입니다.

군산의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었던 '군산 근대건축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족함과 결핍의 사이에서 만나는 돈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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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31일 밤, 꼭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었던 그 밤의 자정이 지나고 먼 미래 같았던 2000년이 시작되었다. 2000년 1월 1일 00:01... 시간은 변함없이 1999년과 똑같이 시작되고 있었고, TV에서는 '밀레니엄 베이비'의 타이틀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 '특별한' 아기들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1999년 1월 1일의 시작과 1998년의 1월 1일의 시작과 별 다를 바가 없는 2000년의 시작은 약간 허탈하기까지 했다. 어느 종교 집단의 말처럼 휴거를 기대한 것도 세상의 종말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왠지 2000년대는 1990년대와 다를 거 같았다. 손가락만 튕기면 SF영화에 나오는 먼 미래의 모습으로 마법처럼 바뀌어 있을 거 같았지만, 그로부터 16번의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모습처럼 바뀌지는 않았다.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씩 달라지는 작은 것들에 익숙해져서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다.

얼마 전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들처럼 아날로그가 익숙한 나는 삐삐에서부터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지나오는 변화를 온전히 경험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단 1년 사이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부터 120여 년 전에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만 보아도 그 시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언더우드 부인의 결혼은 1889년이었고, 매티 노블의 일기는 1892년이다. 이 당시만 해도 조랑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으므로 "돈"은 그 무게만으로도 "짐"이 되었다. 조선을 여행하기 위해 달러를 조선의 돈으로 바꾸어야 했던 서양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돈의 무게"때문에, 여행 경비를 실을 말과 마부까지 필요했다.( 그 후 당오전, 당백전등의 발행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화폐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1890년쯤의 돈의 무게는 20달러만 되어도 짐꾼이 필요할 정도로 무거웠다. 부가 짐이 되는 것이다.

2016년 지금, 오늘의 돈의 무게는 몇 kg일까?

"0"이다.

DOS에서 window 10으로, 공중전화에서 삐삐(무선호출기)를 거쳐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동안 우리의 지갑 속도 달라졌다. 우리의 지갑은 현금 대신 카드로 채워졌다. 그리고 또다시 달라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전자거래와 비트 코인, 오프라인에서는 신용카드를 벗어나 스마트폰의 앱을 통한 결제는 또 다른 세상이다. 실물 카드도 통장도 필요 없는 온라인은 SF영화에서처럼 카드도 스마트폰의 앱조차도 필요 없는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예감하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 실제로 보이지 않는, 만질 수 없는 화면상의 숫자에 불과한 돈이지만 우리가 느끼는 진짜 무게도 "0"일까?

조선시대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 시절엔 미친 소리였겠지만 우린 물을 사 먹는다. 집에서 쓰는 물에도 수도 요금을 내며, 버리는 쓰레기의 양만큼, 내가 가진 것의 가치 만큼 세금을 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돈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할수록 더 '고급진' 것을 얻으며, '흙수저', '금수저'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우린 '돈'에 민감해졌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도,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단지 명품을 위해 몇십 배나 되는 돈을 쓰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이유이든 각자 다르겠지만 "만족"을 위해서라는 것만은 같을 것이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신조어, 부족함과 결핍, 지나침과 넘침, 무소유와 욕심, 자급자족과 물물교환, 돈의 가치 대해 나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고민했다. 나 역시 돈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하나의 "인간"이기에 억지로 포장하거나 이상적인 말을 싶지 않았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말이다.

망설이던 나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 글을 쓰던 밤, 그녀는 내가 있었던 24시간 롯데리아에서 나의 건너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여러 개의 장바구니와 여행용 가방을 들고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은 채 팔짱을 낀 채 앉아서 잠이 들었다. 그녀의 개인적인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단지 그녀의 피곤한 며칠간의 길 위에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거나 정말 돈이 없었기에 가장 저렴한 곳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명절의 아이들과 식구들의 번잡함을 피해 온 곳에서 그녀를 만난 나는 덕분에 글을 마저 쓸 수 있었다.

1895년을 살았던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가난하고 불편한 삶을 살았지만, 우리보다 더 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시대는 땅과 자연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자급자족적인 삶의 비중이 더 컸으며 모든 것이 돈으로 지불되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6년을 사는 우리에게 "돈"은 "필요악"이다.

현대 사회는 "돈"이 지나치게 모자라면 삶을 영위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 먼저 살아남고서야 그 이후에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돈"은 생존의 필요조건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생존이 아니라 "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생존이었으며,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잊고 있다.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이었지만, 이제 돈 그 자체가 목적이고 행복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었던 돈이 목적이 되고, 돈에게 지배당하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원했던 삶을 살 수 없다.

플라톤의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을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자기가 생각한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겨뤄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절반만 박수하는 말솜씨

라고 했다.

플라톤은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을 꼽으며 , 적당한 "부족함"은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알게 해주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지나치게 부족하다면 그것 또한 고단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그녀처럼 말이다.

그녀는 고단해 보였다.

새벽에 내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 그녀는 앉은 자세로 가방을 끌어 앉은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돈이던 다른 무엇이던 부족함이 지나쳐 결핍이라 말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른다면 우린 결코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며, 오히려 더 그것을 원하고 갈망하게 될 것이다.

2016년의 돈의 실제 무게는 "0"이지만, 지금의 사람들이 느끼는 돈에 대한 마음의 무게는 조랑말에 싣던 그 무게보다 절대 가벼울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1895년을 살았던 사람들보다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더 행복한 것일까?

1895년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유와 편리함과 풍족함을 누리는 우리는,

어쩌면 "부족함"을 모르며 "부족함"으로 인한 "불편함"도 참을 수 없는 지도 모른다.

부족함이 "결핍"된 지금, 2016년을 사는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겠다.

돈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진짜 행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림책을 만드는 서랍엄마와 미술치료사인 창문아빠의 그림책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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