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을 보고

1. 일제의 만행을 어찌 말로 다 할까. 그 지독한 체험을 어찌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영화 귀향은 우리가 교과서나 다큐에서 접해 익히 알고 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오히려 더 잔혹한-문신을 제멋대로 새겼다던가, 불꼬챙이로 성기를 쑤셨다던가, 혹은 칼로 난자를 하거나 자궁적출도 서슴치 않았더라는- 사실들은 영상화 하지 않았다. 그건 피해 할머니들과 배우들을 위한 배려일 거라 가늠해본다. 스탭 입장에서도 도저히 용기를 내기 힘들었으리라. 이러한 일제의 잔혹한 만행은 '폭력'의 차원을 넘어선 악, 그 자체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제국의 논리에 자신들의 욕망을 덧씌워 악마가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되는 건 언제나 어리고 여린 이들이다.

2. 영화는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할머니는 열일곱에 붙들려 가 꼬박 삼 년을 지옥에서 지냈다. 스물 남짓 나이에 그곳에서 벗어났지만 그 기억에서는 그렇지 않았을 거다. 그건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한 추측이다. 강 할머니에 비할 바야 아니지만 나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사실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흔한 약자 중 하나였다. 뺨을 맞고, 부르면 가고, 하기 싫은 일도 시키면 해야했다. 핸드폰 벨소리는 그 놈이 부르는 소리같아서, 아직도 나는 진동으로만 해놓는다. 폭력의 기억은 생각보다 질기다. 지긋지긋하다. 이제 괜찮다 싶다가도 불쑥 나타난다. 그리고 생각보다 생생하기도 해서, 불쑥 나타난 그런 기억 때문에 벌벌 떨기도 한다. 고작 학교에서의 괴롭힘 정도인데 말이다.

3. 그런 기억을 나는 아직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놈은 그런 대로 잘 살고 있을 테고 죄책감은 없을 테다. 그렇다고 나는 그 놈을 찾아가 탓하거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거다. 그럴 만큼 괴롭진 않으니까, 용서는 아니어도 죄를 물을 생각은 없다. 그런데 강 할머니는 다르다. 강 할머니와 같은 피해자들은 다르다. 그 분들은 악마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고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 꼭, 그래야 한다. 꼭, 그래야 하건만, 세상은 우리 뜻과는 달라서 그 분들의 아픔은 씻겨질 기미가 없다. 일본 자위대 전승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질 않나, 거길 좋다고 찾아가는 국회의원들이 있질 않나, 아니, 대통령부터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일제에게 죗가를 묻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픈 상처가 씻겨져야 할 할머니들을 더욱 더럽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귀향에는 씻김굿이 등장한다. 굿으로나마 할머니들의 한을 씻겨주려 한다. 한풀이가, 그리 시원치는 않다만, 그게 어딘가 싶다.

4.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 나면 조금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야기 구조가 엉성한데다 인물들이 평면적이다. 등장인물마다 숨겨진 이야기를 다 꺼낼 순 없었을 거다. 그래서 아쉽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분주히 오가지만 부드럽게 잇진 못한다. 물론 몇몇 장면은 꽤 효과적으로 보여주지만.(스포니까 생략한다.) 차라리 이럴 바엔 진부할지라도 인터뷰 삽입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은 모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보여주고자 한 것들을 하나로 잇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빛이 난다. 감독은 14년 동안 이나 이 영화의 제작을 추진해왔다. 7만여 명의 시민은 십시일반해 영화 제작 자금을 대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기실 현실적 대안책을 마련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잊지 않음을,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케 한다. 나아가 성 노예 피해 할머니들께 하나의 씻김굿이 되어준다.

5. 제멋대로의 논리에다 자신의 욕망을 덧씌어 갖가지 형태로 폭력을 일삼는 이들에게 우린 너무나 쉽게 당했다. 허나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이 상태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반성하는 척이라도 하게 만들어야 할 테다. 그러자면,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을 느껴야 한다. 비록 조금은 어설프다 할 지라도 말이다. 누군가를 대신해 그렇게 오랜 시간 버텨 서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은 누구나 쉬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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