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구 표류기-40(2)#스페인 바르셀로나

#수난의 파사드, 대성당 내부!

지난편에 이어 이번엔 '수난의 파사드'. 사실 탄생의 파사드 이후에 내부를 둘러보고 수난의 파사드로 나왔지만 이야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수난의 파사드를 먼저 둘러보도록 하자.

이미 밝혔듯 '가우디'는 '세개의 파사드' 중 오직 '탄생의 파사드'만 완성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굳이 이런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조각의 모양만 봐도 전혀 다른 사람이 '수난의 파사드'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누구일까? 바로 '호셉 마리아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 사실 가우디가 죽은 뒤 스페인은 아니, 전 유럽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담당 건축가의 사망에 스페인 내전, 게다가 세계 2차대전 까지, 성당을 짓는 일은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 게다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가우디의 설계안까지 태워진 상황이라면 아마 그 누구도 천재 건축가의 뒤를 잇는 부담스러운 자리에 선뜻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중 나타난 사람이 바로 '수비라치'. 나는 가이드를 듣지 않은 탓에 수난의 파사드 작업시기를 검색해 봤는데 자료에 나와 있는 시기가 각각 달라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작업 년도가 중요하진 않으니 그냥 넘어가자.

수비라치는 가우디를 굉장히 좋아(존경)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굳이 자료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부담스러운 자리에 자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처음에 수지라치가 자원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부감을 나타났으며, 실제로 다른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수비라치가 작업을 맡을 때 까지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우려를 낳은 수비라치는 결국 수난의 파사드를 완성 한 뒤에 엄청난 논란과 파장을 일으키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과연 그는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 함께 둘러보자.

한눈에 봐도 알겠지만 곡선 위주의 탄생의 파사드완 다르게 수난의 파사드는 상당히 직선적이다. 때문에 가우디의 탄생의 파사드를 보고 난 후 너무 다른 모습에 실망하며 혹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가우디완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의 작업으로 어설프게 가우디를 따라 하려는 아류작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는 호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비라치의 수난의 파사드는 호불호가 굉장히 심하게 갈린단 이야기. 자 그의 작품을 뜯어보도록 하자.

예수님은 30살부터 33살이 되는 3년간 복음 전파의 사역을 수행했다. 그리고 바로 이 수난의 파사드는 그리스도가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한 '최후의 만찬'부터 골고다 언덕을 향한 '수난', 십자가에 못 박힌 뒤 '부활'하여 '승천' 하기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수난의 파사드 역시 탄생의 파사드 처럼 세개의 문이 있는데 바로 왼쪽의 '겟세마네 문', 오른쪽의 '가시면류관 문', 중앙의 '복음서의 문'이다. 이야기는 좌측 가장 아랫쪽인 겟세마네 문 위부터 S모양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유월절 전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이 엉망이니 이해해 주길. 난 당시만 해도 설마 내가 여행기를 쓸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위치만 알아도 나중에 가서 볼 때 충분하다. 사진은 흐리지만 여러명의 사람들이 의자에 옹기종기 앉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중앙에 등지고 서 있지만 각도상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가장 아랫쪽에 강아지 조각이 있는데 이것은 '충성', '충직함'을 의미 한다고 한다. 유월절이란 사실 커다란 의미가 있다. 유대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유월절엔 산제물로 양을 바치는 의식을 치뤘는데 유월절 전날 만찬 후에 잡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마치 어린양의 피로 죄가 씻기듯 그의 피로 인류의 죄를 '대속'했다 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위의 사진의 조각은 바로 '유다의 키스'장면. 다들 알고 있는 바로 그 배신자 '가룟유다'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재무를 담당하던 그는 결국 은화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린다. 최후의 만찬 당시 예수님은 '오늘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내가 떡을 적셔서 주는자가 바로 그 이다' 라는 말을 하고 떡을 적셔 가룟유다에게 건넨다. 이미 가룟유다의 의중을 알고 있던 예수님은 '가서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 라는 말을 하고 가룟유다는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듯 나간다. 잠시 후 예수님은 몇몇의 제자와 겟세마네 산으로 기도를 하러 가고 그곳에서 병사와 함께 오는 유다를 만난다. 유다는 병사에게 예수님께 다가가 뺨에 키스를 함으로 그가 자신의 선생임을 병사들에게 알리고 예수님은 배신한다. 이 조각이 바로 그 장면. 옆에 누워있는 조각상은 당시 겟세마네 산에 함께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기도하는 시간에 졸음을 참지 못해 졸았던 제자들을 상징하는 듯 한데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 정확한 자료는 없다. 이 누워있는 조각상은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 유다의 오른쪽 밑엔 뱀이, 예수님의 왼쪽 밑엔 숫자가 적혀있는 마방진이 있다. 이 마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33이 나온다. 바로 예수님의 인간의 몸이 죽임을 당하는 33세를 의미한다. 유다 밑의 뱀은 다들 짐작하는 그 의미다. 성경에서 '뱀'은 악을 의미한다.

자, 이제 중앙의 복음서의 문을 넘어 오른쪽으로 넘어가자. 세사람이 모여 서 있고 철골물에 살짝 가려진 베일을 쓴 사람이 상당히 낙담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바로 '베드로의 부인'을 의미한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 가장 강했고 예수님 또한 가장 사랑했던 베드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가 나간뒤 제자들과 이야길 나눈다. 그 때에 베드로는 고백한다.

'주를 위해여 목숨을 버리'겠노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 너는 나를 세번 부인할 것이다' 라며 그의 변절을 예고한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신의 아들이심을 고백한 베드로. 어부 출신의 호전적인 성격의 그는 절대 그럴일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을 미래로 돌려 예수님이 잡혀간 후. 떠들썩한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거짓 선지자 사기꾼이라며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해하려 한다. 홀로 군중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베드로.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예수와 함께 있던 자' 라고 하자 베드로는 겁에 질려 '난 그를 모른다'며 부인한다. 한번 더, 또 한번더 사람들이 추궁하자 그는 마침내 세번째로 '난 저자가 누군지 모르며 나완 상관 없는 사람'이라며 부인한다. 그 때 마침 우는 닭. 예수님이 자신에게 한 말이 생각나 배드로는 순간 감정에 복받쳐 오열한다.

모여 서있는 사람의 숫자가 셋,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베드로, 그 밑에 닭이 조각되어 이 이야기를 함축한다.

사진을 보자. '베드로의 부인' 옆에 그러니까 버스와 나뭇잎 사이 다소곳이 서서 고개를 숙인 사람과 그 뒤로 여러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 조각상이 있다. 사실 이 수난의 파사드에서 중요치 않은 부분은 없지만 특히나 중요한 부분인데 사진을 안 찍어 둔 덕에 이렇게 밖에 보여줄 수가 없다. 내용인 즉슨 바로 '빌라도의 재판'이다. 신성모독과 가짜 왕의 사칭을 죄목으로 분노한 군중들에 이끌려 재판정 앞에 선 예수 그리스도. 누구하나 그의 편은 없으며 외로이 스스로를 변호한다. '본디오 빌라도'는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의 총 책임자였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예수님의 죄를 찾을 수 없고 그를 풀어주길 원한다. 게다가 재판 전 그의 부인은 꿈 이야기를 하며 저분을 죽여선 안된다고 애원까지 한 참이다. 하지만 성난 군중은 이 재판을 그냥 끝낼 생각이 없다. 고뇌하던 그는 군중에게 유월절 죄인 한명을 풀어주는 법을 이야기 하며 같이 재판대에 오른 강도 '바라바'를 살릴 것인지 '예수님'을 살릴것인지 선택하게 한다. 예수님이 죽길 원했던 군중은 강도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외치고 그들의 뜻을 따른 빌라도는 자신은 이 판결관 상관없음을 의미하며 손을 씻는다. 이 장면이 바로 오른쪽 아래 가장 구석에 조각되어 있다.

다시 중앙의 복음서의 문 앞. 책형을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조각되어 있다. 그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고문과 매질을 당한다.

두번째 사진을 보자. 다시 오른쪽 위, 그러니까 '빌라도의 재판' 윗부분이다. 한 남자가 십자가를 지고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재판정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가는 형벌을 받고 힘든 고난을 담당한다. 하지만 위의 사진의 조각은 사실 예수님이 아닌 바로 '시몬'. 몸이 이미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이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리 없다. 셀수 없을 정도로 넘어지고 쓰러지길 반복 할 때, 로마병사가 길가에 서있던 군중 중 한 사람을 지목해 대신 들게 한다. 그가 바로 조각상의 '시몬'이다. 탐탁치 않았지만 대신 십자가를 진 시몬은 이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에세 '구원'을 약속 받는다. 여담으로 시몬은 아프리카계 이주민 이란 추측도 있다.

그 왼쪽으로 넘어가보자. 중앙에 위치한 이 조각상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는 장면을 기록했다. 자신의 고행을 보고 슬피 우는 예루살렘의 여자들을 위로한 뒤,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해서 수행한다. '베로니카'는 자신의 베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주었는데 후에 베일에 그의 얼굴이 나타난다. 옆에 서있는 것은 로마 병사들. '까사 밀라'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로마 병사들이 흡사 까사 밀라 옥상에 있는 조각들과 닮아있다. 수비라치 자신도 가우디의 작품인 까사 밀라 영감을 얻어 이 조각상을 제작했다. 그리고 논란의 한 부분인 가장 왼쪽의 조각상. 복음서 저자 중 한명을 나타낸 것이라곤 하는데 사실 이 조각상의 얼굴은 바로 '가우디'이다. 수비라치의 가우디 사랑이 드러나는 부분. 그가 왜 가우디의 조각상을 넣었는지 자료를 찾을 순 없지만 비교적 다른 종교에 비해 보수적인 기독교에서 이를 그냥 넘어갈리 없다. 성경을 기록하는 곳에 가우디라니, 그가 이 대성당에 기여한 바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지만 좀 쌩뚱맞긴하다. 수비라치의 의도는 역시 가이드를 통해 정확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베로니카의 베일 조각상 바로 위로 넘어가자. 수난의 파사드의 메인 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다. 그리고 이 조각상이 이 수난의 파사드 논란의 태풍의 눈 이라고 할 수 있다. 첫번째 이유, 바로 나체의 예수님이다.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나체의 예수님 조각은 세상에서 바로 이 곳, 사그라다 파밀리아 뿐일 것이다. 조각상은 당연하게도 성기까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이미 말한바 있는 '보수적인' 기독교에선 이 문제를 두고 난리가 났다. 그들에겐 이것이야 말로 신성모독이 아니겠는가? 사실 나조차도 수비라치가 어떤 의도로 나체의 예수님 조각상을 떡하니 제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긴하다. 두번째는 눕혀놓은 십자가. 보는 사람의 관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눕혀 놓았는데, 눕혀진 십자가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사실 이부분이 정확히 뭐 때문에 논란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무래도 십자가를 '눕힌' 파격적인 모습때문이지 않나 싶다. 이 대목도 가이드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십자가는 돌로 이뤄진 조각들관 달리 대문자 I형의 철재 빔을 사용하며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대문자 I가 눈에 띄게 제작되었다. 이것은 구교, 즉 성당의 십자가에 늘 붙어있는 'INRI' 머릿글자 I를 나타난 것인데,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라는 그의 죄목을 적은것에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그 옆엔 슬피 우는 어머니인 '마리아(동정녀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사도 요한'이 있다. 예수님은 죽기 직전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의 제자 '사도 요한'을 가리키며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한 뒤 '사도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라고 말한다. 그 뒤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어머니로써 정성껏 모신다. 십자가 아래 해골 조각은 '해골'의 뜻을 가진 '골고다' 언덕을 의미한다.

그 왼쪽을 보자. 사진을 보면 말을 탄 로마병사가 창으로 성당 벽면을 찌르고 있는 조각이 있다. 바로 로마병사 '롱기누스'이다. '다 이루었다' 라는 말과 함께 숨을 거둔 예수님. 롱기누스는 예수님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그곳에선 물과 피가 흘러 내렸다. 수비라치는 도저히 이 장면을 묘사 할 수 없어 성당을 찌르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성당 자체가 예수님을 상징하므로.

두번째 사진. 그 위를 보면 세명의 로마 병사가 제비뽑기을 하며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진 모습을 묘사한 조각상들이 있다.

마지막 가장 오른쪽 윗부분이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을 조각해 놓았다. '아리마대'사람 '요셉(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다른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였으나 유대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며 지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그는 빌라도에게 직접 찾아가 그의 시체를 수습 할 수 있게 하길 간청하고 빌라도는 그것을 수락한다. 그 때 일찍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마음의 큰 요동을 쳤던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도 몰약과 향품을 들고 찾아와 유대인의 법대로 장례를 치룬 뒤 세마포로 예수님의 몸을 감싼 장사 지낸다. 바로 그 장면을 묘사했다.

이렇게 수난의 파사드의 기록이 마무리 되는 듯 하지만! 중앙 위에 첨탑을 잇는 다리를 보자. 금색으로 조각된 예수님의 조각상이 있다. 진정한 마무리. 바로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조각해 두었다.

내부를 둘러보자. 사실 이 부분이선 딱히 설명할 것이 없다. 자료도 부족할 뿐더러 건축학적 의미를 찾는 것 보단 그저 아름다운 내부를 의자에 앉아 천천히 뜯어보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단히 설명 하자면 자연을 사랑한 가우디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마치 숲을 걷는 것 처럼 느껴지도록 설계를 했다. 나부를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모두 나무를 형상화 했다. 때문에 돌로 이뤄진 하얀 건축물이 정말 인공으로 만들어진 숲이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4복음서를 작성한 저자를 의미하는 동물모양. 성당을 가득 메운 스태인드 글라스의 빛은 다른세계에 들어온듯 황홀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나의 지구 표류기 프랑스편'의 '생 사펠' 성당의 스태인드 글라스가 과거의 걸작이라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스태인드 글라스는 현대의 걸작이라 말한 바 있다. 햇빛을 받아 내리쬐는 형형색색의 빛의 향연은 도무지 질릴서 없는 아름다움과 비 현실적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며 사계절이 모두 담겨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스태인드 글라스는 위의 사진으론 그 실제의 아름다움을 1/1000000000000000도 표현하지 못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마지막을 장식할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건축중 있다. 대성당은 영광의 파사드와 마리아에게 봉헌 할 여섯개의 첨탑, 그리고 예수님께 봉헌갈 무려 170m높이의 중앙 첨탑을 쌓아 올려 마무리 할 계획이다. 가우디 사우 100년인 2026년이 완공 목표지만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다. 전문가 대부분도 불가능 할 거란 예측을 하는중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가우디는 살아 생전 '이 성당의 후원자(하나님)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말로 천천히 이 성당이 믿음의 반석이 쌓여가길 원했다. 언제 완성될 지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저 내가 살아 생전 이 건축물이 완성되길 바랄뿐이다.

이번편 역시 저의 약간의 성경 지식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적었습니다. 잘못된 정보가 발견 된다면 알려주세요, 민감한 문젠인 만큼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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