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의 대물림

육아책을 봐도, 다큐멘터리를 봐도, 강의 영상을 봐도 빠지지 않는 애착 형성. 주양육자와 아이 사이에 형성된 애착의 유형이 무엇이냐에 따라 아이의 내면에 <내적 작동 모델>이 다르게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연구 결과, 아이의 애착 유형과 엄마의 애착 유형이 같은 경우가 전체의 60~70%.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비중으로, 엄마의 애착유형이 아이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건강하고 긍정적인 애착을 경험한 성인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에, 저 결과는 다소 좌절스럽다. '뭐야 우리 애는 가망 없는거야?'같은 반응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일단 엄마 자신의 애착 유형이 어떤 것인지 알아 보기 위한 간단한 자가질문이 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고 어린시절이 어땠는지,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떠올려 보세요"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어떤 답이 떠오르는지 살펴본다. 이런 경우 대부분 특정 강렬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어떤 '스토리'를 떠올리게 된다.

나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고, 나의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어떤 기억이 남는가? 그때 나는 뭘 느꼈는가? 이것을 일기나 소설 쓰듯이 적어본다.

나의 경우는, '바쁜 엄마', '일하느라 나에게 무관심했던 엄마'가 떠오른다. 그리고 퇴근한 엄마에게 뭔가 자랑하고 싶어서 말을 걸었다가, 엄마가 순간 짜증을 내며 '가만히 좀 있어, 귀찮게!'라는 뉘앙스로 대꾸해서 상처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사실 그건 흔치 않은 일이었고, 엄마로서 나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많고 늘 보살펴준 것이 훨씬 많았는데, 마음이 다쳤던 기억이 더 강렬하고, 순간적으로 상처가 컸기에 그 기억 중심으로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편집된다. 유아적이고 단순한 시각을 가진 편집자가 아닐 수 없다.

그 후로 나는 '뭔가 잘해서 가져가면 부모가 봐줄만 한 것'이라는 내 나름의 내적 기준을 만들었고, '별 것 아닌 일은 혼자 해결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매우 독립적이고 혼자 알아서 척척 하는 아이였다. 숙제를 엄마가 봐준 적도 없었고, 늘 모든 준비물은 내가 준비했으며, 알림장이나 가정통신문도 내 선에서 필요한 것을 필터링해서 엄마에게 싸인을 받거나 심지어 내가 싸인해서 가져갔다.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해라'는 말을 해보신 적이 없는데, 나는 늘 알아서 필요한만큼 공부를 했다. 성적을 잘 받거나 각종 교내 대회에서 상을 받아가면 부모님은 당연히 기뻐하셨고, 나는 '뭔가 성취하거나 타인에게 인정받을 것이 있어야 관심을 받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성인기까지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면서도 관계 맺기에 있어서 취약점으로 작용했다.

~같은 식의 <스토리>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위에 적은 것은 나만의 스토리 중 일부로, 한때 신봉하다시피 믿었던 것이다. 특정 사건은 fact인지 몰라도, 그에 대한 해석은 아이의 해석이자 멋대로의 느낌이었으니, 종합적이고 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걸 요구할 수는 없는거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를 이해하고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며 부모와 나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게 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며, 부모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균형잡힌 시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자율형>의 애착유형으로 본다. 감정적으로 상처 받은 것 자체를 숨기며, '근면성실하시고 좋으신 부모님과...'로 시작되는 뻔한 자기소개서 문구같은 것을 늘어놓거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별다른 감상이 없다는 식으로 내 감정을 피하면 <배척형>에 가깝다. 떠올렸더니 막 억울하고 슬프고 서럽고, 부모가 나에게 이럴 수가 없고, 나는 너무나도 상처 받은 가련한 아이였다(물론 정말 학대에 가까운 기억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과도하게 그 경험에 집착하는 유형도 분명 있다)고 하며 비련의 주인공이 되는 <집착형>도 있다. 유아적 욕구에 사로잡혀 내가 못 받은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실제로 애착은 커녕 충격적인 경험을 해서 어떻게도 해결할 수 없이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미해결형>도 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 같은가?

엄마의 애착유형

1.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한 자율형

2. 감정을 숨기는 배척형

3. 유아적 욕구에 사로잡힌 집착형

4. 심리적 충격을 담아둔 미해결형

아이는 엄마(주양육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자기 안에 자기와 대상(타인, 환경)을 받아들이는 내적 모델을 만들게 된다. 엄마가 믿을만하고, 나 역시 믿을만하다고 여기는 긍정적인 안정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은, 일상에서 '긍정감'을 느낄만한 것을 더 잘 기억해서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강한 관계가 무조건 친구가 많다거나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계 자체에 중독되거나 집착하는 것도 건강한 것은 아니다)

엄마에게서 긍정적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믿을건 나 자신 뿐'이라며 다소 시니컬해진다. 겉보기에는 혼자 알아서 잘 하는 아이, 엄마가 없어도 의젓한 아이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타인과 세상을 못 믿고 의심이 많아지기 쉽다. 여기에서 긍정적 피드백이란 무조건 다 좋다고 하는 우쭈쭈 피드백이 아니라, '네가 지금 이런걸 느끼고 생각하고 있고, 이게 중요하구나!'하고 알아주는 피드백이다.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일차적으로 마음은 알아주되, 교육적 피드백도 같이 주어져야 한다.

엄마에게 휘둘리고, 엄마가 모든걸 다 결정하며 해결해준 아이는 자기 자신을 못 믿는다.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확인해서 받아들이는 경험을 엄마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서도 의존적이 된다.

나도 엄마도 못 믿는다면 세상 만사가 다 혼란스럽다. 도무지 믿을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어느날은 관계에 집착하다가, 자기 기분이건 상대 반응이건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다 싶으면 금방 끈을 놔버리며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안정애착에 속하는 엄마라면? 브라보, 짝짝짝. 박수를 보내고, 또 부럽다. 마음이 가는대로,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면 된다! :)

하지만 그게 아니면? '아 끝났네, 망했네, 내 새끼 불쌍해서 어쩌지? 70%나 따라간다는데..'로 좌절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그건 아니다. 나머지 3,40%가 분명히 있고, '엄마의 자기성장이 육아에 필수입니다!!'를 외치는 글을, 책을, 강연을 찾아보며 스스로 공부하는 우리가 있다. 노력에는 반드시 보답이 따른다. 그래서 엄마의 자기성장을 자꾸 강조하게 되는 것 같다. 나 자신 역시 결핍감을 가진 보통의 사람이기에 그렇다.

우선 나부터 돌아보는 것이 시작이다. 머리로 아무리 알아도, 내 감정이 울컥-하고 치밀어 올라올 때는 내 살아온 '꼴'대로 말하고 행동하기가 쉽다. 이럴 땐 이렇게 하세요-가 막상 실전에 닥치면 쉽게 실천하기 힘든 이유는 그 순간 내게 익숙한 패턴의 감정이 휘몰아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특정 상황이 올 때 어떤 방법을 주로 사용해서 그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지를 모르면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될 수 밖에 없다. 아이를 다룰 팁만 찾는 것이 아닌, 나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그래야 내가 아이에게 하는 행동을 이해하고 필요한 경우 보완할 수 있다. '혼자 해내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해진 나의 경우, 아이의 '징징댐'을 못 견뎌할 가능성이 있다. 공감과 함께 아이의 마음을 읽어줘야 하는데, 순간 어린 시절의 '혼자 해내던 경험'이 떠오르며 '나는 이렇게 혼자 다 했는데 넌 왜 그것도 못해서 이렇게 속을 썩이니? (내가 받고 싶었던) 세심한 관심을 받고 있는데에도 넌 부족한거니?'같은 화와 함께 공감을 저 멀리로 날려버릴 위험이 있다는거다. (그리고 그 화의 대상은, 잘 살펴보면 아이가 아니라 엄마다) 이걸 알고 있으면 그때그때 정신 차리는(?) 것에 도움이 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나의 내적 모델, 내가 속한 애착 형태가 어떤 쪽인지 가늠이 되었다면, 나만의 <스토리>를 일기나 소설 쓰듯이 한 번 써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안의 감정을 따로 정리해보면 좋다. 화난다/슬프다/억울하다/수치스럽다 등 여러가지 감정을 키워드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온다면 그것 역시 적어둔다. 이제 우린 어른이고, 적어둔 스토리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남의 일에는 쿨하게 조언을 해도 내 일이 되면 휘청대는게 사람이다. 하지만 내 안이 아닌 바깥에, 시각화된 형태(텍스트건 미술품이건)로 내놓으면 물리적 거리감이 생겨 거리를 두고 보는 것에 도움이 된다. (아이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알게 하기 위해 동화나 놀이, 작품을 이용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스토리를 들고 와서 하소연한다면 난 뭐라고 할 것인가? 보다 차분하게 '엄마가 혹시 바쁘셨던건 아닐까?','그런 마음은 아니셨을거야'같이 중도적인 조언을 하지 않을까?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하며, 반대로 사랑을 느꼈던 때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그 역시 똑같이 <스토리>이다. 에피소드와 내 감상이 있는. 내가 집중하기로 선택한 스토리가 전자였을 뿐인지도 모른다. 큰 상처 경험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상의 서운함-특히 어린시절-이 유아적 욕구와 결합해서 방대한 자기연민적 스토리를 만들어낸 경우라면, 이 정도의 시뮬레이션만 가지고도 진정하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이같은 노력은 정말로 필요하고 유효한 것이, 실제로 미국에선 후천적으로 획득한 안정감(earned security)을 통해 본인의 애착 유형이 바뀌는 것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공감을 통해 형성할 수 있으며, 치유적 효과가 있다. 성인이 되어도 자기성장 과정을 밟으며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역으로, 아이 역시 자그마한 경험 하나로도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보다 충실한 마음을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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