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것은 직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단지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카츠라기 미사토 소좌가 맥주를 참 맛있게 마시는 것을 보고 반해서 따라 마시기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지금도 맥주가 좋습니다. 소주는 악마의 술이라고 생각.. 그나마 요즘은 내 혀가 익숙해 진건지.. 도수가 낮아진 것인지 그럭저럭 마실만 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절대 제가 좋아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셔야만 하는 자리에 가기 때문에 마시는 거죠..
무엇보다도 술기운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남친이자 주인님과의 인연이 영원한 남사친으로 남았을 것임을 생각하면 술이 좀 고맙기도 합니다. 사적인 만남에서는 말이죠..
이 카드는 제가 블로그 하는 동안 단상으로 적었던 회사생활을 하며 느꼈던 술문화에 대한 것들입니다.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오늘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기록한다는 차원에서 남겨봅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런 술자리가 있고 난 다음날.. 때로는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바로 적었던 글들입니다.
2013.07.25.
저는 술을 개인적으로는 맥주 한 두 캔 정도는 즐겁게 마시지만..
강권당해 마시는 회식 자리 음주나 클라이언트 접대 술자리는 진저리치게 싫어합니다.
술 자체를 즐기고 분위기를 즐기는 분들은... 아니.. 모르겠어요.. 그렇게 보이는 분들도 살기 위해 그렇게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술을 왜 그렇게 퍼넣고... 뭐에 홀린 사람들처럼 마셔대는지... 전 도대체 모르겠어요.. ㅠㅜ
직장생활 벌써 5년차인가.. 익숙해질때도 됐지만...
익숙해 졌다고 생각하면 어느 날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레이스를 벌이는 사람들때문에 멘붕에 빠집니다.
오늘은 하필이면 막걸리...
저는 막걸리는 배불러서 안 들어가거든요.. 고역이에요.. 고문에 가깝습니다.
근데 그 막걸리를 분위기 맞추기 위해 몇 사발을 마셨는지 모르겠어요.
돌아가면서 다 으쌰으쌰하고 비웠으니.. 10사발은 족히 마셨겠네요..
제대로 순진하게 다 받아마셨으면 그 두배는 마셨겠죠..
단 2시간만에...
2차를 위해 몰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빠져나왔어요..
하아..... 직장생활이란 이런게 정말 험난하네요..
컨디션도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녁도 제대로 안먹고 마시다보니..
음.. 그래도 막걸리는 밥이라는 말이 사실인지...
배는 정말 빵빵하게 부르네요.. ㅠㅜ
잊을만하면 생기는 음주 후의 악몽...
오늘은 1차 끝나고 도망나와 귀가해서 샤워하고 정신 좀 차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금 3차쯤 달리고 있을거 같네요....
정말... 이렇게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에효... 그냥 넋두리에요...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는 접어두고.. 좀 더 술을 잘 마셨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밤이네요.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그런 얘기가 스치는 밤.
2014.05.14.
조금 오래된 이웃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부서 내의 술자리..
저는 친한 사람들과 하는 오붓한 술자리 외에
팀 회식 자리를 엄청 부담스러워했는데요..
점점 이래서는 사회생활에 지장있겠다 싶어서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는 마음가짐으로
적극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었죠.
그러다보니 참 의외로..
그 폭력적이고 거칠어 보이던 술자리에서도 나름 무사히 끝까지 갈수 있는 방법도 깨달았구요.
간만에 참석하면 오히려 표적이 되고
때마다 참석해서 고정멤버가 되면 제 주량껏 마실수 있는 암묵적인 권한이 생겨가더군요.
거기다가 병권을 쥔 분과 교감이 있다면 더더욱 ㅎㅎㅎ
2015.07.07.
언젠가 상사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로
"너는 왜 술자리에서조차 너를 놓지 않니?"라고 물었다.
그때 나는 "왜 저를 놓아야 하는데요?" 라고 되물었다.
긴장을 풀고 형식을 벗는 일은 회사에서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어필할 수 있다고 상사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순간, 놓고 싶지 않은 것까지 다 놓게 될 수도 있는게 조직생활이라는 것을 구태여 나의 체험으로 증명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사실은 서로의 진짜 모습이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혼자의 발견>, 곽정은, P.233
저도 회식자리에 가면 가끔 듣게 되는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똑같이, 대놓고 돌직구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살살 돌려 얘기하는 것의 핵심은 좀더 속얘기를 듣고싶다는 얘기가 많더군요.
직장생활은 공적인 영역. 저 역시 위의 곽정은 씨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나의 인간적인 면모.. 보통 나의 약점이나 흑역사같은 것을 듣고 싶어하는 분위기인데.. 그런 것들이 친구들끼리라면 그 자리에서 공감하고 넘어가겠지만.. 직장에서는 원치않는 뒷소문으로 남아 저에게 이상한 꼬리표가 붙어버리겠지요.
대부분의 경우 술마시면 택시타기 직전까지 오히려 더 정신이 말똥말똥한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15.07.25.
참 신기하네요. 역사는 반복되는가.. 접대 회식이 있었던 어제 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딱 2년전 같은 날에도 술자리가 있었네요. ㅎㅎ 블로그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어서 좋네요. 일상의 소소한 기록도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어제 밤엔 고객사의 최고위층을 접대하는 술자리가 있었어요. 예전부터 가끔 이런 자리가 있으면 꼭 차출(?)되어 술자리에서 분위기 맞추는 역할을 해오곤 했는데.. 싫지만 어쩔수 없는 '업무의 일부'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행사에 가까운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 가면 맘속 깊은데서부터 우울해지는 것은 낮에는 업무능력과 지성으로 평가받던 내가 술자리에서는 그저 꽃순이(?)로서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와는 무관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워낙 저 위에 계신 의사결정권자들의 자리이다보니 아직 저는 제 의견을 감히 낼수도.. 낼 기회도 없는 레벨의 자리이기도 하지만요.
어제의 자리가 다른 때와 달랐던 것은 두가지인데.. 보통 2차는 남자분들끼리 룸이 있는 업소로 가서 양주 드시는 것으로 아는데 어제는 웬일로 고급 노래방(신발 벗고 들어가서 편하게 노래부르는 깔끔한 스타일)으로 갔다는 것과.. 저 이외에도 신입 여사원 둘이 더 있었다는 점.. 신입이라고 하지만 한 명은 우리나라 최고대학 대학원까지 마치고 갓 입사한 재원.. 또 한 명은 해외에서 대학마치고 다른 회사에서 좀 일하다가 들어온 중고신입. 그렇게 노래방에서 여사원은 저를 포함해서 세 명.. 남자분들 많이 계셨고요..
제가 놀랐던 부분은.. 두 여사원들이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철학인 걸까.. 노래방에서 진짜 잘 놀더군요. 이런게 소위 노래방 도우미 역할인가 싶도록.. 적극적으로 춤추고 애교부리고.. 걸그룹 댄스에 은근한 터치마저 아무 내색하지 않고 감당하는 모습이 내 신입때와는 많이 다르네 싶었답니다. 나중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런 자리의 기억을 멀쩡한 정신에 다시 꺼내서 화제를 삼기도 어색한 것같고.. 어쩌면 그저 궁금증으로 남겨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떠오르는 씁쓸한 생각은 요즘 취업시장이 고학력자를 불문하고 워낙 어렵다보니 일단 취업을 하면 나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여유도 없이 스스로를 소비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아니면 그새 또 세대차이가 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봤자 한 4-5년 차이일텐데..
어제는 저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혹은 묘한 여자끼리 경쟁심리..?) 접대에 충실(?)했는데요. 이게 참 오묘한 것이.. 혼자 그랬다면 굉장히 자괴감이 들었을텐데.. 세명이 공범(?)이다보니 자괴감도 1/n이 되는 듯 합니다. 그게 더 무서운 현실이기도 하지만요. 남친에게 얘기하면 매우 기분나빠할 얘기기에 털어놓을데가 여기밖에 없네요. 나중에 뒤적이다보면 이것도 제 삶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겠죠.
삶의 치열한 전투현장에서 이런저런 고초를 경험하는 우리 생활인들.. 모두 힘내세요..! 화이팅!
2015.10.23~24
지금은 대륙의 호텔방..
출장의 공식 업무를 끝내고 일단 숙소로 복귀.
숙소는 열댓명 초대해서 같이 놀아도 될만큼 넓직하고 깔끔한.. 훌륭한 시설..
지금 욕조에 뜨끈하게 물받아서 반신욕하고 잠들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수 없는.. 여차하면 술자리로 나가야하는 상황.
즉 이 포스팅도 지금 올릴수 있을지..
임시저장했다가 내일 저녁에나 올릴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소위 전문직 여성으로서
술자리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아닌데
이래저래 '불려나가는' 상황에서
그동안 수년간 달라졌던 의식의 흐름에 대해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네요.
결코 여우의 신포도가 아니라.. 어떻게 '일체유심조'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추적..! 두둥~
입사 초기..
아.. 저는 소위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 전문직입니다만 어디까지나 을의 입장입니다~
입사 초기에는 별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고객사 접대 술자리에 참석해서 술따르고 꽃순이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사회생활에 대해 알게 되고 내 주관이 생기게 되자 그런 술자리가 매우 짜증스러웠고 가능하면 피하게 됐죠.
피할수 없을 때도 즐길수는 없었고 내적인 갈등이 많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자존감의 위기이기도 했고
그래서 더 일을 확실하게 해서 함부로 대하지 못할 굳건한 나의 퍼스널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했지요.
요기까지 썼는데.. 접대 회식 호출.. ㅎㅎ
나중에 더 쓸께요~
어제 밤에 쓰던 거 이제 이어서 씁니다~
그 밤에 다시 불려나갈 것을 대비해서 화장도 안 지우고 옷도 그대로 입은 채 잠깐 포스팅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호출이 있어서 나갔다가 여기 시간으로 새벽 3시에 돌아왔어요. 엄청 피곤할 것 같기도 하지만.. 재밌는게.. 출장 나올 때와 한국에서의 마음가짐이 달라서 그런지.. 크게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어요.
한국에선 뭐랄까.. 업무용 에너지와 퇴근 후의 개인적 삶을 위한 에너지를 별도로 관리한다고 할까요..? 그러다보니 예상에 없었던 회식이나 술자리 접대 일정이 생기면 매우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지죠.
해외 나오면 온전히 하루 종일 프라이빗 라이프는 없다고 마음먹고 24시간을 커리어우먼 모드로 있으니깐.. 술을 마시던 뭐를 하던 새벽까지 이래도 별로 기분 나쁘지도 힘든 것도 잘 모르겠어요.
역시 이것도 일체유심조인듯~
어제 쓰던 테마에 대해 좀 더 써 볼께요.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으로서 개인 브랜드 구축을 위해 3년 정도는 정말 회사에 올인했었어요.
진짜 열혈 회사인.. ㅎㅎ
이때도 술자리 접대는 지속적으로 있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소위 룸싸롱이라고 하나요..
비즈니스 클럽이라고 하나요..
그런 자리에 실제 접대하는 여성들 나오는 곳에 어중간한 위치로 따라가게 된 적도 있었죠.
처신하기 참 난감한 순간이었어요.
그런 자리까지 저를 데리고 간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죠? ㅎ
최근에도 드문드문 그런 일이 생깁니다.
노래방 가서 재롱잔치 해야 할 경우도 있구요.
요즘은 저보다 어린 신세대(?) 여직원들이 알아서 걸그룹 댄스 추면서 자기들도 즐기는 것 같아서 묘한 세대차이를 느끼기도 할 정도랍니다.
이제는 비즈니스를 위한 술자리에 대해 저도 제 주관이 분명해졌어요.
예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거에요. 적어도 외양은..
고위 임원들인 클라이언트 분들에게 술 따라 드리고 농담 받아주고 하는 일은 마찬가지인데요.
예전에는 굴욕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속으로는 이를 악물고 했다면.. 이제는 필요에 의한 자연스런 업무의 하나로 이해하고 담담하게 임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구요.
갑을 관계에서 술자리에서 소위 '웃음을 파는' 것은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제 위의 팀장님 (40대 남자)도 기꺼이 클라이언트들에게는 덕담과 최대한의 예의와 좋은 표정으로 대합니다. 오히려 남자가 남자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에 따라서는 더 힘든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여성으로서 갖는 메리트를 최대한 활용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 업무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다시 한번 일체 유심조.. 생각이 그렇게 바뀌고 나서는 술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술자리 접대라는 것이 부담이나 굴욕감은 없어졌습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일뿐~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즐기기까지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마지못해 억지로 한다는 자세를 가지면 그게 상대에게도 느껴지지않겠어요..?
어제 밤에도 엄청나게 늦은 시간이었지만 제가 즐기려고 노력하니 시간도 빨리가고..
모두 분위기도 좋고.. 누이좋고 매부좋은 상황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리고 남은 이야기
제가 앞으로 이 회사에서의 시간을 대충 7-8년으로 보고 그 뒤엔 다른 삶을 생각하고 있는 이유도 술과 관계가 없지 않아요. 회사는 욕망의 전차를 감정없이 구현한 냉혹한 조직이기에 승진이라는 것은 능력을 인정받는 척도입니다. 그 능력이라는 것은 100% 순수 업무 능력만으로 평가되지 않고, 아니 업무 능력이라는 것 속에는 술자리를 통한 인간관계를 얼마나 잘 하느냐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한 제 심정으로는 앞으로 7-8년후 40대에 가까워진 시점에서 제가 강력한 카드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을때 경쟁력이 사라질 것 같더라구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인데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하느냐, 아니면 다른 커리어를 찾느냐인데.. 저는 이미 다른 커리어로 갈 것에 마음을 굳힌 상태에요. 전자를 택하려면 지금쯤 MBA를 갔을 겁니다. 블로그 하던 시절에 MBA에 대한 고민도 가끔 올린 적이 있는데.. 남친과의 만남이 생기고.. 사람 인생이 정말 알수 없는 것이더라구요.
오늘의 결론은 이래요. 많은 분들께 이미 너무 당연한 세상의 진리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다시 환기하는 직장생활의 핵심은.. 진짜 괜찮은 자리까지 올라갈 생각으로 회사를 다닌다면 술자리는 옵션이 아니라는 것. 적어도 한국의 직장 풍경에서는요.
비록 술자리에서 꽃순이 이상의 전략적 포지션을 담당해보지 못한 흔한 직딩녀이지만.. 제 카드를 보시는 분들 중에는 4-50대 남자분들도 많으시고 개중에는 회사에서 고위직에 계신 분들도 계시겠죠.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자녀뻘의 젊은 여자 회사원도 이런 생각은 갖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좋겠단 생각도 드네요.
이 카드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다른 아이디어가 있어서 시작했는데 막상 맺음을 하는 시점에서는 그 의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스칩니다만.. ㅎㅎ 혹시 원래 생각이 떠오르면 나중에 수정할께요~
- 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