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휩싸인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 산 등반 안내인이자 등반회사 사장인 락파 셰르파가 2013년 에베레스트 산 주변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앉아서 잠시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 근처에서 까마귀들이 바람을 가르며 날고 있다 에베레스트 산의 쿰부 빙폭에서 대규모 눈사태가 일어나 셰르파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글판 2014년 11월 호 중>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 등반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한 4월 18일, 쿰중 마을 출신의 셰르파 니마 치링(29)은 새벽 세 시에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뺨은 햇빛에 그을리고 검은 머리가 짚 더미처럼 덥수룩한 그는 무게 29kg짜리 취사용 가스통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의 뒤편으로 베이스캠프가 임시 마을처럼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 40개 정도의 국제등반대 소속 대원들이 잠들어 있거나 산소 부족으로 잠 못 이루며 뒤척이고 있었다. 해발 5270m의 고산이라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가 가는 길 위쪽으로는 200여 명의 셰르파와 짐꾼들이 쿰부 빙폭을 따라 일렬종대로 이동하고 있어서 헤드램프 불빛이 어둠 속에서 번쩍이며 기다랗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정규 등반로 가운데 가장 위험한 구간인 쿰부 빙폭은 급경사인 데다 굴곡이 극심하다. 세락과 크레바스들, 비틀린 얼음덩어리가 복잡하게 뒤엉켜 미로를 형성하면서 에베레스트 산 서쪽 능선과 베이스캠프 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해발 7849m의 눕체 봉 사이에 있는 협곡 아래로 610m나 뻗어 있다. 그날 아침, 치링의 동료 셰르파들은 그보다 훨씬 더 일찍 쿰부 빙폭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늘 그렇듯 차와 보릿가루로 만든 죽 ‘참파’로 아침을 때우고 전날 밤에 꾸려놓은 짐들을 어깨에 짊어졌다. 일부 셰르파는 밧줄, 눈삽, 아이스앵커와 해발 8850m의 정상까지 가면서 고정밧줄을 연결해 난간을 설치하는 데 쓸 장비들을 챙겼고, 또 다른 셰르파들은 정상까지 가면서 중간중간 네 개의 캠프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침낭, 식당천막, 식탁, 의자, 취사도구, 히터, 담요들, 심지어는 등반객들을 즐겁게 해줄 식탁용 조화까지 나르고 있었다. 일부 셰르파의 얼굴에는 전날 치른 힌두교 의식 ‘뿌자’에서 서로의 얼굴에 칠해준 구운 보릿가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의식을 행하며 에베레스트 산의 여신 ‘조모 미요 랑 상마’에게 안전한 산행과 장수를 빌었다. 이 등반로는 ‘빙폭 박사들’이라 부르는 전문 셰르파들이 4월 초에 개척한 경로로 이미 많은 산악인들이 여러 차례 오갔다. 이곳은 빙벽과 빙하 곳곳에 갈라진 틈새 사이에 고정밧줄과 알루미늄 사다리가 설치돼 있다는 점에서 다른 등반로들과 비슷했지만 눈사태가 빈발하는 에베레스트 산의 서쪽 능선에 더 가까운 지름길이었다. 서쪽 능선에는 높이 300m의 빙하가 불길하게 돌출된 채 매달려 있었다.

2014년 4월 18일 눈사태가 발생한 지 세 시간 후 쿰부 빙폭에서 구조대원들이 집채만 한 얼음덩어리들 사이에서 생존자를 수색하고 시신을 발굴하고 있다. 희생자 16명 가운데 11명은 구조대원들이 수색을 벌이고 있는 왼쪽 상단의 한 장소에서 몰사했다.

후송하기 위해 짐을 묶고 있는 앙 카미 셰르파는 산에서 헬리콥터로 후송된 세 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앙카지 셰르파(36)가 2012년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 네팔 국기를 펼치고 있다. 등반 안내인이자 많은 젊은 셰르파들의 스승인 그는 4월 18일 눈사태에서 목숨을 잃었다.

빙폭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셰르파 족 가족들은 비통에 빠진다. 아버지 앙카지 셰르파를 잃고 슬픔에 잠긴 딸 체치 셰르파가 카트만두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

다 누루 셰르파가 아마다블람의 제2캠프에서 밧줄을 감고 있다. 제2캠프는 새 둥지처럼 해발 5975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락파 셰르파가 아마다블람의 제1캠프와 제2캠프 사이에 지난해 설치했던 밧줄을 교체하고 있다. 상업등반회사에서 일하는 셰르파들은 이 고정밧줄에 의지해 정상을 오른다.

셰르파들은 안내인, 짐꾼, 개인보조, 코치, 보호자를 모두 겸하고 있다.

셰르파들은 장비를 나르기도 하고 잠자리에서 아침식사를 차려주기도 한다.

임금 지급일에 얼마를 받는지는 이들이 지고 나른 짐의 무게와 캠프 사이를 오간 횟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보통 서방의 등반회사들이 네팔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보다 임금을 더 많이 지급한다. 셰르파들은 번 돈을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 외에 야크를 사고 집을 짓는 데 쓰거나 숙박업소 같은 사업에 투자한다.

팡보체의 니마 도마 셰르파에게 남편 다리타를 잃은 기억은 여전히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다리타는 2013년 어린 두 딸을 남긴 채 에베레스트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포르체에서 해마다 열리는 둠치 축제에서 슬픔에 잠긴 푸 도르지와 푸라 양기에게 아들 다리타 셰르파를 기리며 의식용 목도리인 ‘카타’를 수여했다. 다리타는 2013년 에베레스트 산에서 높은 고도에서 비롯한 문제로 목숨을 잃었다.

포르체에서 둠치 축제가 열리는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쌀 요리가 제공됐다. 이들이 등산용 재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등반이 셰르파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카르마 체링 셰르파는 한때 에드먼드 힐러리가 쿰부 지역에 학교를 세우는 일을 도왔다. 지금은 에베레스트 산에서 안내인으로 일했던 아들, 손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16차례 등정한 다 누루 셰르파가 포르체의 집에서 어머니 다키 셰르파와 마주보며 웃고 있다. 다키의 아들 8명도 에베레스트 산에서 안내인으로 일하고 있다.

셰르파들은 산에서 번 돈으로 자녀를 카트만두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다음 세대만큼은 에베레스트 산에서 위험한 생활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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