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리뷰] 디즈니가 '공주'를 다루는 법

여배우들과 인터뷰를 할 때 의식적으로 같은 질문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공통된 질문은 “충무로에 여배우가 원톱 주연을 할 만한 시나리오가 있느냐"는 것이었고, 돌아온 답은 항상 같았다. 거의 2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마다 이 질문을 빼놓지 않았던 기자는 결국 더 이상 이에 대해 묻는 걸 포기했다. 여전히 답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배우들 뿐만 아니라 제작자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 없다는 현상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상업성과 작품성, 캐릭터의 매력까지 모두 만족시키는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다. (이건 주연의 성별이 어떠하건 마찬가지다.)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어렸을 적(혹은 최근 일수도) 한 번 쯤은 봤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한 번 더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동화 속 이야기를 디즈니가 어떻게 변주해 흥행에 성공했는지 어른의 시각에서 뜯어보는 건 꽤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 디즈니의 공주가 사랑을 쟁취하는 법

왕자와 사랑에 빠진 공주가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고 두 다리를 얻지만, 결국 왕자는 다른 공주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차마 그를 찌르지 못한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의 이야기이다. 디즈니는 이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호기심 많은 인어공주 에리얼의 사랑 쟁취기로 재구성했다.

에리얼은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노력 끝에 모은 자신만의 ‘콜렉션'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매력은 에리얼의 능동적인 성향이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에리얼의 저돌적인 행보를 보라. 마녀를 찾아가 거래를 하고(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다리를 얻은 후 왕자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다. 왕자가 결혼하려는 사람이 마녀라는 사실을 알고는 결혼식을 ‘깽판 놓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저와는 체급부터가 다른 마녀에게 달려들기도 한다.

가련한 운명의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세계에서는 산전수전 끝에 사랑을 쟁취하는 해피엔딩으로 탈바꿈한다. 최소한 디즈니 세계의 인어공주는 그런 행복을 얻을 자격이 있다. 이토록 노력했는데!

# 결혼만이 해피엔딩인 건 아니다

공주이야기는 아니지만 디즈니의 여성 캐릭터를 말하며 ‘뮬란'을 빼놓긴 좀 서운 할 것 같다. 디즈니 걸크러쉬의 끝판왕은 ‘뮬란'의 뮬란이 아닐까.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에 나간 뮬란의 이야기를 담은 ‘뮬란'은 여성 주인공에게도 ‘멋지다'는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걸 증명한다.

작품 초반, 뮬란의 주변인들은 여자가 가문을 일으키는 것은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 현모양처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좋은 가문에 시집 가길 바라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뮬란은 자신을 탓하며 좌절하지만 그의 능력은 의외로(?) 군대에서 발휘된다. 디즈니는 뮬란이 가진 여성적인 특성을 굳이 상쇄하지 않았다. ‘다름'을 인정하는 부분이 몇 장면에서 드러나는데, 그 중 하나가 훈련 신이다. 여성의 신체를 가진 뮬란은 힘에서는 동료들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뮬란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다른 방법으로 채운다. 그리고 훈련병 중 가장 먼저 통나무 꼭대기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기지를 발휘해 나라를 구한 뮬란에게 황제는 검을 선물한다. 공을 세운 장수로 인정 받은 것이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한 영웅에게 고개를 숙인다. 아버지는 검을 들고 돌아온 뮬란에게 자신의 딸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뮬란'의 마지막 장면은 결혼식이 아니다. 뮬란에게 진정한 해피엔딩이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물론 샹이 뮬란을 찾아오긴 하지만, 뻔한 ‘결혼식 엔딩'은 아니지 않은가!)

# 러브스토리를 탐험기로 바꾸는 대범함

‘라푼젤’은 원작을 완전히 비튼 작품이다. 탑에 갇혀 있었다는 모티프 외에 동화 ‘라푼젤’과 애니메이션 ‘라푼젤'의 접점은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원작 속 탑을 벗어나 왕자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라푼젤은 탑 밖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함께 가지고 있는 왈가닥 소녀로 변모했다. 탑에 들어온 도둑을 프라이팬 하나로 때려잡을 만큼 대담하고, 그와 함께 세상을 누비는 모험을 감행할 만큼 용감한 소녀로 말이다.

원작 속 라푼젤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왕자'다. 라푼젤이 갇힌 탑으로 왕자가 찾아오고, 라푼젤에게 탑을 빠져나갈 것을 권한다. 라푼젤이 탑을 탈출하고자 하는 이유도 왕자이며, 그 방법 또한 왕자가 가져다 준 실로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디즈니 월드의 라푼젤은 능동적이다. 라푼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등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다. 그는 생모인 줄 알았던 마녀에게 당당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라이더와 적절히 ‘딜’을 할 줄도 안다.

디즈니의 ‘라푼젤’은 마치 소녀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듯 하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 ‘사랑’과 ‘공주 이야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다

스포일러 일 수 있지만 이미 1000만 명 이상이 본 영화이니 결말을 좀 언급하겠다. ‘겨울왕국’의 가장 큰 반전은 마법을 풀 수 있는 ‘사랑’의 의미였다. 진정한 사랑이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사랑을 뜻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관객들과 주인공들(안나와 엘사, 크리스토프)은 마법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우애, 즉 자매의 사랑이라는 것을 마지막에야 깨닫게 된다. 관객들과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던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이 시원하게 부서지는 순간이다.

‘겨울왕국은’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과 더불어 디즈니 공주의 클리셰도 깬 작품이다. ‘겨울왕국’의 재료는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주와 여왕, 마법, 그리고 사랑. 이 뻔한 재료들을 가지고 디즈니는 자신들이 만든 공식(굳이 도식화 하자면 ‘공주 이야기=공주+저주+왕자 정도일까)을 과감하게 벗어났다. (물론 '겨울왕국'에 앞서 ‘라푼젤'이 있었다.) 이 얼마나 유의미한 변화인가! 최소한 ‘겨울왕국’을 본 아이들이 안나와 엘사를 떠올리며 왕자님을 자동 소환하는 일은 없지 않겠나.

사진= ‘인어공주’, ‘뮬란’, ‘라푼젤’, ‘겨울왕국’ 스틸

안이슬기자 drunken07@news-a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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