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 번씩만 안고 갈게10

엄마를 향해 나란히 서서 절을 하고 있는 여러 명의 남자들은 형의 불알친구들이다. 부모님이 집을 비울 때마다 우리 집에 쳐들어 와서 소소한 일탈을 즐길 때 나는 그들의 충실한 집사였다. 갖은 심부름 그리고 아침의 뒷정리까지. 내가 혼자 못 살 담배나 술을 사러 가야 할 때는 번갈아 한 명씩 나와 동행을 하곤 했는데 그 길에 그들은 하나 같이 어른이나 된 듯 나의 취미나 장래희망 따위를 굳이 묻곤 했었었다. 엄마가 이름을 알고, 엄마가 해 준 밥을 백 공기씩은 먹었을 법한 그들은 엄마가 무척 고마워할 표정을 지어주었다. 몇 초간의 침묵 후에 그들은 약속처럼 형을 향해 몸을 돌리고 맞절을 하였다. 형이 울었다. 나는 무서웠다. 친구들이 형의 어깨를 어루만져주었다. 몇몇은 형만큼 울어주었다. 아이고 김쌤! 어쩌냐? 힘내고! 적당히 좋은 슬픔을 공연한 형과 친구들이 우르르 빈소에서 내려왔다. 네. 감사합니다. 정석아. 네가 좀 앉아 있어. 형은 내가 본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응. 그리고 너 연락했어? 왜 아무도 안 와? 아.. 했는데 아직 안 오네. .. 암튼 이따 바꿔 줄 테니까. 가 있어. 형이 하려다 만 말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그래 연락이라도 돌려야 하는 거겠지.. 엄마의 시선에서 빗겨난 한쪽 벽에 등을 대고 앉아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연락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단 한번 쭉 훑어보았지만 굳이 내가 다 연락을 해야하는 건지, 내가 연락을 해도 좋은 건지, 한 명에게 하면 알아서 연락들을 해주는 건지, 그렇다면 그 한 명은 누구인지, 내가 얼마나 연락을 안 했고, 내가 그들의 경조사를 갔었는지 안 갔었는지, 전혀 생각이 돌지 않았다. 괜시리 연락처 위로 손가락만 오르락 내리락 하다 벽에 머리를 붙이고 눈을 감아 버렸다. 늘 그런 식이지. 얼굴이 신경쓰였다. 열이 오르는 느낌이 자꾸 나는 것이다. 손쉽게 후다닥하면 될 터인데.. 굳이 이런 것들을 왜 가져다 놓았나 싶을 정도로 자질구레한 게 꽤나 있었다. 버리더라도 일단은 가지고 나가서 버려야 한다. 테이프, 포스트잇, 쓰다만 펜들, 이면지, 소설책, 시집, 교과서.. 빈 A4지 박스면 된다고 생각해서 구해왔는데 이걸로 부족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굳이 나를 안타깝게 여기지도 않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임시로 온 기간제 교사이지 그들과 동료도 아니었던 것이다. 고작 몇 개월을 채우고 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마음 쓰기에는 선생님이란 직업도 만만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괜찮다. 다행히 박스를 넘기진 않았다. 서랍들을 한 번씩 더 확인하고는 닫았다. 빈 서랍이 내 손 힘을 못 이기고 빠르게 닫히면서 큰 소리를 냈다. 부끄러웠다. 내가 화나 나 보이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다. 다행히 교무실에는 선생님들이 몇 안 계셨다. 한 두 분이 잠깐 움찔하는 듯 하긴 했다. 꽉찬 박스를 오른 손으로 안았다. 툭 튀어나온 플라스틱 자가 내 눈 옆에서 아슬하게 아른거린다. 교과서와 책들을 왼 손으로 안았다. 다 챙겼다. 이제는 인사를 해야하나 그냥 조용히 나가야 하나가 걱정이었다. 교감선생님과는 이미 정리를 끝냈으니.. 나머진 뭐 안 볼 사이인데 그냥 눈에 걸리면 고개나 숙이기로 했다. 의자를 밀어 넣자 몇 분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의례적인 짧은 목인사를 나누었다. 최적의 코스를 머리로 그리고 적당히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 갔다. 아. 문 옆 자리는 지수 쌤 자리이지. 지수 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참 선생님이다. 이 학교는 사립이라 젊은 선생님들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가끔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커피를 챙기기도 했다. 나는 항상 그녀의 외모를 보며 수학보다는 문학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녀는 임용이 안되면 학원이라도 나가야 해서 수학을 선택했다고 했다. 지수 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괜히 부끄러움이 터져나와 모른 척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교무실 문은 여닫이 문인데 닫힌 그 문을 열 손이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책들을 안아 든 왼손을 꺾어대며 억지로 열어 보려고 애를 썼다. 하얀 손이 슬쩍 내 손등에 닿았다. 그리곤 문이 열렸다. 제가 좀 들어 드릴까요? 지수 쌤이었다. 아직 앳된 얼굴에 언제봐도 고운 인상이구나. 번쩍 눈이 뜨였다. 김지수 라고 작게 되내여 보면서 빠르게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뒤졌다. 김지수 연락처 안의 그 이름을 만지작 거리며 괜한 입술을 제 이로 깨물었다. 결심이 섰다. 연락처 안의 그 이름을 눌렀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 어머니께서.. 아니다 싶어 쓰던 문자를 다 지웠다. 김정석 모친상. XX병원 장례식장 6호. 발인 XX년X월X일. 그래 이 편이 더 낫겠지. 거절한 여지는 줘야 하니까. 그래 이 쯤이면 보내도 상관은 없겠다 싶다. 전송. W 상석. P Glen Carrie, Morgan Sessions. 일상 블록으로 소설 쌓기_쌓다 무너뜨리고 그러나 결국은 쌓고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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