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그냥 찬휘씨입니다. 간단하죠? 주로 홍대 주변 클럽이나 카페에서 공연하고 있구요, 버스킹은 가끔 연습하는 느낌으로 해요. 유명해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활동합니다.
Q. 아티스트라면 대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나요?
제 노래가 널리 알려지는 건 늘 바라지만, 정찬휘라는 개인의 얼굴이 팔리고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제 삶을 잃어버리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거든요. 딜레마가 될 수도 있지만, 일단 무명인 지금은 별 문제가 없네요.
Q. 생각만큼이나 예명 또한 톡특한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그냥 "찬휘씨"라고 불러달라는 의미입니다. ‘싱어송라이터 정찬휘’ 라고 하자니 좀 겸연쩍기도 하구요. 나이 먹고 시작한지라 같이 공연하는 친구들이 한참 어린 경우가 많아요. ‘형님, 오라버님 같은 어려운 호칭 말고 편하게 그냥 찬휘씨라고 불러라’ 하는 게 입버릇이 되다 보니. 지금은 열다섯 살 어린 친구도, 저보다 훨씬 연배가 위인 분도 자연스럽게 "찬휘씨"라고 부릅니다. 그게 좋아요.
Q. 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누구를 꼽으시겠어요?
삶 전반에 영향을 준 인물이자, 기어코 음악을 시작하도록 만든 뮤지션은 단연 故 신해철입니다. 처음에 하던 밴드는 모두 록이었구요. 어쿠스틱으로 전향하는 데는 이장혁의 앨범이 교과서였습니다. 지금은 같이 활동하는 동료들의 음악을 늘 공부하는 마음으로 듣습니다.
Q. 음악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또 반대로 가장 힘든 순간은?
남들의 평가보다는 제가 만든 노래, 제가 노래한 공연이 스스로 만족스러운지가 중요합니다.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죠. 반면, 관객이 집중하고 경청해주지 않을 때 힘들어합니다. 소란스런 행사장에서 분위기를 이끄는 타입은 못 되죠. 제 음악과 능력이 부족한 거겠지만 어쨌든 '존중 받지 못했다'는 느낌은 좌절감을 줍니다.
Q. 그렇게 좌절감을 느낄 땐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있다면?
술을 참 많이도 마셔봤는데, 별 도움이 안 되더군요. (웃음) 요즘은 밤늦게라도 다시 작업실에 가서 노래를 합니다. 오기로 연습하는 건 아니고, 치유의 시간이랄까요. 노래하는 걸 정말 좋아하니까요. 음악 때문이든 사적인 일이든 정말, 정말 죽을 것 같은 고뇌와 슬픔이 내 안에 쌓이고 뭉치면 그건 조만간 신곡으로 나옵니다. 나름의 좋은 재료가 되는 거죠.
Q. '그냥 찬휘씨'로 활동한 지도 3년차. 앨범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요?
정규앨범이나 디지털 음원은 아직 계획에 없습니다. 대신 아주 높은 퀄리티의 데모를 녹음 중 입니다. 10곡 이상 만들 예정이구요. 정규 앨범인데 일반적인 유통을 하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보셔도 좋습니다. 밴드셋 편곡도 많고, 좋은 뮤지션들의 피처링도 있습니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선보일 듯합니다.
Q. 뮤지션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공부와 연습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대 위의 박수갈채를 얻고 싶어서 하기 싫은 연습을 한다면 순서가 잘못된 거예요. 좋은 공연은 즐겁고 성실한 연습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결과일 뿐이죠. 바보처럼 지독하게 기초를 다지고, 끝없이 호기심을 갖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걸 저도 이제서야 깨달았네요. 이리 오세요. 같이 하시죠. (웃음)
Q. 비전공자로서 음악을 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나요?
그래서 방금의 대답이 필요한 거죠. 수많은 실용음악 전공자들, 더러는 클래식 전공자들, 메인 스트림 기획사의 연습생 출신들, 또 천재적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이들. 그 틈에서 공연을 하며 주눅도 많이 들고 열등감도 느끼던 그런 시절도 있었어요.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초부터 공부하고, 나보다 어리고 유능한 친구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애쓰고. 또 나는 음악으로 학교를 다니지 않은 대신 다른 인생경험 10년을 했으니, 그걸 어떻게든 노래에 녹여내어 장점으로 만들어보고. 그렇게 저의 길을 찾아가야죠. 즐겁게.
Q. 그렇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펌은 어디서 하셨나요?
원래 곱슬머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