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를 너무도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은하선
여성의 주체적 욕망에 대한 확고한 의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녀의 총론에 찬성하나 각론에는 이견이 있다. 그리고 오늘 리뷰는 내용이 끈끈하기에 문체는 건조하게 가져가기로 한다.
그녀는 나와 닮았지만 다르다
처음 빙글에서 매우 간략한 정보를 접했을 때는 느낀 감정은 반가움과 동질감. 하지만 그녀의 책을 완독하고 난 이후에는 닮았지만 분명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먼저 닮은 점을 열거해본다. 참고로 나는 책을 읽을 때 나자신의 경험과 끊임없이 비교해 가면서 읽고, 맞아 맞아 맞장구 치는 부분과 갸우뚱 하는 부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지점에 대해 정리하곤 한다. 성에 대한 책도 마찬가지다.
먼저 닮은 점을 확인해 본다.
섹스를 즐기고 성에 대해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대중의 오해와 낡은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한다. 섹스토이에 대해 전문가이고 섹스 판타지에 대해 정확히 나와 일치하는 시각을 가졌다. 양성애자이고 섹스의 정의를 자기애를 포함한 넓은 범위로 파악한다.
하지만 다른 점 또한 너무 많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남자와 만나면 자꾸만 하고 싶어져서 몸이 꼬이는 탓에 일단 섹스부터 하고 봤다"(p.42) 로 할 정도로 성욕이 강하다. 첫 파트너 섹스는 15세, 중학교 2학년때 경험했고, 그 파트너는 대학생 오빠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지속적으로 직장인 오빠, 직장인 아저씨 등과 적극적인 성관계를 가졌다. 책 전반에 걸쳐 너무 많은 남자들 얘기가 등장하고 반복되는 인물도 있어서 정확한 상대의 숫자를 알수 없다.
그녀는 수많은 남자를 만났고, 일단 남자와는 살을 섞어봐야 남자를 알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것을 실천해왔다. ("나에게 섹스는 관계의 시작이자 끝과 같았다. 섹스는 관계를 시작할까 말까를 결정하는 리트머스 종이가 되기도 하고. p.83) 그러다보니 당연한 결과로 어중이 떠중이 온갖 망나니들도 만났을 것이고 자연스레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제어할 수 없었던 성욕으로 무분별한 성관계를 이어왔고, 남자들에게 상처받고 이용(abuse)당하면서도 스스로 철썩같이 믿었다고 고백하는 "자지성애자"(p.183) 성향으로 남자들과 몸을 섞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었다.
그녀의 현재 시점의 도착지점은 어디인가? 결국 레즈비언 섹스였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그녀는 철저한 이성애자였으나 어느 시점 이후 레즈비언 애인만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과의 불만족스런 섹스의 종착점이 레즈비언 섹스라는 것은 그녀가 얘기하는 성해방이 모든 여성에게 제시될 수 있는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내 경우엔, 성욕이 강하고 즐거운 섹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상대가 남자던 여자던 "내가 존경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이어야 섹스가 가능하다. 은하선은 이런 나에게 고루하다고, 성욕이 강한게 아니라고, 혹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원칙을 갖고 애인을 사귄 결과, 만족스런 이성애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여자가 당연히 자신의 성적 욕망에 대해 솔직한 것이 성해방이라 생각하지만, 은하선이 주장하는 '그놈들의 섹스가 잘못됐다'는 선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그놈들과의 섹스는 달콤했다'
그녀와 내가 처음으로 내 몸의 쾌락에 대해 우연히 '발견'한 시점은 5~6세 경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다소 피학적 영상을 접하고 그 어린 나이에 혼자 그 영상을 재연해 보며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1회성으로 그쳤고, 대학 입학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내 성욕은 저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다. 은하선은 그것이 전혀 잠들지 않은 상태로 초등학생 때부터 자위에 몰두했고, 중학생때 파트너 섹스를 경험할 정도로 꾸준했던 차이가 있다.
그녀는 애널 섹스를 포함한 다양한 성경험을 했지만, 다소간의 피학성이 보이는 부분도 있다
아프니까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내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허리를 돌려 대던 그에게 화가 났고 불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보내왔던 욕 문자들이 왠지 모르게 너무나 흥분돼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p.55)
이 정도의 피학성은 일반적인 여성들에게서도 간혹 발견되는 정도의 것으로 보이며, 스스로 SM 성향은 없다고 한다. 나는 펨섭(Female Submission) 취향이고 본디지를 즐기는 SMer다. 하드하지는 않고 소프트한 에쎄머.. 소위 말하는 성향자인 점에서 그녀와 또 다른 면이 있다.
10대 성에 대한 관심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혼란스럽고 내 기존 가치관과 충동하는 부분은 바로 10대들의 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내가 평온한 10대와 사춘기를 보낸 경험이 있다보니 10대의 성욕과 섹스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그 흔한 자위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넘어간 나의 10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은하선은 15세에 첫 파트너 섹스 이후 고등학교 때는 임신과 자연유산을 경험할 정도로 파란만장한 10대를 보냈다. 그리고 이 책에선 10대들에게 섹스를 제한하는 것은 "10대들이 합법적인 성인이 될 때까지 거세된 채로 살길 바라는 건 나이라는 권력을 가진 어른들이 휘두르는 부질없는 욕심이다. 그것이 바로 '과욕'이자 '탐욕'이다" 라고 일갈한다.
솔직히 처음에 이 부분은 이게 무슨 개소리야 싶었다. 여성 성해방을 주장하다가 왜 자신이 경험한 일탈의 개인사를 갖고 미성년자 성해방을 주장하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조사해 봤다.
(2/2)
분명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십대의 성문제는 심각한 것 같다. 특히 첫 성관계 평균 연령이 북유럽보다도 현저히 낮은 것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대한 대안이 전면적인 십대 성해방일까? 그들에게 자유로운 섹스를 허하라? 은하선이 근거로 든 것 중의 하나는 조선시대의 조혼문화다.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에도 열다섯 이전에 결혼을 하는 조혼 문화가 성행했었다. 이른 임신과 출산이 산모와 아이에게 건강상 위험한 영향을 줄 수 있다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결혼'이나 '임신', '출산'이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이 그만큼 어린 나이에 섹스를 하며 살아오셨다는 점이다. (p.164)
은하선은 마치 조혼의 관례가 10대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문화였던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조혼문화는 당시 노동력 수급이 사회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환경에서 가뜩이나 평균수명이 짧은 가운데 좀 더 일찍 자손을 보려는 고육지책이었다는 점을 모르고 하는 얘기일까.
조혼 문화의 또다른 슬픈 면은 원나라(몽고)의 반속국상태였던 시절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조공으로 처녀를 바치거나 위안부로 끌려가는 일을 막기 위해 일단 결혼부터 시켜놓는 아픈 역사적 배경도 있다.
게다가 아무리 15세 이전에 혼인을 올렸다해도 만 15세에 이를때까지는 관계를 가지지 않는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한계
이 책에는 '보지'라는 단어가 족히 수백번은 등장한다. 어린 시절 눈뜬 자위의 경험부터 중고등학교 시절 만난 남자들과의 성관계의 세밀한 묘사, 레즈비언으로 성정체성이 전환된 후 마치 이성애자들에게 보란 듯이 "여자끼리도 이렇게 즐길수 있어" 라는 것을 강변하는 듯한 레즈비언 섹스 풍경의 정치한 묘사 등등..
이 책은 읽기에 따라 반쯤은 포르노 소설을 읽는 기분이고 반쯤은 급진적인 페미니즘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다. 단순히 말초적인 호기심을 넘어서 여성 성해방을 담론화하려면 좀 더 냉정한 그릇에 담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유추하는 그녀의 성의식의 변천은 다음과 같다.
유아시절부터 넘치는 성욕 > 자기 육체에 대한 관심, 자위에 의한 쾌락 발견 > 이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 > 중학교 때부터 무분별한 다수의 남성과의 성관계 > 그에 따른 평균 이하 남성들에게 받은 상처 > 페미니즘 이론 발견 > 자신의 상처는 남성들이 원인이라는 외부 귀인 논리 확립 > 대안으로서의 '완전한 섹스'로 동성애 전환
책 한권으로 남의 성의식 변화를 함부로 재단한 면이 있지만, 현재 내가 받아 들이는 느낌은 위와 같다. 이런 성의식의 변화는 책의 구조와도 유사점을 보이는데 각 챕터별 내용이 대부분 남성과의 섹스 스토리, 그리고 그 남성의 문제점,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시각으로 자신에겐 문제가 없었고 남자들의 섹스가 잘못됐었다는 결론. 그리고 결국 완벽한 만족을 주는 여성 파트너가 종착지.
조금 험하게 평한다면 일반적(혹은 보수적이라고 하자) 시각에서 봤을 때 한 소녀의 일탈의 개인사를 페미니즘의 성해방이라는 프레임으로 자신의 과거를 변호하고 윤색한다는 느낌이다.
그녀의 워딩 중에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싫은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성해방이다. 여자들이 섹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입을 열 때,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 때 비로소 진정한 성해방의 시대가 열린다고 본다.” 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 얘기는 성해방주의자들에 매우 일반적인 워딩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각론은 이 일반론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론
남의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 니가 뭔데 그렇게 조잘조잘 떠드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 내용을 자기 블로그나 카드에 써 놓은 것이라면 가볍게 '그럴수도 있지'라고 넘어가겠다. 하지만 난 그녀의 책을 비용을 지불하며 구매한 소비자 입장에서 내가 구매한 상품을 평가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사와 사상이라는 콘텐츠를 판매했으니까.
여성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고, 솔직해 질수 있을 때 진정한 성해방이 가능하다는 총론에 동의하지만 10대 성해방까지 주장하는 데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10대에도, 특히 10대 여성에게도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하겠다. 하지만 그 대안이 그들에게 섹스를 허하라는 될수 없다고 본다.
은하선 본인이 경험했듯, 10대의 섹스는 불안하고 위험하고 무모하다. 내가 생각하는 섹스의 기준..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시기는 자아가 분명히 선 이후가 맞다고 본다. 이것은 종교적이나 윤리적인 기준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 대해 분별력이 떨어지는 시기의 10대 소녀가 섹스 파트너를 찾는다는 것은 성인 남성들의 성놀이개 정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녀가 본인의 입으로 고백한 과거사가 저정도인데 만일 당시 파트너들였던 남성들의 시각에 같은 일들을 바라본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매우 궁금하다.
다만 무조건 10대의 성욕을 무시하고 쉬쉬하는게 답은 아니다. 리얼한 성교육을 통해 현실적 위험성과 자위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십대 뿐만 아니라 성인의 자위에 대해서도 마치 큰일날 얘기를 하는 것처럼 호들갑 떨고 수치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놈들의 섹스가 그렇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도가 되겠다. 자신의 무분별한 선택에 의한 부정적 결과를 일반화시켜 남성 전체의 섹스가 부정되서는 안되겠다. 아, 이렇게 말하면 또 누군가는 "명예남성" 나셨네 비아냥거릴랑가? 뭐,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놈들" (지금은 그분 뿐이지만) 덕분에 행복감을 느끼니까.
- 혜연
참고 자료
신동아 인터뷰 "그래 나 섹스 좋아한다 어쩔래" , 2015년 10월호
책 내용의 상당부분이 요약되어 인터뷰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