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소비자·구직자만이 옥시 사태 재발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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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비자는 착하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외국기업 관계자들도 한국 소비자보다는 다른 나라 소비자들보다 착하다고 합니다. 물론 칭찬은 아니죠. 왜 그럴까요.

각종 이슈가 터질 때마다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이 없지 않지만, 실제 기업의 변화를 끌어내기까지 전개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불매 운동 성공한 사례가 과거 두산 페놀 사건 때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1991년 두산은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으로 불매운동에 직면해 부동의 선두였던 맥주시장에서 2위로 밀려났고 결국 두산은 맥주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불매운동에 휘말렸지만 해당 기업은 별 문제 없었습니다. 불매운동이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2013년 우리사회에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남양유업의 경우 당시 불매운동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남양유업의 대응이 너무 엉성하고 소극적이어서 더욱 그랬죠. 이 때문에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이 줄어드는 한때 흔들리긴 했죠. 하지만 불매운동이 무색할 만큼 남양유업은 시장에서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습니다. 여전히 국내 분유 시장 점유율 1위입니다.

지난해에는 부자·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촉발된 롯데 사태가 불매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황제경영, 비밀경영으로 시장 질서를 해쳤을 뿐 아니라 불공정 경쟁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지적이 쏟아졌기 때문이죠. 식품사업을 비롯해 영화관, 놀이공원, 호텔, 카드사, 편의점, 마트, 쇼핑몰, 백화점 등 롯데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소비재가 주력이기 때문에 불매운동의 파괴력이 대단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예상과 달랐죠. 본격적으로 불매운동에 돌입했던 지난해 7월 롯데마트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위메프 ‘채용 갑질’ 논란, 해피랜드 대리점 갑질 논란, 미스터피자 회장 경비원 폭행, 몽고식품 막말, 금복주 회장 결혼 여직원 퇴사 강요 등 기업들의 부도덕 행위에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으로 막서고 있지만 효과는 시원치 않은 것 같습니다.

국내 불매운동이 이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전문가들은 소비자 불매운동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방증한다고 설명합니다. 정부가 기업의 불공정행태를 제대로 규제하면 굳이 소비자들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얘기죠. 하지만 정부가 부도덕 기업 처벌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데 불매운동으로 더욱 나빠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사건이 터지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시간만 지나기를 바라는 거죠. 위에 언급했던 사건 중 제대로 수사 받거나 처벌받은 경우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매운동에 참가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생각보다 큽니다. 불매운동 대상이 된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즐겨 사용하는 소비자라면 불매운동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이런 불편을 무릅쓰고 불매운동을 벌인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자괴감도 있습니다. 앞의 사례처럼 수많은 불매운동이 있었지만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만한 것이 두산말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착한 심리도 불매운동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기업들의 부도덕 행위에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해당 기업에 다니는 직원이나 협력업체 등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기업들도 이를 악용해 불매운동이 벌어지면 해당 기업의 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들에까지 피해를 줄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외국 정부와 소비자들은 다릅니다. 부도덕한 기업은 철저히 응징합니다. 미국의 에너지 회사 엔론이 대표적이죠. 1931년에 설립된 엔론은 연간 1000%가 넘는 고성장을 거듭하며 2000년 매출 1000억 달러를 돌파해 미국 재계 7위에 이름을 올리는 신화를 썼습니다. 하지만 2001년 12월 엔론은 돌연 파산했죠. 차입에 의존해 무리하게 추진한 신규사업의 실패들을 CEO(최고경영자) 제프리 스킬링과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이 짜고 분식회계로 덮은 채 주가 높이는 데만 열을 올리다 끝내 파국을 맞은 것입니다. 2000년 매출은 실제론 63억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죠. 엔론은 미국 정부는 물론 소비자들로부터 엄청난 지탄을 당했습니다. 결국 40개국 약 2만1000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고, 주당 90달러까지 치솟았던 엔론의 주식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습니다.

엔론 사태 이후 미국 정부는 ‘제2의 엔론’이 나오지 않도록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사베인-옥슬리법’을 제정했습니다. 제프리 스킬링은 2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데 최근에야 14년형으로 감형받았습니다. 비리 규모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긴 하지만 우리나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03년 분식회계 혐의로 7개월간 수감됐던 것과는 차이가 확실히 납니다.

일본 유키지루시 유업의 사례도 주목할 만합니다. 1925년 설립된 이 기업은 한때 일본에서 8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연 매출이 1조3000억엔(약 13조원)에 달할 정도였죠. 그런데 2000년 6월 일부 소비자가 이 회사 우유를 마시고 식중독에 걸렸습니다. 당시 유키지루시 유업 CEO는 “해당 우유와 식중독의 연관관계는 증명된 바 없다”고 발뺌했죠. 이후 식중독 환자가 1만5000여명까지 늘어나자 “공장의 기계 하나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그 기계는 이미 가동 중단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기계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는 게 방송을 통해 보도되면서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결국 스노우 우유로 유명한 유키지루시 유업은 문을 닫았습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일명 옥시 사태는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현재까지 239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시작은 무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영유아와 산모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PHMG)가 1994년 SK케미칼에 의해 국내에서 처음 개발됐기 때문이죠. 이후 인체 호흡독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1997년부터 가습기 살균제품들이 속속 출시되어 매년 60만 개씩 팔렸습니다. 그러다 5년 후인 2002년 옥시 제품을 사용한 유아가 사망하는 첫 사례가 발생했고, 2006년에 원인 미상의 소아 급성 간질성폐렴 사망자가 또 발생했습니다. 2011년 임산부 4명이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연이어 사망하자 보건복지부는 그때서야 역학조사에 들어갔고,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미상 폐손상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첫 의심 사망자가 나온 2002년도 아니고 보건복지부의 발표가 있었던 2011년도 아닙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최초 사망 이후 9년이 지나서야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고, 14년이 지나서야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기업에게 법적 책임을 따질 수 있게 된 셈이죠.

이런 정부의 안일한 대처 때문에 옥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서울대·호서대 실험 결과를 조작하기까지 했습니다. 사건 당시 회사를 이끌었던 신현우 전 대표도 검찰조사 이후 “성실히 답변했다. 너무 피곤해서 말이 안 나온다”라고만 한 뒤 검찰 청사를 떠났죠. 희생자들에게 한마디 사과도 없이 말이죠.

재미난 것은 이런데도 TV에서는 ‘빨래 끝~’ 등 옥시 광고가 계속 나온다는 점이죠.

실제로 옥시는 지난 1월에만 생활용품과 스트렙실 등 일반의약품 광고로 무려 22억원 가량을 사용했습니다. 자신들의 부도덕한 점을 가리기 위해 광고를 쏟아 부은 것이죠.

그동안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관련 기업들 가운데 처음으로 공식 사과한 롯데마트도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피해보상전담팀 구성을 마쳤다고 밝혔지만 정작 법원이 피해자 5명에게 '2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하자 이의 신청을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들만이 아닙니다. 가습기살균제에 연관된 업체가 무려 10개에 달합니다. 옥시, 롯데마트 이외에도 애경, 홈플러스, 세퓨, 신세계 이마트, 엔위드, 코스트코, GS리테일, 다이소 등은 지난 15일 시민단체들에 의해 살인기업으로 지정됐습니다.

아직 사태의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 두산이후 명맥이 끊겼던 불매 운동 성공한 사례에 옥시가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SNS와 커뮤니티 등에서는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에서 출시되고 있는 제품들의 목록을 공유하며 불매 운동이 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옥시크린, 파워크린, 오투액션, 더블액션, 쉐리, 에어윅, 아로마겔, 향기톡톡, 물먹는 하마, 냄새먹는 하마, 하마로이드, 피니시, 데톨, 비트, 숄, 이지오프뱅, 옥시싹싹, 하픽, 스트렙실, 개비스콘, 무브프리 등이죠. 롯데마트·홈플러스 등도 불매운동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혹시 과거의 사례처럼 해당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을 걱정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착한심리가 발동해 유야무야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긴 합니다.

실제로 해당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경영진의 부도덕 때문에 자신들도 부도덕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 때문이죠. 불매운동이 성공한다면 이들은 한순간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한번 불붙기 시작한 불매운동이 과거처럼 쉽게 사라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매운동으로 부도덕한 기업을 퇴출시킨 경험을 쌓은 소비자들이 더 눈에 불을 켜고 응징에 나설 가능성도 큽니다. 아무리 TV·신문 광고로 이미지를 포장하더라고 자신들의 부도덕을 덮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SNS·CCTV 등의 확산으로 바로 공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회사에 취업할 때는 기업들의 윤리관도 꼼꼼히 살펴야 할 듯합니다. 자칫 부도덕한 기업에 입사했다가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구직자들은 자신을 고용할 기업이 어떠한 윤리관을 갖고 있는지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구직자들은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글들을 읽어보거나 기업의 과거 역사를 꼼꼼히 챙긴다는 이야기죠. 물론 기업 윤리관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얻기는 매우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익명 직장리뷰 사이트인 ‘글래스도어’ 등을 통해 기업윤리관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기업의 윤리관을 엿볼 수 있는 사이트가 최근 늘어나고 있습니다. 트위터 익명 신문고 ‘대나무숲’, 게임업계 이슈들을 공유하는 ‘꿀위키’, 모바일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기업정보 사이트 ‘잡플래닛’ 등이 대표적이죠. 구직정보·연봉·복지 등은 물론 기업 속사정도 공유되곤 합니다. 몇 년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기 만들었던 대한한공 ‘땅콩회황’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도 바로 블라인드 덕분이었죠.

“선은 악마저도 포용하고 받아안는 것이지요. 허나 정의는 악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정의는 오로지 악을 방벌함으로써 정의롭습니다.”

얼마전 인기리에 끝난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어린 이방원이 남긴 말입니다. 우리국민들도 이젠 착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악을 용납하지 않는 정의로운 이미지를 갖춰야 합니다.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을 불매운동으로 벌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해당 기업에는 입사지원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도덕한 기업에 입사했다가 부도덕한 기업에 다녔다는 낙인이 찍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거부하는 현명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야 부도덕한 기업은 우리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고 우리 소비자들이 착하지만 않고 정의롭다는 것을 기업들이 제대로 깨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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