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외곽에 위치한 공동묘지이지만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32A구에 있는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브람스의 묘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중앙묘지는 원래 빈 시내에 흩어져있던 5개의 공동묘지를 1894년 이곳으로 한데 모아 새로 조성했는데 그러면서 음악가들도 한 곳에 새로 안장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묘지답지 않게 소박한 묘비만 있는 것이 이채롭게 느껴지는 곳이에요.
다만 모차르트의 경우 그의 시신을 찾을 수가 없어 묘지가 아닌 기념비만 세웠다고 해요.
우리 나라와는 다른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는 이곳의 장묘 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 묘지가리 보다는 공원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편 뒤편으로 가면 영화 '제3의 사나이'의 배경이 되었던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운명'이 탄생한 곳이 바로 이곳이에요. 베토벤은 1804~1815년 사이 이 집에 여러 번 거주하며 작곡활동을 했는데 파스콸라티는 이 집의 주인 이름으로 사실 베토벤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빈 대학 건너편에 샌드위치 체인점 Subway가 있는 조그만 광장이 있고 광장 뒤편에 나지막한 언덕 집 4층에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1781년부터 3년간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으로 여기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에요. 그는 이곳에서 인생의 가장 행복한 기간을 보냈다고 해요.
피가로 하우스에는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 및 그의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슈베르트는 이 곳에서 1797년 1월 31일에 태어나 3년간 살았다고 해요. 생가에는 각종 그림, 작품의 초고, 그가 연주하던 기타, 그가 썼던 안경 등이 전시되어 있어요.
그는 밤에도 안경을 벗지 않고 잤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베토벤을 너무나 존경하여 사후 베토벤의 묘지 근처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을 정도라는데, 그의 그런 바람은 후세에 의해 잘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슈테판 성당의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빈으로 이주, 이후 30여 년간을 후원자의 저택에서 생활했다고 해요. 이후 그의 집을 나온 이후 잠시 영국생활을 하다 돌아와 1973년 이 집을 구입하였고 1797년에는 2층을 추가로 구입한 이후 1809년 죽을 때까지 거주했습니다. 그는 이 곳에서 '천지창조', '사계' 등의 명곡을 작곡했어요.
브람스의 기념관도 함께 있습니다.
168곡의 왈츠를 남긴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는 이곳에서 1864~1870년까지 그의 첫 번째 아내 Jetty와 거주하였으며 '블루 다뉴브 왈츠' 를 작곡했어요. 가구와 의상, 악기 등 대 작곡가의 일상을 당시의 모습대로 전시해 놓고 있으며 그 밖에 그림, 사진, 신문기사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음악가의 흔적을 따라가는 오스트리아 여행 코스는 피그마리온 출간한 <이지동유럽>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