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연 6800만원 이상을 받는 소득 상위 10% 대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장관은 ‘임금인상 자제’의 범주에 공무원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공무원 평균 연봉이 대기업에 못 미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공무원의 올해 평균 연봉 추정액은 5892만원으로, 여기에 각종 수당과 혜택을 포함하면 대기업 연봉과 별 차이가 없다.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한 이기권 장관 자신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이기권 장관은 올해 1억2086만원을 연봉으로 받는다. ▲이와 별개로 지난 1년간 그가 사용한 업무추진비만 7663만원에 달한다. ▲구조조정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장관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런 말을 설득력 있게 하려면, 2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연소득부터 삭감 내지 동결하고 나서 할 일이다. ▲임금 근로자들이 보고 싶은 것은, 고위공직자들의 말이 아니라 솔선수범이다.
View
이기권 장관이 고용노동부 수장에 오른 건 2014년 7월이다. 그는 노동부 고용정책 심의관,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고용노사 비서관, 노동부 차관 등 ‘노동 분야’에만 30년간 몸 담았다.
이런 경력을 가진 이기권 장관이 28일 눈에 띄는 발언을 했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30대 그룹 CEO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해운·조선업 등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과 관련해 “연 6800만원 이상을 받는 소득 상위 10% 대기업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업의 임금인상은 노조가 있는 경우, 대부분 노사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럼에도 장관이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압박으로도 비쳐질 수 있다. 이기권 장관의 자체 요청이 임금협상의 가이드라인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장관의 임금인상 자제 요청은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은 중소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3월 1일 고용노동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근로자 5~300만 미만인 사업체의 월평균 임금은 311만 3000원이다. 연봉으로 치면 3735만원이다. 이는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 근로자의 평균 연봉 6020만원의 62% 수준이다.
왜 ‘공무원’은 포함시키지 않았나?
이기권 장관은 “연봉 6800만원 이상인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임금인상 자제’의 범주에 공무원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공무원의 연봉이 대기업에 못미치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공무원의 평균 연봉은 대기업 평균 연봉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행정자치부가 27일 관보를 통해 고시한 올해 공무원 전체의 기준소득 월 평균액은 491만원이다.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5892만원(세전)이 된다. 지난해 대비 5.1%(24만원)나 인상된 금액이다. 공무원은 여기에 각종 수당과 연금매장 등 할인혜택이 추가돼, 실질 소득은 이보다 더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장관의 연봉은 공무원 평균 연봉의 2배에 달한다. 인사혁신처의 ‘공무원 보수·수당 규정’에 따르면, 장관들은 올해 1억 2086만원의 연봉을 받는다. 별도로 쓸 수 있는 업무추진비는 물론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각 부 장관의 업무추진비는 해당 부처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이기권 장관은 20015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1년간, 총 7663만 7000원을 업무추진비로 사용했다.
월별로 보면 2015년 ᐅ3월 1072만3000원, ᐅ4월 694만8000원, ᐅ5월 437만3000원, ᐅ6월 461만원, ᐅ7월 465만9000원, ᐅ8월 386만1000원, ᐅ9월 677만8000원, ᐅ10월 503만5000원, ᐅ11월 473만1000원, ᐅ12월 793만9000원, ᐅ2016년 1월 460만4000원, ᐅ2월 339만4000원, ᐅ3월 898만2000원이다.
이기권 장관의 경우, 업무추진비로만 상위 10% 대기업 임금 근로자의 연봉(6800만원)보다 800만원 더 많은 7600만원을 사용했다. 그의 업무추진비 7663만7000원에 연봉 1억2086만원을 합치면 1억9749만7000원으로, 2억원에 가깝다.
노동부 장관부터 먼저 모범을
상위 10% 대기업 임금 근로자들을 향해, 임금인상을 자제해 구조조정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 한 이기권 장관의 발언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한 해에 2억원 가까운 거액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장관이 민간기업에 ‘자제 요청’을 하려면 스스로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기권 장관을 포함해, 각 부 장관들과 고위 공무원들, 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의원들의 연봉(세비) 동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