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책사의 자세

유비가 손권과 손을 잡고 적벽에서 조조를 크게 물리친 뒤였다. 조조는 제갈량과 주유의 화계에 대병력을 잃고 패퇴하는 중이었다. 삼국지연의 소설에서는 100만 대군이라고 표현되었으나, 실제로는 20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당시 중국인구가 2천만 남짓한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병력임에는 틀림없다. 아무리 풍부한 물자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조조라도 그런 병력의 거의 대부분을 한순간에 잃었으니 처지가 말이 아니었다. 이때 조조의 퇴로를 귀신같이 예견한 제갈량은 조조가 가는 길목마다 유비의 맹장들을 배치해서 가뜩이나 고단한 조조를 더욱 괴롭혔는데, 조조가 마침내 더는 견딜 수 없을 관문에는 관우를 보냈다. 관우는 일찍이 조조에게 투항하여 극진한 대접을 받은 적이 있어, 조조는 관우에게 옛 은혜를 상기시켜 위기를 모면했다. 관우가 이 때 조조를 놓아버린 까닭에 결정적으로 역사가 바뀌었지만, 제갈량은 굳이 관우를 보낸 까닭이 있었다. 먼저 제갈량이 유비의 휘하에서 2인자로 군림하기 전 관우와 장비는 제갈량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했던가, 삼고초려에서 관, 장 두 형제가 보여준 행동만 보아도 이들이 제갈량의 합류를 못미더워했다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제갈량은 본의 아니게 미묘한 서열싸움을 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화용도에서 관우의 실책으로 말미암아 본격적으로 2인자로 군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제갈량은 관우를 보내면서 조조를 놓치면 목을 내놓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했는데, 그는 일찌감치 관우의 사람 됨됨이가 조조를 죽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후에 제갈량이 자신의 책략을 지휘할 때 불필요한 언쟁을 미리 제거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유비의 아우인 관우도 제갈량에게 어쩔 도리가 없는데 누가 감히 그의 권세에 도전하겠는가? 어떻게 본다면 치졸한 서열싸움에 관우의 인품을 이용해먹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화용도에서 조조의 목을 벤들, 이미 위의 형세는 막강하고 그의 후세를 이을 후계자도 있었다. 만약 관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시켜 조조를 베었어도 상황이 크게 좋아지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비는 세력이 빈약했으며, 오히려 오나라만 좋게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었다. 때문에 애초에 그가 제시한 천하삼분지계를 완성해 유비에게 안정적인 기반인 서촉땅을 얻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만일 위나라가 위태로운 사이 오나라가 강성해지면 위협하는 나라만 바뀔 뿐,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를 알고 있었던 주유는 그 누구보다 제갈량을 죽이기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오히려 제갈량에게 농락 당한다. 하나의 세력을 멸하고도 다른 세력을 방비할 만큼 큰 힘이 있어야 진정한 천하통일의 길로 갈 수 있었던 것을 제갈량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관우가 죽고 형주를 빼앗겨 일이 꼬여버렸지만 천운도 그를 도왔다면 중국 역사는 또 다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제갈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한 것이다. 아주 전략적이고도 심리적인 요소까지 간파한 그의 계획 덕택에 그는 자신의 뜻을 펼쳐 주군을 도와 잠시나마 유비가 서촉에 형주땅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차지하게 해주었다. 전략의 세계는 눈 앞에 놓인 이익도 다가올 영향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큰 그림을 그려놓지 않고 이익만 취하게 되면 결국 잡탕의 뭣도 아닌 그림이 된다. 완성하려는 그림의 조각에 부합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취하고, 그림의 일부가 될 수 없다면 아무리 탐나는 것일지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또 그 상황들을 적절히 유익하게 이용할 줄도 알아야한다. 즉 이익을 보존하는 것보다 손해를 이익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남몰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자신이 뜻한바가 이루어지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 손자병법에서도 나오듯 내실을 다지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모든 승리의 기본이자 책사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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