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의 슬픈 일대기와 잘못 알려진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

그녀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 그녀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은 1599년 9월 11일입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 22살.



이 작품과 뒤에 설명드릴 스탕달 신드롬이 연결된 것은 스탕달이 베아트리체 첸치의 이야기를 발굴한 덕분인 것으로 추정

베아트리체 첸치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망나니였다고 합니다. 치정 사건으로 세번 감옥에 갔었는데 그때마다 돈과 지위를 이용해서 빠져나왔다고 하고요.. 아내와 아이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학대하는 일을 일삼았다 합니다. 돈은 많은데 엄청 구두쇠여서 스페인에 유학간 아들들에게 돈을 안 보내줘서 아들들이 구걸을 해서 연명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네요. 베아트리체는 첫번째 부인의 둘째 딸이었는데요. 그녀의 언니가 결혼할 때 지참금이 나간 것을 원통하게 여긴 아버지는 베아트리체는 결혼시키지 않으려고 감금하다시피 했다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아름답게 성장하자 욕정을 품고 친딸을 지속적으로 겁탈했다고 합니다.

(작품정보 : Elisabetta_Sirani_Retrato_de_Beatrice_Cenci_1662)

상시적 폭력과 근친상간을 못 참은 가족들이 하인들과 함께 어느날 밤 가장을 망치로 때려 죽이고.. 이를 망루에서 떨어진 것처럼 위장했는데요.. 결국 사실이 발각되어 아직 어린아이인 막내를 제외한 전 가족이 참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시민들의 여론은 비참한 운명의 희생자였던 베아트리체에게 동정이 쏠렸고 마지막에 극적인 사면을 기대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 2>에 의하면 당시 첸치가의 비극에는 무서운 음모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 첸치는 당시 교황 클레멘스 8세의 눈엣가시였다고 합니다. 명문 귀족에다가 상당한 영지와 대단한 재력가였음에도 신을 모독하는 말을 일삼고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프란체스코 첸치를 교황 측에서 암살하고 그 죄를 첸치 가족에게 씌웠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묘하게도 당시 첸치가의 나머지 가족들은 수사가 진행될 동안 도망칠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도망가지 않았고.. 그들의 자백 또한 모진 고문 끝에 나온거라고 하네요. 자신들의 무죄가 밝혀질 것을 확신했기에 도망가지 않았다는 주장이죠. 다만... 이것은 정황에 따른 추정에 불과하고 진실은 이제 영원히 알수 없는 시간의 퇴적층에 뭍혀버렸지요. 한가지 확실한 것은 첸치가가 절멸하면서 막대한 영지와 재산이 고스란히 클레멘스 8세 교황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 정도입니다.

위의 가정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베아트리체 첸치는 더더욱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거죠. 어릴때부터 폭력에 시달리고.. 성장한 후에는 친아버지에게 수시로 겁탈을 당하고.. 그나마 그 아버지마저 암살을 당했는데 그 죄를 자신이 뒤집어 쓰고 죽어야 했다면 죽기 직전에 세상을 향해 저주라도 퍼붓고 죽어야 했을 것 같은데요... 베아트리체 첸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해요.



엘리사베타 시라니의 위 작품은 그녀의 스승인 귀도 레니가 그렸던 바로 아래 그림을 보고 다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베아트리체 첸치>, 귀도 레니 作

처음 소개드린 작품과 비교해서 어떠신가요.. 저는 원작을 뛰어넘는 모작이라고 하고 싶은데요.. 귀도 레니의 작품에 나타난 베아트리체는 홍조를 띤 볼에 붉은 입술.. 물론 예쁜 아가씨의 모습이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다음날 죽음을 맞이하는 이의 처연함도, 세상에 대한 원망도, 혹은 악몽과 같은 이 땅을 떠나는 후련함도 느낄수 없는 그냥 평범한 여성의 모습입니다.

반면에 시라니의 위대한 모작은 바라보는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떨림을 주는 애잔함이 뭍어있어요. 분명 엘리사베타 시라니는 같은 여성으로서 느낄수 있는 공감을 신들린 솜씨로 그려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온갖 고생과 오욕으로 물들었던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쉬울 것이 있었을까요. 오히려 살아있는 나날이 더 지옥같았을 수도 있을것 같아요. 그녀는 처형대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여성으로서는 부끄러운 자세로 처형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가슴을 드러내도록 옷이 벗겨진 채로 말등에 올라타는 것처럼 생긴 형틀에 올라앉아 참수를 당했다고 하는데요..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는 늠연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시라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에는 그녀가 이 세상에 대해 마지막으로 남기는 침묵의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을 저처럼 끝없는 불행으로 살다간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저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조용히 마음의 평정을 안고 저 세상으로 건너가렵니다. 부디 여러분은 소중한 인생을 값어치있게 살다 오세요... 먼저 갈께요..." ㅠㅜ

스탕달 신드롬



흔히 스탕달 신드롬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피렌체산타크로체성당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품을 감상한 사람들 가운데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거나 정신적 일체감, 격렬한 흥분이나 감흥, 우울증·현기증·위경련·전신마비 등 각종 분열증세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현상이 스탕달 신드롬으로, 이 현상을 처음으로 기록한 스탕달의 이름을 따서 심리학자들이 명칭을 붙인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탕달 신드롬 [Stendhal syndrome] (두산백과)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는 산타 크로체 성당에 걸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우리나라 백과사전에는 귀도 레니 얘기가 실려있지만 당장 위키피디아 영문판만 봐도 내용이 이렇습니다.

Stendhal

Santa CroceGiotto's frescoes for the first time and was overcome with emotion

산타 크로체 교회를 방문했을때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감동에 사로잡혔다는 거죠. 조토의 프레스코화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성 프란체스코의 장례식>, 조토, 14C, 프렌체 산타 크로체 교회, 프레스코화

시라니의 <베아트리체 첸치>를 보고 다리에 힘이 빠지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법도 한데.. 위의 프레스코화에서 그렇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니 좀 의아하기도 하죠..? 위 작품의 장례식의 주인공이 성 프란체스코.... 하필이면 베아트리체 첸치의 아버지 이름과 동일하다는 것도 무슨 농담같은 우연의 일치네요..

스탕달이 <첸치 일가>를 써서 베아트리체 첸치를 세상에 알린 것과 혼동이 생겨 우리나라 백과사전에까지 버젓이 소개될 정도로 된 모양인데요. 어쩌다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그렇게 알려졌는지 모르겠네요.

이탈리아 사람과 일본 사람에게는 증세가 일어났다는 보고가 없다

아무튼 베이트리체 첸치.. 천국에서는 행복하길 빌어요~~

- 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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