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 부치는 소설들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다... 우리 소설의 현재라고 할 수 있는 소설들. 책읽기도 바쁜 시간들에 단편이 소설이 가야할 길일까? 단편소설을 보는 맘이 편하긴 하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한 권이 책장에 꽂힐 터이니...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은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로 친근한 한강의 수상작이다. 우선 문장이 좋다고 해야 하겠다. 시를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글이 섬세하고 예리하다. 표현이 독특한데 인물이 있는 순간을 담백하고 적확하게 묘사한다고 할까? 그랬다. 한강을 마주한 느낌. 그녀는 평범한 민간인으로서 특별한 소설가가 되었나 보다. 강영숙의 글 <맹지>를 읽으며 토마스 만을 읽는 것 같았다. 헌데 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소설 속 인물이 그녀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가점을 부여한다. 내가 읽었던 토마스 만의 단편이 에세이스럽고 개연성이 떨어진다 싶은데, 강영숙의 소설은 그보다는 치밀하고 이야기가 있다만, 이유 모를 서사들의 배치는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해서, 해석의 다각화를 이끌어 낸다. 그것이 문체라면 비평은 있을지언정 비판할 수는 없겠다. 권여선의 <이모>는 어쩌면 평범한, 어쩌면 간결한 서사이고 묘사이겠다. 이해하기 쉬운 글이어서 생각을 붙잡는다. 이해로 여유로운 공간에 생각을 불러들인다. 죽음이라는 것, 늙어간다는 것, 혼자라는 것, 희생이라는 것, 선택이라는 것은 무한한 사유를 낳기 때문이며 서사는 담백하나 소재는 가히 가볍지 않은 이유이리라. 김솔의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제목도 등장인물도 낯설다. 영국의 런던, 피커딜리 서커스 근처 맥도날드 지하 화장실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시에라리온 출신 흑인 하마드 세와(바이 브레)와 타이베이 출신 루 첸, 벨기에 출신 장 크리스토프 드니가 세상과 조우하는 방식이 블랙 코미디다. 우습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세계에 만연한 상업주의의 폐해와 물신주의의 팽배함이 서글프면서도 우스운, 웃픈 상황을 전개시킨다. 색다른 소설이었다. 종로 3가 피키디리 극장의 이름의 유래가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 거리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얼핏 생각난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름 지은 이가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거리가 좋았던지 그 흥행을 가져가고 싶었던지 관계가 있었나 보다. 김애란의 <입동> p234 나이 드신 양반의 악의 없는 참견과 잔소리도 묵묵 감내하는 듯했다. 아니 감내했다기보다 의식하지 못했다 할까 안 했다 할까. 적당한 말을 몰라, 그냥 그게 말이니 싶어 저쪽에서 열심히 구사하는 몸짓을 아내는 수신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좀 바빴다...? 무슨 말인지 좀... 평론가의 글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이야기가 살짝 담겼다. 언젠가 신문에서 보았던 마트의 일화가 묘사되었다. 보상금과 현실의 시간, 영우 아빠와 엄마의 과거의 시간과 삶의 개별성.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그냥 담담히 볼 수 없는 문자들이 나열됐다. 작가 김애란은 철저히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되짚는 작가인가 보다. 글에 대한 평론이 그러한 것을 보면... 손보미의 <임시교사>는 착한 여자에 대해 쓴 소설이란다. 타인의 삶에 개입을 자제하는 보모로서 전직 임시교사였던 P부인의 일상이 떳떳하면서도 구차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삶'이라는 절대자에 굴복하는 듯한 순응적 삶이 '가장 주도적인 삶'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P부인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이 지난 뒤 안정 속에서 보모에 대한 불쾌함을 느끼는 젊은 부인에게서 나약하고 우매한 정신의 인간 전형을 본다. 그 저변에는 물신주의(物神主義)가 깔려 있다. 물(物)에 대한 무심은 현대에서는 진정 불가능한 것일까?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고 싶다. 과연 착한 사람들이기는 할까?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하다는 것일까? 적어도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면 착하다고 할 수 있을까? 교수이면서 작가인 화자 이 교수는 이들로 인하여 글에 대한 부담을 좀 덜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은 선의로, 악의로 타인의 심리를 이용한다. 그것은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한지, 누가 약자이고 강자인지,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뭔지, 약자의 화를 받는 애꿎은 사람은 또 다른 약자가 아닌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화는 제도의 문제가 아닐지... 그런 생각들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정소현의 <어제의 일들>은 화자의 장애가 어디까지인지 분명치가 않다. 노트를 뒤적이며 확인하고 읊는다고 하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혼란할 수밖에 없다.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데 제법 정확하게 기억을 서술한다. 화자를 제 삼자로 했더라면 어땠을까? 좀 더 개연성있는 접근이 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무욕 자족의 삶에서 오는 다행, 사고를 당한 상현 스스로가 다행의 삶이라고 되뇌이는 장면은 어쩌면 자기 최면처럼 들리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 몸에 새겨진 때문이리라. 조해진의 <사물과의 작별>은 한 시대를 거슬러 과거를 돌아본다. 물론 화자가 아닌 고모를 통해서다. 고모의 죄책감과 숨겨왔던 연정 속에서 시대를 관찰하고, 지나온 시간에 유실물로 전락한 두 남녀의 쉽지 않은 일생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주체적 개입을 하는 화자가 있다. 서사가 약간은 구시대적 느낌을 자아내는데 느낌이 현재로 이어져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는 짐작으로만 가늠할 뿐인 아련한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들이다. '유실물센터'라는 소재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느 소설가가 유실물센터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엮었던 듯도 하다. 황정은의 <웃는 남자>. 아버지가 직원의 죽음 앞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던진다.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게 한다고 평론가는 얘기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은 명령이 아니라 두려움이었고 위로함이었다고, 보다 인간적인 말이었다고 생각되었는데...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세월호를 연상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결국 주요 제재는 죽음이었고 사고였고 남은 자의 번민이었다. 이래나 저래나 세월호와의 연결은 끊을 수 없다. 이야기는 독백으로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소설을 전에도 보았던 것 같다. 그 작가가 아마도 황정은이었으리라. 그녀만의 문체였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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