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화의 한 획을 그은 5·18 민주화운동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 심한 일교차로 감기에 걸리기 쉬운 계절이니 모두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블로그지기는 여러분께 조금 가슴 아픈 역사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바로 5월 18일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5주년이 되었기 때문이죠.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 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민주정부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했던 민주화 운동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시해됨으로써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리고 공석인 대통령 자리를 놓고 ‘대통령 대행체제’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정국을 틈타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루어진 신군부세력이 군사 쿠테타를 일으켰습니다. 바로 이것이 12·12 군사반란입니다.

이 12·12 군사반란로 군부와 정치권을 완전 장악한 신군부세력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군사 통치를 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에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이는 전국적인 저항운동으로 확산되어갔습니다.

출처:5.18기념재단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은 전라남도 광주의 각 대학을 장악한 후 학생들의 등교를 막으며 학생들을 무차별 구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분노한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계엄 철폐’, ‘휴교령 철폐’를 외치며 광주의 중심대로인 금남로로 진출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5월 20일 계엄군은 끝내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고 이에 시민들은 무장하여 시민군을 조직했습니다. 평화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노력했지만 계엄군의 협상거부로 결렬되었습니다.

그 당시 시위대의 규모는 20만 명 이상으로 대규모의 시위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처:5.18기념재단

5월 21일 시위대의 대표가 계엄군 철수를 요청하며 도청 앞에서 도지사와 협상을 벌였으나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

5월 26일까지 쑥대밭처럼 변해버린 광주 시내에서 계엄군과 시위대가 공방전을 벌였으나 5월 27일 도청을 사수한 시위대를 향해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무차별 발포를 가해 도청을 장악함으로써 결국 시위는 강제진압 되었습니다. 5.18 기념재단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 사태로 사망 154명, 행방불명 70명, 부상 1,628명 등 총 4,362명의 피해가 났습니다.

이후 국내 및 세계에 5·18 민주화운동이 알려지면서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확산하기 위해 2011년 5월,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정식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출처:위키미디어

여러분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겐 당연한 권리로 생각되는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바쳐 쟁취한 위대한 사명일 것입니다. 민주영령과 민주유공자분들의 노력으로 얻어낸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태도와 그들을 추모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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