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를 까보이는 행동에 대한 고찰 160530

<미완성 교향곡>, 산드라 키아, 1980 우리 문화권에서는 남의 앞에서 맨 엉덩이를 보이는 행위가 너무 낯설기만 한데요. 공개적으로 그런 경우가 있다면 예전에 태형(엉덩이 매질)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때도 맨엉덩이를 까고 때린 것이 아니라 옷 위에 물을 뿌리고 내려쳤다고 하죠? 외국영화나 유투브 영상을 보면 심심치 않게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카메라에 향해 흔드는 것을 볼수 있는데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엉덩이를 보이는 행위는 상식적으로 몇 가지 경우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자의적인 경우와 타의적인 경우. 타의적인 경우에는 수치와 고통을 동반합니다. 현대에도 태형을 실시하는 국가에서는 공개적으로 엉덩이를 까고 태형을 실시하고 있고, 중세에 마녀사냥시에도 수백명의 수녀들까지 공공장소에서 맨엉덩이에 태형을 당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해요. 자의적인 경우라면 유혹과 복종의 시각적 신호로 작용하는 것이 한가지가 있을 거구요. 이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신체 신호죠. 마지막 경우는 바로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조소와 조롱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엉덩이는 성기와 가까운 데에 위치했고 성감대의 하나이지만 바로 터부시되는 배설의 기관을 감추고 있는 부위로 통념상 미와 추가 공존하는 신체부위가 되겠죠? 그래서 엉덩이를 남에게 까보이는 행위자체가 "shit"을 몸으로 전달하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산드로 키아의 <미완성 교향곡>은 투명한 발레복을 입은 여성이 맨엉덩이를 관람자를 향해 내보이고 있고 거기에 음표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방귀소리를 교향곡으로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ㅎㅎ 엿같은 세상에 던지는 작가의 직설적인 조롱이 캔버스에 가득한 것이 느껴집니다. 원래 도판은 바로 위의 지나치게 화사한 색조와 아래의 침침한 색조의 중간색조 정도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Sandro chia, <Sinfonia Incompiuta>, 1980

<Goldfish>, Gustav Klimt, 1901 엉덩이를 통해 조롱의 뜻을 전한 또다른 유명 작품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금붕어 Goldfish>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외설적이라 비난하는 비평가들을 향해 에로틱한 여성의 풍만한 엉덩이를 던져줌으로써 그 비난을 "반사"하며 조소하고 있지요. 오늘 저는 이 작품들을 누구에게 바치고 있는 걸까요? ^^ - 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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