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대 경제 대통령, 광해군

없는 자들의 부담은 줄이고, 가진 자들은 그 부담을 나눠지도록 한 대동법은 조선 500년 역사 중 최고의 개혁으로 평가 받는다. 대동법은 한 마디로 공정과세다. 요즘 말로 바꾸자면 부자증세다. 대동법을 시행하기 까지 세금을 더 내기 싫은 양반 사대부들의 압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백성들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1 어머니를 유폐시킨 광해군, 그를 다시 평가하다

지난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바 있다. 자고로 영화가 화제가 되면 영화 속 주인공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는 법. 영화가 흥행하자 광해군에 대한 재조명이 경제학, 정치학, 외교학 그리고 인문학 등 여러 방면에서 다뤄지고 있다.

솔직히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광해군은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조선 중기에 쓰인 작자 미상의 기사문 <계축일기>에서는 광해군을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패륜아로 묘사하고 있다. 아들 영창 대군을 잃어 마음 속에 천불이 들끓었던 인목대비 측근인 궁녀가 광해군 정권을 무너뜨린 인조반정 후에 쓴 책이니,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인조반정의 주도 세력들은 광해군의 죄를 폐모살제(廢母殺弟), 어머니를 유폐하고 동생을 죽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광해군은 한 나라의 왕이다. 때문에 한 사람의 인간성을 평가하는 것 외에 업적으로도 평가받아야 하지 않을까.

#2 광해군, 그는 단지 패륜아일까

패륜아라는 손가락질 뒤에, 광해군은 전란의 상처를 빠르게 회복한 왕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 ‘패륜아’라는 부정적인 인식에만 초점을 맞춘 그간의 숱한 역사드라마나 영화와는 상반되는 시각이다.

그 예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렇다. 광해군은 폐모살제를 저질렀다는 사실 앞에선 가혹한 평가를 피할 길은 없지만, 이와 동시에 백성을 위해 힘쓴 바도 있다. 불세출의 의학자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쓰도록 한 점, 뛰어난 북방 외교정책을 벌인 점 등은 광해군에 대한 평가가 ‘패륜아’에만 그치면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3 그릇된 조세제도를 바로 잡다

분명 평시였다면 광해군은 왕위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 적장자(1919년 이전, 첩제도가 인정되던 가족 제도에서 정실이 낳은 맏아들을 이르던 말)가 없어 세자책봉을 못하던 상황에서 임진왜란이 터지자 부랴부랴 광해군이 세자로 추대되었다. 물론 적장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광해군은 지속적으로 왕권 위협을 받아야만 했다. 이처럼 복잡다난한 상황 속에서도 광해군은 백성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동법’이다.

광해군 이전에는 전세, 공납, 역 등으로 조세를 징수했다. ‘전세’는 자신의 토지에서 나온 생산물로, ‘공납’은 해당 지역의 특산물로, ‘역’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조세제도다. 이 조세제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특산물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공납이었다. 지방마다 사정이 각기 다르건만, 이런 것을 전혀 고려치 않고 일방적으로 징수 규모를 정했던 것이다. 생산량을 감안하지 않고 징수해 가니 백성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공납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버리고 떠돌이 생활하는 백성들도 상당했다.

#4 토지 1결당 12두, 세금 부과단위에 형평성을 기하다

광해군은 당시 조세제도의 크고 작은 폐단을 간파하고, 조세납부방식을 획기적으로 개편했다. 토지 1결당 12두를 기준으로 쌀로 납부하는 대동법이 광해군이 제시한 솔루션이었다. 쉽게 말해 대동법은 잡다한 공납을 쌀로 통일해서 받는 제도다. 지방의 특산물을 납부하던 공납은 부과단위 자체가 어그러져 있었다. 가호(家戶)단위로 부과하면서, 수십만 평의 논밭을 가진 부호나 가난한 소작인에게 비슷한 세금을 부과했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던가.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해준다는 명목 하에 공납을 대신 납부해주는 방납업자가 생겨났건만, 이론 따로 현실 따로였다. 방납업자들은 경아전의 관리들과 짜고 백성들이 직접 납부하는 공물을 퇴짜 놓더니, 자신들의 물건을 구입해 납부하게 했다. 그런데 그 수수료가 부과액보다 훨씬 비쌌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셈이다.

#5 광해군, 우리나라 초대 경제대통령이 되다

대동법의 논리는 간단명료함 그 자체다. 부과단위를 가호(家戶)에서 농지로 바꾸고 쌀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내고,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내게 된다. 사실 광해군 이전에 조광조, 율곡 이이 등도 대동법의 논리를 주장했지만 시행하지는 못했다. 농지 단위로 납부하면 세금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양반 사대부들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던 류성룡이 사대부들의 반대에도 대동법을 시도했었다. 백성들에게는 큰 호응을 받았지만,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류성룡은 양반들의 반발로 관직에서 쫓겨났다.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가자 백성들의 저항이 거세졌다.

이에 광해군이 영의정 이원익의 건의를 받아들여 경기도에서 대동법을 단행했다. 하지만 사대부의 반발로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데는 무려 10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대동법 실시 이후 기득권층인 사대부들의 부담은 증가한 반면, 백성들의 부담은 줄어들었다. 이쯤 되면 패륜아 광해군을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 대통령이라고 칭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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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금융감독원 “금감원 이야기” VOL88

※ 준법감시인심사필 제48-0447 호(2016.5.30~201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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