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뇌속에서 살아가는 하루.

일어나자 마자 시계를 확인한다. 오늘은 또 몇시에 일어났을까. 역시나, 시간은 느긋하게 쳐져가며 오후 3시가 조금 못되고 있다. 몇시간전에 엄마가 나가면서 나를 깨운건 기억이난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도 힘들어하며 다시 잠이 드는 것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이 느긋하고 나른한 시간에 일어난 사실에 대해서 딱히 불만이 있지도, 초조하지도 허무하지도 기쁘지도 않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일어난다. 엄마가 나가면서 먹으라고 했던 샌드위치는 식었지만, 치즈만 다시 녹이니 다시금 맛있다고 느껴진다.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일상적으로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하면서 오늘의 재생목록을 찾아본다. 음악을 틀고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역시나 오늘도 이 생각이 든다. 빨리 가고 싶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이 대학교에서 신입생으로서의 모든 감정을 느껴가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 아니면 일을 하면서 이 사회를 채워 나가고 있지만 나는 그 어느 부류에도 끼지 못한채, 기타에 속하고 있다. 뭐 따지고 보면 예비 대학생이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할 일 없고 느긋한 백수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이렇게 지루할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에 있는 대학교를 갈 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 나라에 맞추어서 9월에 시작하는 학기에 가야하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허무하고 외롭고, 걱정되면서 설레고 온갖 감정들이 시계 분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들지만 이제는 그저 아무런 감정없이 시간을 보낼 뿐이다.

하지만 확실한건, 이대로 있으면 내 자신이 망가지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내일부터는 점심때라도 일어나서 헬스장에 가서 운동이라도 하고 와야겠다는 다짐에 근접한 생각이 들며 정신이 돌아온다.

영화도 보고, 종이의 몸에 볼펜 머리를 비벼보기도 하고 인스타도 뒤져보면서 알바 출근 시간까지 시간을 보낸다. 오후 7시가 되면서 슬슬 옷을 입고, 쇼파에도 앉아보고 머리도 빗지만, 그래봐야 10분이면 끝난다. 그리곤 고양이들에게 가볍게 '냥'이라고 외쳐주고 길을 나선다. 이것도 그래봐야 음악 2곡을 듣다보면 다 온다.

가게로 들어서면서 사장님한테 인사를 드리고, 뒷편으로 들어와 주방 이모 한테도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는 주방을 지나 뒷편에서 티셔츠만 갈아입고 나와서 주방 앞에 서 있는다. 처음에 이 가게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엄청 작고 답답하다하고 느꼈는데, 요새 통 바닥에 신발 자국들이 묻지 않는 바람에 가게가 휑하니 넓어도 너무 넓다고 느껴진다. 길건너 다른 가게들은 손님이 어느정도 있어 보이는데 도대체 이 가게는 왜 이렇게 없는지 알 수 없다며 이모가 말을 하신다. 그 말에 대답을 하고 말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항상 듣는 얘기로.

이모 덕분에인지 때문에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를 너무나도 맘에 들어하신 이모와 함께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이후로 더 심해졌다. 그전에는 '그렇군요'에서 끝날 말이 '그런 뜻이 있는거에요?'하고 길어진다. 이모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시고 나에게 얘기하시는데 평소에 하느님 혹은, 주님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별로 아무 생각이 없다. 주님과 영접 한다는 걸 사소한 것 에서도 느낀다는 이모는 오늘은 또 전도를 나가면서 생기는 일들을 얘기하시고, 최근에서야 스마트폰에 빠지셔서 어떤 영상을 보고 무엇을 느낀다를 한창 얘기하신다. 딱히 싫지도 좋지도 않다. 어차피 할일 도 없고, 멍하니 있는 것보다야 이모와 말을 나누는게 훨씬 더 유익하고 재밌으니까 얘기를 들어주고 답해주고 나도 이야기를 해준다. 사장님은 장사를 포기하신건지 오늘도 친구분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하시러 가신다. 표면적으로는 사장님도 그렇게 얘기하고 나도 그렇게 받아들이지만 이모와 나, 그리고 사장님 본인도 알 거다. 여자친구랑 데이트 하러 가는 거다. 아직 30 초반에 젊으시니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이모는 사장이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라며 항상 이야기 하신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사장님은 꿋꿋하게 나가신다. 그러면 이모와 나의 이야기는 제대로 시작된다.

애초에 하느님 혹은 주님 아니면 다른 종교의 신들까지 모두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긍정할 생각도 없었고. 또 진화론에 대해서 옹호할 생각도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은 분야들이었다.

하지만 이모와의 대화는 그 뜻이 확고 했다. 그렇지만서도 그 얘기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무조건적인 주장이 아니라 친절하게 나긋나긋하게 설명해주듯이 옛날 이야기도 하시면서 이스라엘과 바빌론, 로마, 지금 현 시대의 얘기까지 모두 아우르는 주제는 시간을 흘려보내기엔 꽤 괜찮았다.

그런 얘기를 듣다보면 이모의 얘기가 맞겠다 하는 생각은 솔직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개인적인 호기심들이 송송 떠오를 뿐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이 우주의 구조가 사람의 뇌 구조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지나가는 기사로 본 것 같다. 그렇다면 이모 말대로 이 모든것을 하느님이 창조하셨고,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고, 모든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 고 있는 이 우주가 하느님의 뇌일까?

뭔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그 상상을 지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지우개질이 멈추고 다시 그 상상으로 적어나가기 시작해본다. 혹시 그게 맞다면 인간이 과학이라고 밝히는 것들은 어쩌면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다시 분해해보고 알아나가는 것인건가.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있다하고 우리가 그 하느님의 뇌속서 살아가고 있는거라면 그 하느님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또 있는 거고 그 하느님들이 사는 세상또한 어떤 님의 머릿속인건가. 그럼 나도, 내 머릿속에도 하나의 우주가 있는걸까. 끝없이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내가 미쳐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남아있던 2개의 테이블 중 하나의 테이블에서 어떤 여자분이 부르기 시작한다. 다행이었다. 이모는 말을 계속 하시는 중이었고 그거와는 별개로 나의 머릿속에서 끝없이 적혀나가던 상상이 모두 정지되었다. 순간 이러다가 사람이 미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의 시중을 들고 이모와 얘기하기를 반복하는 이 가게에서의 하루. 도대체 언제까지고 해야되나 싶다. 비록 내가 알아보고 내가 연락하고 온 가게에서 일을 하는 거라 딱히 큰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고 정이 가지 않는 일이다 보니 정말 한 3번은 일하러 와서 고민하는 것 같다. 그만둘까.

장사도 안되는 가게에서 답답한 사장님과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와 닿으면서 짜증이 나지만, 그렇게 상상속에서 뛰다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어 있고, 사장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게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내게 말한다. 퇴근해.

퇴근하면서 집에 가는길 딱 두가지 생각이 든다. 일단 집에가서 샤워 후에 맥주 한캔이 간절히 생각나는데 사갈까 말까, 맥주랑 같이 뭘 먹지. 그리고 아까 든 나만의 상상. 그래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내가 죽어보지 않는 한 하느님이 실존하는지 그토록 강조하는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모르는 거고, 눈에 안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 아니고, 보인다고 해서 있는 건 아니라고들 하니.

인류가 밝히려고 탐구하고 연구하는 모든 과학적인 것들이 어쩌면 하느님이 다 만들어 놓은 것을 우리 인간이 이해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가정하자면 모든 이야기는 완성될 거라고 상상하며 길을 걷는다.

언제나 이 사거리를 건널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딱 깔끔하게 떨어지는 이 사거리의 신호체계는 너무나도 냉정하지만 너무나도 맘에든다. 사거리를 건너면 다시금 갈림길에 선다. 계단을 올라서 아파트 단지 사이로 걸어가면 조금더 빠를지야 모르지만 왜인지 모르게 답답한 느낌이 드는 길, 시원하게 뚤려 있는 큰 길을 따라 가는 길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길. 둘 중에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크게 고민한다.

왜인지 모르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길을 택한다. 답답한 것을 오늘은 느끼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지금 머리가 미친 상상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미친 상상을 다시 이어가자면,

하느님은 그저 심심해서 머릿속으로 이런 세상도 있을거야 하고 상상을 했고, 아니면 정말로 위대하고 높은 분이어서 철저한 계획아래 이 우주를 상상하며 만들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우리는 그의 뇌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고. 그의 뇌안에서 존재하는 우주는 인류, 지구 말고도 수많은 종류의 생명체들을 만들어서 또 그들 만의 세상을 가지게 하고.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상상을 덮으려는데, 한가지 의문점이 던져진다.

그러면 그 하느님이라는 자가 사는 세상은 뭘까.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믿는 그이가 사는 세상에도 하느님이 있을까. 그러면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하는 그 이가 사는 세상도 그이가 사는 세상의 사람들이 믿는 하느님의 뇌 속에 존재하는 걸까. 상상은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에는 내 뇌가 먼저 터질 것 같다. 내 뇌 안에 존재하는 우주, 세상, 지구, 사람이 먼저 터져버릴 것 같다.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지고자 하니 이런, 아파트 현관에 다 와 버렸다. 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기린 맥주한캔과 허니버터 아몬드를 사오는 걸 깜빡했다. 너무나도 아쉽지만 다시 돌아가기는 귀찮다.

그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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