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로는 북쪽이다 (소설)

항해 2일째.

점점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바다가 울부짖으며 모든 것을 삼킬 듯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상처 입은 야수가 포효하듯이 우린 대자연의 힘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출항하고 이틀 동안 키를 수동으로 잡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태풍 시에라. 중심기압 950hpa, 최대풍속 40m/s.

그저 태풍이 무사히 비켜가기를 바라고 있을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고 우린 그 움직임을 타고 괌으로 향해 가고 있다.

“초사님, 초사님. 당직입니다.”

누군가 날 흔드는 걸 느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초사님, 저······.”

“주위에 배 있나?”

“예? 예. 한두 척 보이지만 괜찮습니다.”

“몇 도고?”

“예? 지금······ 130도입니다.”

“음······.”

“저······ 초사님. 당직입니다.”

눈을 뜨니 2항사가 걱정스런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응? 그래. 미안하다. 올라가 있어.”

당직 교대 시간이다.

2항사가 날 깨우러 왔지만 내가 묻는 말에 조금은 당황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도 우습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항해사는 24시간 긴장하고 있어야해!” 처음 일항사가 된 그때 선장님이 나에게 하신 덕담이었다.

알 수 없는 악몽을 꾸었는지 베게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물을 병째로 들고 마시고 나서야 갈증이 풀렸다.

젖은 옷을 다 벗어 던졌다.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이미 제법 배가 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든 발걸음으로 중심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밸브를 트는 순간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찬물에 몸이 움찔했지만 그대로 견디고 있었다.

제법 자란 수염을 깎으려고 면도기를 들었지만 기분이 내키지 않아 그만두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브릿지에 들어서는 순간 어둠의 빛에 눈을 쉽게 뜰 수 없었으나 선수에 보이는 바다는 처음 내게 다가왔던 거친 모습 그대로였다.

“퍽! 스······.”

선수로 날아온 파도가 브릿지 볼트글라스를 때렸다. 선수창(船首窓)에 하얀 거품을 뿌린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선수는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어디 한 곳을 잡지 않고서는 서 있기도 힘든 상황이다.

“쾅.” 외판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려왔고 브릿지 안에 있는 나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바다는 거세어질 만큼 거세어졌다.

‘제기랄, 씨팔······.’ 힘주어 서 있었더니 벌써 양말은 다 젖어가고 있었다.

국장은 기상도를 받기 위해 졸리는 눈으로 깨어 있었고 해도실에는 선장님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초사. 당직 철저히 서고 상황이 악화되면 깨우기 바람’

“2항사. 수고 많았다. 선내 순시는 했나?”

“예.”

“지금 식당에 가보고 와. 선원들 방에도 가보고.”

“예. 알겠습니다.”

키를 건네 잡았다. 갑판부 인니(인도네시아) 선원 ‘부디오노’에게 말을 건넸다.

견시를 하고 있는지 고향생각을 하고 있는지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부디오노. 짭짭(식사) 했어?”

“예. 했습니다.”

“무섭나?”

“예? 무석나? 잘 모르겠습니다.”

일에 관계된 말은 일 년 정도만 지나면 다 알아듣는다. 일상용어는 못 알아들어 답답할 때가 많지만 화낼 일이 아님은 알고 있다. 그들에게 심어질 한국인의 인상을 더럽히기는 싫다.

지금은 애써 무섭나를 설명해줄 기분이 아니라서 가만히 있었다.

“슬립 빠구스(좋다)?”

“노. 디라빠구스(안 좋다).”

이런 성난 바다에서 잠을 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러 민족이 살게 되면 사용하는 언어도 여러 가지가 섞인다.

외국선원과 정을 붙이기 쉬운 방법이 그들의 언어를 아는 것이다. 단지 몇 개의 단어만 알지라도 그들은 정을 느낀다. 그들의 담배를 피우고 문화를 이해해 주는 것으로도 원만한 유대관계를 이룰 수가 있다.

다리가 아픈지 종아리를 만지며 다시 선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항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피곤이 쌓인 얼굴이었다.

“초사님. 식당에 기관부 야식하고 있고 인니 아들 비디오 보고 있습니다.”

“그래. 내려가면 인니 아들 자라고 해라. 참 그리고 선원들 술 못 마시게 감시 잘하고.”

“예. 수고하십시오.”

“그래. 푹 자거라.”

이런 날씨에 작업이 없는 갑판부는 술을 마시고 사고 칠 가능성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갑자기 기억하고 싶지 않은 3년 전 사고가 생각났다.

‘후, 내가 키를 잡고 있을 상황이 아닌데 미치겠구만.’

“부디오노. 이리 와.”

“예?” 검은 얼굴에 하얀 눈을 크게 뜨고 날 보았다.

“이리 와.”

손을 잡아다 키를 잡게 했다. 일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어서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말하고 하는 걸 지켜보니 배가 산으로 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국장이 눈을 비비며 기상도를 들고 왔다. 키를 맡겨 버리고 국장과 해도실에서 기상도를 보며 서로 인상만 찌푸렸다.

“다행이 방향을 틀었지만 날이 계속 나빠지는 것 같은데.”

“음·····. 피항해야 할지 그냥 가야 할지 난감하네.”

“그럼. 수고해요. 잘 피해가야 될 텐데.”

“예. 쉬세요.”

“퍽! 스······.” 또 브릿지로 파도가 한 방 먹인 것 같다.

다시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떨기 시작했다. 순간 키를 잡고 있는 녀석 생각이 났다.

“야! 이 새끼가.” 순간 손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녀석도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오줌 싸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코스에서 무려 20도나 돌아가 있었다.

“No problem. 괜찮아.”

다시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떨기 시작했다. 중심을 잡기 위해 컴퍼스를 꽉 잡고 키를 잡았다.

또 다시 포탄이 날아오듯 파도가 날아왔다. 전쟁터에서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건 군인처럼 이를 꽉 물었다. 바다가 거친 모습을 보일수록 내 맘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뱃사람의 성질이 살아나고 있었다.

“삐~”

(생략)

록셈 이준혁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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