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서울 25시, 夜 (4)

제1화 이노베이션 러브 〈4〉

“그럼 일단 5억 원은 1년, 나머지는 3개월로 해 놓겠습니다.”

“그러죠. 뭐.”

백천길의 원래 계획은 서울에서의 첫날이고 해서 여인숙보다 비싼 여관에 투숙할 생각이었다. 서울 사람이 된 걸 자축하는 의미로 중국집에서 고량주하고 탕수육, 자장면을 주문해서 먹을 요량이었다. 밤이 으슥해지면 여자를 부를까 말까를 고민 중이다.

“자, 나가시죠.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은행 대리는 백천길의 꿈을 산산조각 냈다. 백천길을 데리고 제일모직 판매점으로 갔다. 양복에 와이셔츠, 넥타이까지 신상품으로 빼 입히고는 금강구두까지 사줬다. 백천길이 돈을 지불하려고 하자 무조건 거절을 하고 명동으로 데리고 갔다.

“술도 한잔 하시죠.”

은행 대리는 명동에 있는 남태평양이라는 극장식 술집에 들어갔다. 백천길은 술집이 운동장만큼 크다는 것에 놀랄 겨를이 없었다.

테이블이 수백 개나 되는 술집은 처음이다. 무대도 엄청 컸다. 무대에서 댄서들이 춤을 췄다. 차력사가 나와서 배 위에 있는 사과를 칼로 잘랐다. 불쇼를 하는 사람이 나오자 홀의 불이 꺼졌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입으로 불을 뿜어냈다.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주일이라는 사회자가 “오! 수지 큐, 오! 수지큐”라며 팝송을 불렀다. 그러고 나서는 몸을 비비 꼬며 “못생겨서 죄송하다”며 부끄럽게 웃었다. 백천길이 봐도 지독하게 못생긴 이주일이 들어갔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바니걸스라는 쌍둥이 가수가 나왔다.

워터루! 워터루! 바니걸스는 텔레비전처럼 얌전하게 옷을 입지 않았다. 란제리 비슷한 것을 입고 춤을 출 때마다 젖가슴이 파도를 탔다. 백천길은 속이 바짝바짝 탔다. 맥주를 연거푸 마시면서 숨을 죽이고 노래를 들었다.

은행 대리가 양주를 마시자고 해서 양주도 마셨다. 양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의 불이 꺼졌다. 흐느적거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자들끼리 마시면 재미가 없잖아요.”

은행 대리가 웨이터를 부르더니 뭐라고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웨이터가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을 데리고 왔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은행 대리가 웨이터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웨이터가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갔다.

백천길 옆에 여자가 앉았다. 백천길은 무대에 나온 여자가 옷을 벗기 시작하는 통에 시선을 어디에 둘지 혼란스러웠다. 은행 대리가 여자에게 술을 따라주라고 눈짓을 보냈다.

“배…백천길입니다.”

백천길은 여자, 그것도 나이트클럽에서 여자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은 처음이다. 하필이면 무대에서 댄서가 옷을 벗고 있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술을 따라줄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

“이름이 특이하네요.”

여자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웃으면서 맥주잔을 들었다. 백천길은 맥주잔을 물고 있는 여자의 입술이 섹시하게 보였다. 맥주를 마시고 마른 오징어 다리를 씹어 먹는 이도 예뻐 보였다. 은행 대리 파트너보다 훨씬 예쁘다는 생각에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러브샷 해요.”

여자가 술잔을 든 손으로 백천길의 팔짱을 꼈다.

“러브샷!”

백천길은 팔뚝을 타고 전해지는 여자의 젖가슴의 물컹한 감촉에 깜짝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귀엽게 웃으며 맥주를 마셨다.

“자! 오늘 밤은 이 몸이 풀코스로 대접합니다.”

은행 대리가 양주를 시켰다. 웨이터가 바람처럼 양주병을 들고 왔다. 과일안주가 새로 왔다.

“자기 이름은 뭔데?”

백천길은 여자와 사귀고 싶었다. 양주를 따라주면서 짐짓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나중에 알려줄게요.”

여자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백천길은 이름을 더 이상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갑자기 음악이 빨라졌다. 무대에서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던 댄서가 브래지어를 벗어 던졌다.

일산 촌놈 백천길은 여자의 벗은 몸은 피시통신에서나 본 적이 있다. 단연코 실물은 처음이다. 댄서가 양손으로 젖가슴을 주무르면서 숨 넘어 가는 표정으로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백천길은 얼른 옆자리의 파트너를 바라봤다.

“누드쇼 처음 보세요?”

여자가 백천길을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 아니.”

백천길은 무안해서 더 이상 무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꾸 무대 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여자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댄서가 궁둥이를 막 앞뒤로 흔들고, 엎드려 흔들고, 누워서 흔드는 모습을 심심한 얼굴로 지켜봤다. 백천길은 가슴이 떨려서 누드쇼를 볼 수가 없었다.

훗날 생각해 보니 여자는 나이트클럽에서 죽치는 죽순이다. 하지만 그때는 죽순이가 뭔지 몰랐다. 아니 죽순이라는 걸 알았어도 그녀를 내치지 못했을 것 같았다. 첫 데이트를 하는 소년처럼 황홀하기만 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으니까.

윤수일이라는 큰 키의 가수가 나와서 ‘아파트’를 불렀다.

한만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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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4시, 야(夜)' 전편 감상하기 ⇒ http://bit.ly/1tb54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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