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에 창업해 ‘아시아 1위’ 만든 女 “경험과 배움이 창업의 씨앗”

‘청년 창업’이란 말조차 생소했던 2007년. 그보다 더 생소한 단어였던 ‘사회적 기업(소셜 벤처)’를 차리겠다는 스물두 살의 여대생이 있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6년. 1년을 채 버티기 힘든 ‘창업 정글’에서 9년을 살아남았고, 이를 넘어 자기 사업체를 동종 분야 ‘아시아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킨 여성. 사회 경험도 전무했던 사업 ‘초짜’가 아시아 1위 소셜 댓글 업체 ‘시지온’을 만들기까지, 그 여정을 김미균(31ㆍ사진) 대표를 만나 들어봤다.

‘아나운서→함구증’, 진짜 꿈을 찾기 위한 불안한 시간들

김 대표의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패널로 나간 뒤, 사람 앞에 서서 자기 얘기를 하는 즐거움을 알았다. 그 후 'EBS 청소년 원탁토론’ 최연소 진행자, 리포터, 작가 등 관련 경험을 쌓으며 방송의 꿈을 키웠다. ‘신문방송학’을 대학 전공으로 삼은 건 당연했다.

그런 그녀에게 들려온 날벼락 같은 소식. 발음이 새는 문제를 고치려 찾아간 치과로부터 턱뼈가 마모되는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그렇게 꿈을 접었다.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만 생각했던 터라 충격이 컸어요. 가벼운 정신병까지 앓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김 대표는 어린 시절 품어온 꿈을 잃고,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병을 얻었다.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상황에선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불안장애’의 일종이었다. 그런데 이 불안한 시간은 김 대표에게 진짜 꿈을 찾게 해준 기회가 됐다.

“그때는 집에만 틀어박혀서 매일 울었어요. 한동안 세상만 원망했는데 6개월 정도 지나니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왜 하필 아나운서를 꿈꿨나’에 대한 답을 찾게 됐지요.”

그렇게 스물한 살의 나이에 스스로 찾아낸 해답은 ‘소통’. ‘아나운서’란 직업도 결국 ‘소통’이란 더 큰 가치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 목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게 김 대표는 사람과 소통을 하는 일을 하겠다는 진짜 꿈을 발견했다.

소통을 꿈꾼 사람, ‘악플→선플’로 바꾸는 걸 업으로 삼다

그 당시 우리 공동체의 또 다른 공간, 인터넷에선 ‘소통’이 큰 논란거리였다. ‘악성 댓글’로 상처받은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악플’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한 것. “당시엔 악성 댓글 문제가 정말 심각했어요. 지금이야 고소도 하고 대응 방식이 달라졌지만 그때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였죠.”

‘사람과 소통하는 일’을 꿈꿨던 김 대표. 인터넷의 소통 공간이 악플로 더럽혀 지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처음엔 악플 등 사이버 테러를 해결하는 사이버 수사대나 관련 비정부기구(NGO) 취업을 고민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론 부족하다 싶었다. 기술을 통해 댓글 다는 방식을 아예 바꾸는 게 더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봤고, 그래서 김 대표는 ‘창업’을 결심했다. 학내 리더십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하던 두 명과 동업해 악플 근절을 위한 사회적 기업 ‘시지온’을 만든 게 2007년 7월. 김 대표 나이 스물두 살 때의 일이다.

지금이야 ‘청년창업’이란 말이 예사말로 쓰이는 시절이지만 그때만 해도 대학생 ‘초짜’가 자신의 업을 스스로 개척하는 일이 생소했다. 주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겉멋이 들었다’고 했고, ‘빚만 지고 망할 것’이란 가시 돋힌 지적도 많았다. “지금은 ‘취업 대신 창업’이라지만, 그때만 해도 ‘학생이 무슨 창업이냐’며 말리는 분이 많았어요. 지원정책도 거의 없었죠.”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제 부모님은 사업하다 쫄딱 망하셨던 분들이에요. 고등학교 때까지 온 가족이 빚에 쫓기듯 살았죠. 그렇게 고생하며 ‘죽어도 사업은 안 한다’고 이를 갈던 딸이 정작 사업을 시작하겠다니 말릴 수 없다는 걸 부모님도 아신 것 같아요.”

주변의 반대를 힘겹게 이겨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같이 일할 사람들을 모아놨지만 연애니, 교환학생이니, 이런저런 이유로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겨우 팀원 구성을 마치면 공간이 문제였다. 학교 근처 신촌을 샅샅이 뒤져 최저가 사무실을 찾아냈지만 이 월세 30만원을 낼 돈이 없었다. 결국 카페와 교내 빈 공간을 전전해야 했다.

“창업하고 2년 반 동안은 정말 한 푼도 못 벌었어요.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니 밤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뛰고, 하루 24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살았어요.” 김 대표는 이 기간을 신촌의 한 고시원에서 보냈다.

이런 고생 끝에 탄생한 게 2009년 9월 출시된 ‘라이브리’(LiveRe)다. 이 서비스는 평소 사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이용해 다른 포털이나 홈페이지에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췄다. 자신이 단 댓글이 본인 SNS 계정에 자동으로 재전송되기 때문에 내 댓글을 주변 사람들이 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 착한 댓글을 달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 것. 이런 방식의 ‘소셜 댓글’ 서비스는 국내에선 라이브리가 처음이다.

(착한 댓글만으로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기업, 시지온의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하시면 여기를 클릭)

당시는 해외에서도 ‘소셜 댓글’이란 개념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시절. 초반에는 서비스를 알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라이브리가 출시되고 난 뒤 약 10개월간은 닥치는 대로 ‘영업’을 하고 다녔어요. 악플 문제로 댓글 게시판을 닫아버린 언론사를 찾아가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보면 어떻겠냐’고 설득했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한 정치인과 연이 닿으며 판로가 뚫리기 시작했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다른 회사에서도 주문이 이어졌다. 출시 일 년 만인 2010년말엔 손익분기점도 넘겼다. 현재 시지온과 제휴를 맺은 고객사는 총 1,056곳. 라이브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이트는 22만개에 달한다. 올해 중국 진출도 앞두고 있다.

“창업, 내가 대표여야 한다는 욕심 버려야”

사업 ‘풋내기’에서 ‘아시아 1위 소셜 댓글’ 업체로 성장하기까지 9년. ‘창업’이 아니라 일반 회사에 ‘취업’을 했다면 지난 9년이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 대표는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은 없었다고 한다. “23, 24살 정도가 되니 주변 친구들은 여기저기 원서 넣느라 바쁘더라고요. 오전에는 항공사용 자소서를 쓰며 ‘비행기만 보면 가슴이 뛴다’고 적고, 오후엔 통신사 원서에 ‘휴대전화만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적으면서. 그런 식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요?”

‘대학생 창업 성공 사례’로 인정받으며 최근 들어 강연이나 자문 요청을 많이 받는다는 김 대표. 그는 ‘내가 다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일, ‘낮은 자세’로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창업을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해요. 실력이 없다면 우선 배워야죠. 선배들 벤처 회사라도 찾아가 직접 부딪혀 보며 일을 해보는 게 필요해요. 창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처음부터 내가 대표를 해야 하고, 내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을 버려야 해요. 먼저 실력을 쌓기 위해 경험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20대 초반. ‘젊음을 불태운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시절에 사업가로 살아야 했던 김 대표. “미팅이나 소개팅 한 번 못해봤다”는 푸념에 ‘클럽은 가봤냐’고 물었다. “클럽이요? 열심히 다녔죠. 그건 밤의 일이잖아요. 하하.” /조가연·백상진 기자 gyj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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