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아스날과 눈물의 이별, 미켈 아르테타와 토마스 로시츠키

푸르른 5월, 아스날은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미켈 아르테타(34), 토마스 로시츠키(35), 마티유 플라미니(32)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 선수는 자신들이 아스날에 속해있는 기간동안 그라운드 안팎으로 리더의 역할을 해왔고 그라운드에서는 항상 성실한 선수였다. 가끔 부상들은 그들의 발목을 잡곤 했지만 경기에 나설때면 늘 제 역할을 해왔다. 떠나는 그들은 아스날이 그리울 것이고 떠나보내는 팬들은 그들이 그리울 것이다. 세 선수는 아스날에서의 의미가 각별했다. 미켈 아르테타는 2011년에 아스날로 영입된 이 후 빠르게 녹아들었고 올 시즌 주장자리를 꿰차며 리더로써의 역할을 수행했다. 토마스 로시츠키는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로써 아스날의 중원을 이끌며 가끔 득점을 터뜨려주는 핵심 선수였다. 마티유 플라미니는 중원의 사령관이며 파브레가스가 '이니에스타보다는 플라미니'라는 발언을 했을 정도로 동료에게 신뢰감을 주는 선수다. 하지만 세 선수는 모두 아쉬움이 컸다. 자주 부상을 당했고 아스날에서의 입지가 사라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아스날에서의 생활을 마친다.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는 축구팬은 그들의 플레이가 그리울 것이다. 그래서 <김동현의 풋볼로거>는 세 선수 중 미켈 아르테타와 토마스 로시츠키의 선수 커리어와 아스날 시절을 깊고 심도있게 되돌아보고자 한다.

#미켈 아르테타, 아스날에 스페인 품격을 가져오다 미켈 아르테타는 스페인 출생으로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다. 바르셀로나의 유스 시스템에서 C, B를 차례로 밟았지만 성인 무대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 후 파리 생제르망으로 임대 이적을 했고 가능성을 보여 레인저스 FC로 이적을 했다. 레인저스의 시즌 3관왕에 기여를 하며 빅리그 진출을 위해 레알 소시에다드로 떠났지만 팀에 적응하고 녹아들지 못하며 에버튼으로 팀을 옮겼다. 에버튼에서의 아르테타는 놀라웠다. 빠른 패스윅과 빌드업 능력을 바탕으로 에버튼의 중원 자리를 꿰찬 그는 빠르게 팀에 적응했다. 태클과 인터셉트 능력까지 겸비한 미드필더로 그라운드 안팎에서 성실한 선수인 그는 금새 에버튼 선수와 팬들의 인정, 신뢰를 얻었다. 2006년부터 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에버튼 올해의 선수상'의 초대 수상자도 아르테타였고 이어진 2007년에 수상자 역시 아르테타였다. 사실 아직도 많은 팬들은 아스날 시절보다 에버튼 시절의 아르테타가 더 대단한 선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르테타가 만든 에버튼 축구는 패스윅과 피지컬로 상대를 압도하는 축구였다. 이에 힘입어 그들은 2009 FA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마냥 활약만을 펼치지는 못했다. 그의 고질병인 '부상'이 발목을 잡으며 때로는 팀에서 잠시 이탈한 시기가 많았다. 그럼에도 항상 제 역할을 해준 그를 보며 팬들은 열광했다.

2012 시즌을 앞둔 에버튼은 UEFA컵 출전을 확정지었고 아르테타가 팀에서 행복하고 만족하고 있다며 팀에 잔류할것을 자신만만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적시장이 닫히기 직전 아스날은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아르테타를 영입했음을 알렸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아스날이라는 팀에서의 제의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것. 아르테타는 에버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아스날로 떠나게 되었다. 에버튼에서 174경기 28득점을 올린 그는 정신적인 지주이자 뛰어난 재능의 선수로 남았다. 아스날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아르테타는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클럽과 코칭스태프도 그를 믿었다. 이미 프리미어리그의 강호, 에버튼에서 7년간 검증을 받은 선수기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다. 에버튼에서 뿐만아니라 아스날에서도 아르테타는 궂은 일을 도맡아했다. 상대의 드리블을 저지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고 태클, 인터셉트를 통해 팀의 역습을 이끄는 미드필드 역할을 수행했다. 에버튼의 팬들처럼 아스날의 '구너'들은 그의 몸을 사리지 않는 정신을 크게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흐름을 잡은 것은 부상, 지난 몇 년간 그는 발목과 종아리 등 적지 않은 부상을 달고 지냈다. 이로인해 패스를 통해 직접 빌드업을 하고 플레이메이커를 수행하던 그의 모습은 줄어들었고 중원에서 상대의 흐름을 끊고 공격진, 동료에게 정확한 패스를 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아르테타의 모습이 늘어났다. 아르테타는 스루패스를 통해 득점 찬스를 만드는 패스보다는 동료에게 주는 정확한 패스가 일품이였다. 정확한 롱패스는 그의 특기였고 패스성공률은 항상 90%를 넘는 수치였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드리블 수치가 낮았다. 볼터치를 통해 연결하는 패스는 일품이지만 드리블로 직접 '크랙' 역할을 수행하는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였던것이다. 이 때문에 아르테타는 평소 아스날에서 파브레가스, 램지 등이 수행하는 플레이메이커 자리를 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늘 피나는 노력으로 제 역할은 수행하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더욱 팬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아르테타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라운드 안팎으로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는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였다. 지난해 여름, 1년의 계약 연장을 할 당시에도 아스날은 아르테타가 한 시즌 동안 풀타임을 뛸 선수가 되지는 못하지만 선수단에 큰 영향을 끼칠 선수라고 밝혔고 이어서 2015/16 시즌의 주장으로 선임이 되며 그의 필요성은 증명이 되었다.

아르테타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나는 이 클럽과 그라운드에서 뛸 정도로 몸 상태가 충분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랜 시간 축구를 했는데 나는 다른 누군가를 속이고 싶지 않다. 스스로 솔직해야 한다. 이제 그라운드를 떠날 시간이다" 그는 다음시즌부터 코치직을 수행한다. 이미 시즌 중에도 일각에서는 아르테타를 코치로 임명해야한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해외언론에서도 아스날 코치를 생각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아스날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 이 후로 아르테타에게 코치직을 제의할 생각이 있는 팀으로 거론 된 팀은 맨체스터 시티, 토트넘 핫스퍼, 아스날 FC였고 최종적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코치직을 수락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상으로 꼽아온 펩 과르디올라 밑에서의 코치직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아르테타가 어떤 직업을 갖든, 아스날에서 보여준 헌신은 팬들에게 가슴 깊이 남을 것이다.

#'그라운드의 모차르트' 토마스 로시츠키, 아스날의 역사를 다시쓰다 토마스 로시츠키는 체코 출생으로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유스 시절을 보냈다. 15세 시절부터 U-15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고 이어 17, 19, 21세 대표팀 등 화려한 엘리트 출신이다. 19세에는 스파르타 프라하의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을 펼쳤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성인 대표팀 코스를 밟아 데뷔한 그는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유로 2000 라인업으로 발탁된다. 2000/01 시즌에는 많은 러브콜 중에 보루시아 도르드문트를 선택하며 분데스리가 이적료 기록을 갱신한 2500 마르크에 이적을 결정한다. 빠른 적응으로 그 시즌부터 팀의 중심이 되었고, 우승에 공헌하는 등 활약했다. 6시즌동안 149경기 20득점을 올리며 위상을 높이며 도르드문트와 함께 성장했다. 그는 경기장에서 화려한 드리블과 슈팅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신뢰도 함께 얻었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도르드문트의 재정난으로 인하여 로시츠키가 팔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됬다. 이런 와중에 로시츠키를 향한 러브콜이 이어졌고 도르드문트에 스티븐 피에나르가 영입되며 구단은 그를 놓아주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않은 아스날은 그를 영입했고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번호는 '7번'을 배번받으며 아스날의 레전드, 로베르트 피레스의 번호를 이어받았다.

아스날에서 맞은 첫 시즌, 37경기 6골 4도움을 올리며 준수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그는 아스날에서 패싱력, 중거리 슈팅, 드리블을 장기로 팀에 녹아들었다. 평소 빠르진 않지만 공을 잡고 순간적인 스피드를 이용해 패스를 연결하는 능력과 상대를 제치며 가끔은 뜬금없는 슈팅을 날리는 로시츠키는 아스날 축구에 잘 맞는 선수로 인정받았다. 가장 칭찬받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그의 패스였다. 드리블을 치는 도중에도 넓은 시야를 통해 창조적인 패스를 만드는 그의 경기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 했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전성기를 맞는듯했다.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나 부상. 2008년 2월 뉴캐슬전에서 십자인대를 다치며 오랜 기간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시즌은 물론 다음 시즌마저도 통째로 날려보냈다. 그나마 위안삼아야 할 것은 부상 이후 기량 하락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2009년 5월 훈련에 복귀했고 경미한 부상을 겪은 이 후 정식 복귀전은 그 해 9월에 이뤄졌다. 복귀전에서 1골 1도움을 올리며 '그라운드의 모짜르트'가 귀환했음을 알렸다.

그 시즌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끝에 아르센 벵거에게 인정을 받았고 그는 2년 반의 재계약에 성공한다. 로시츠키는 다음 시즌에서도 활약을 펼치며 벵거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로시츠키의 활약은 줄어들게 되었다. 십자인대를 다친 이 후 부상이 잦게 생겼고 팀에서 자주 이탈하게 된다. 가끔씩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득점포를 터뜨리곤 했지만 최고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었다. 아스날의 팬들은 그의 플레이가 그리워졌고 많은 이들은 그를 '유리몸'이라고 칭하곤 했다. 2012/13 시즌 아킬레스건 부상, 2013/14 시즌 무릎 부상에 이어 지난해에도 224일의 공백 기간을 만드는 큰 부상을 당했다. 이로인해 사실상 아스날에서 그의 입지는 사라졌다. 224일간의 공백 이 후 올해 1월 복귀전을 치뤘지만 번리와의 복귀전에서 또 다시 대퇴근 부상을 당했다. 선수 본인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아쉬운 부상들이였다.

아쉬운 마무리가 되긴했지만 이렇게 그의 아스날 커리어는 끝이 났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 팀을 떠나는 것일 뿐, 선수생활을 그만두지는 않는다는 소식이다. 이미 에이전트는 미국, 중동과 유럽 팀에서 접촉을 시도했고 선수 본인도 아스날의 코치직보다는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지만 아스날과 도르트문트에서의 그의 플레이는 그리울 것이다. 마치 그라운드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다고 하여 '그라운드의 모짜르트'라는 별명이 붙은 그, 상대를 흔들고 제치며 마무리하기도 했고 창조적인 패스로 상대의 허를 찌른 그의 기술들은 기억속에서만 남게되었다. 아스날의 팬인 '구너'로써 항상 아스날에 남아 헌신하고 팀을 위해 희생한 세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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