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en Camino #30. 온타나스로 가는 밀밭

09 / 06 / 2014 (Day 13) Burgos > Hontanas


저번 이야기를 적으며 기봉에게 문자를 했다. "아, 현지인과 찍은 사진이나 비올레타 송별회 사진이 없어서 너무 안타깝더라"라고 했더니 기봉이 주섬주섬 사진을 찾다가 발견했다며 보내줬다.


"올레!"


다소 늦었지만 기록을 위해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장식해본다.


밥이 나오기 전 세르지오 아저씨를 따라서.

부르고스의 광장에서.

그리고 송별회의 모습. 비올레타가 선그라스를 끼고 있으니 꼭 파리같은 느낌이 나네.

벌써 1/3 을 걸었다. 가까스로 친해진 친구들은 하나 둘씩 까미노를 떠나고 있다. 헤어짐과 만남에 익숙해진다. 예전 같았으면 어차피 헤어질거 정주지 말자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진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되더라는 것.


그래서 이제는 모든 만남에 진심을 담아 대하고 있다.


부르고스에서의 아침, 론 아저씨가 앞장서며 모두가 함께 출발했다. 오늘은 20km 를 훌쩍넘는 거리인 Hontanas 까지 일정을 잡았지만 모두가 완주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에밀리의 발 상태가 점점 심각해져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르고스가 워낙 큰 도시다보니 도시의 콘크리트를 벗어나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에밀리는 발에 무리가 점점 오고있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나중에 까페콘레체 할 때 즈음 따라잡겠다는 말을 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말은 ATM을 다녀오겠다고는 했지만 아마 속도를 늦추기로 결정한 것 같다. 아무래도 함께 걸으면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오버하기 때문이다.

새벽 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길과 성당을 지나 조그마한 동네가 나왔다. 모두가 함께 까페 콘레체를 시킨 다음 테라스 앞으로 나왔다. 마침 강남스타일 이후로 싸이의 신곡이 나왔다길래 들으며 푹 쉬어본다. (노래는 좀 별로였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밀리는 노랫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에밀리는 아직은 걸을 수 있지만 오늘 이후로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물집도 많이 잡힌 것 같단다. 우리는 일단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걷기로 했다. 시간은 충분하니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아침은 걸으면서 머핀으로 대신한다. 날씨도 좋고 경사도 가파르지 않아 걷기는 참 좋은데 오후가 되면 아마 그늘이 없는 길이라 엄청 더워 금방 지칠 것 같다.

기봉이와 나는 에밀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빠르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바짝 붙어서 걷는다. 심심할까봐 참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더랬다. 양국의 의료보험 이야기도 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도 이야기하며 역사에 존재하는 상반된 의견을 균형있게 다루려고 노력했었다. 그녀가 선생님이기에 아이들에게 혹여나 우리나라 역사를 설명할 기회가 생긴다면 균형적인 시각으로 잘 설명해줄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스팔트 길을 비교적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

이윽고 나타난 작은 마을에는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아직 시에스타도 아닌데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잠깐 그늘에서 쉬다가 10km 떨어진 다음 마을은 좀 더 규모가 있는 곳이라 그곳에서 쉬기로 했다.

작은 마을을 지나면 그늘이 없는 길을 10km나 더 걸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에밀리는 계속 걷다보니 익숙해졌다며 의지를 불태운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인데다 나무 그늘도 거의 없다. 지루해지지 않기 위해 마침 유로비전에 나온 재밌는 노래가 있어 같이 듣기 시작한다.

길을 걸으며 늘 마주하게 되는 조개모양의 표지석. 길을 잘 가고 있다는 표시다.

해가 중천에 떠서 볕이 아주 따갑지만 바람은 적절히 불어서 걸을만하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정말 다행. 만약 아스팔트 였다면 신발을 질질 끌면서 걸었을 터.

풍경이 아름다우면 그래도 걷는 즐거움이라는게 생긴다. 길을 걸으면 가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할 때도 있는데 오늘은 탁 트인 풍경이 펼쳐져서 그런지 아무 생각없이 걷고 있다. 마치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것 처럼


이 사소함을 즐기고 있다. 행복하다는 느낌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까미노 길의 백미는 바로 이 밀밭이 바람에 나부끼는 풍경이다. 탁 트인 풍경에 바람이 사르륵 불면 밀밭이 춤을 추게 되는데 그 풍경이 정말 장관이다.

그래서 덥지도 않고 사람도 많지 않은 선선한 5-6월이 길을 걷기에 최적의 시즌인 것 같다.


최근 학교 후배가 겨울에 까미노를 다녀왔다. 날씨도 별로 좋지도 않고 막상 로망을 가지고 갔더니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는 마음 뿐이었단다.


"그래서 까미노에서 사람 좀 만났어?"

"아뇨.. 별로 만나고 싶지 않고 그냥 빨리 걸었어요. 다들 한 달이면 걷는다는데 전 더 빨리 끝냈어요"


사람마다 여행의 기준은 다르고 느끼는것도 다르지만 내 입장에선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내가 미리 조언좀 해줄걸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완주가 중요한게 아닌데..


최근 여러 매체에 까미노 열풍이 다시 불고 있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봐도 까미노를 많이 다룬다. 그래서인지 엄청난 로망을 가지게 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정부에서는 코리아 둘레길이라고 하여 까미노와 비슷하게 만든다는 구상까지 내놓고 있다.


아무래도 힐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일거다.


그냥 까미노를 한번 경험 해 본 사람이기에 한마디 조언을 덧붙이자면 딱 한가지만 유념하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사람과 이야기하세요'


내가 걸을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다이어리를 복기하며 여행기를 연재해보니 까미노는 하나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생은 꼭 사람들이 많이 얽혀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어보며 나를 투영해보기도 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서로의 고민을 신기하게 공유하기도 하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고통도 이겨내며 도전적이지 않을것 같던 나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사소함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다.


까미노를 처음 갔을 때 우리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를 한 분을 뒤에서 지켜 본 적이 있는데 혼자 오셔서 영어가 되지 않는데도 신기하게 다른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티켓도 끊고 친구도 되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그 분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희노애락을 열심히 경험하시다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어가셨을 것이다.


반면에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소통을 하지 않거나 완주만을 목적으로 한 사람도 있었다. 힘든 길을 다 걸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는 있겠으나, 모르는 사람하고 말을 하고 인생을 나누는 재미는 놓쳐버릴 수 있다.


나는 혼자 여행을 많이 해봤고 모르는 사람에게 내 고민, 상처 다 털어놓고 말하는게 어렵지 않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법도 비교적 쉽다. 많은 분들이 영어를 잘하시니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참 부러워요. 라고 말씀하시지만 결코 영어만을 잘한 것이 아니라 혼자 여행하며 소통하려고 했던 노력들이 언어를 넘어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것 같다. 정 안되면 그림이라도 그려서 소통하면 됐으니까.


부디 까미노든 어디를 여행하든 다른 사람들과 말이 안되더라도 한번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여행했으면 좋겠다. 이것도 하다보면 정말 는다.


만약 아직 이런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좋은 연습장소가 있다. 바로 산이다. 1박 2일 산행, 종주 코스를 혼자하면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설악산을 자주 가는 편인데 맛있는 술을 가지고 올라간다던가, 나만의 레시피로 끓인 찌게정도 준비해가면 된다. 산장에서 만나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으면 바꿔먹기도 시도해보고 먼저 인사도 건네어보자. 내 경우에는 거의 백이면 백 컵라면을 얻어먹거나 술을 나눠마시곤 한다.


그러면 여행이 주는 사소함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누군가 나를 응원해주는 것, 바람이 부는 것, 사람들의 눈웃음과 응원 이런거 하나에도 감동받고 힐링 받는 그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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