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떠나기 전에 먼저 그녀들을 버린… ‘나쁜 남자’ 헤밍웨이

Fact

▲미국의 대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고교 시절 첫사랑에게 쓴 러브레터가 발견됐다. ▲10대의 헤밍웨이는 “그대와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며 순수한 사랑을 불태웠다. ▲하지만 성인이 된 헤밍웨이의 삶은 결혼~불륜~이혼~재혼~다시 불륜의 연속이었다. ▲전기 작가 제프리 메이어스는 “결혼 생활 중에 미래의 아내와 간통을 범함으로써 배반과 외로움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했다”면서 “그는 아내가 자신을 떠나기 전에 그녀를 버렸다”고 평했다. ▲‘광고없는언론’ 팩트올(FACTOLL)이 헤밍웨이의 첫사랑과 여성편력, 그리고 뻔뻔함(?)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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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트리뷴

시카고 인근인 일리노이주 오크파크에서 태어난 미국의 대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1913~1917년 오크파크 리버 앤 포레스트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번에 발견된 편지는 헤밍웨이 전기를 집필하기 위해 오크파크의 공립 도서관을 뒤지던 작가 로버트 엘더가 찾아냈다.

“지옥이라도 기꺼이 가겠어” 러브레터

편지의 상대는 아네트 데보라는 여성으로, 헤밍웨이의 고교 졸업 당시 1년 후배였다. 두 사람은 학교 교지를 만들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시카고 트리뷴이 공개한 헤밍웨이의 편지는 급하게 쓴 듯 필체는 엉망에다, 줄을 그어 지운 흔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오, 너를 사랑해 아네트.

어느 누구에도 비할 바 없는 너의 우아함과 사랑스러움, 아름다움이 나를 바보로 만들었어.

그대와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기꺼이 가겠어요. 아니, 내 목숨마저도 내놓을 수 있어요.>

10대 소년의 순수한 사랑이 묻어나는 편지지만, 알려진 대로 헤밍웨이는 여성편력으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여전히 오르내리고 있다. 헤밍웨이는 4번 결혼하고 3번 이혼했다. 재미있는 건 헤밍웨이가 결혼 생활 중에 바람을 피우고, 매번 그 불륜 상대와 재혼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나쁜 남자로 취급받고 있는 헤밍웨이의 여자들을 살펴봤다.

성인이 된 헤밍웨이의 첫사랑은 일곱 살 연상인 금발의 간호사 아그네스 쿠로프스키다.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이탈리아 밀라노의 육군병원에서 만난 여성이다. 그녀는 1954년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1929)에 나오는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의 실제 모델이다.

1919년 미국으로 돌아온 헤밍웨이는 아그네스와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다. 청혼 두 달만에 이별 통보를 받은 것. 스물한 살의 헤밍웨이는 실연의 상처로 괴로워했다.

그런데 평전 ‘헤밍웨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자유인’의 저자 제프리 메이어스는 “이 실연이 헤밍웨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제프리 메이어스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아내가 자신을 떠나기 전에 그녀를 버렸다

<그녀의 배신(헤밍웨이는 그녀의 청혼 거절을 배신이라고 생각했다)으로 인한 상처는 그에게 본능적인 자기보호를 강요했다. 평생 동안 그는 현재의 결혼 생활 중에서 미래의 아내와 간통을 범함으로써 배반과 외로움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했다. 자신의 정서적 안정을 얻었다고 확신했을 때 그는 아내가 자신을 떠나기 전에 그녀를 버렸다.>

간호사 아그네스와 이별한 후 헤밍웨이는 첫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1921년)을 시작으로 폴린 파이퍼(1927년), 마서 겔혼(1940년), 메리 웰시(1946년)까지 네 명의 여성과 결혼했다. 공교롭게도, 첫 아내 해들리를 제외한 3명은 모두 기자 출신이었다.

헤밍웨이가 쓴 파리 체류기 ‘파리는 날마다 축제’(주순애 역, 출판사 이숲)에 따르면, 불륜과 결혼 과정은 이랬다.

헤밍웨이는 첫 아내 해들리와 결혼한 상태에서 패션 잡지 ‘보그’의 편집자 폴린 파이퍼와 함께 지내곤 했다. 헤밍웨이는 친구 집에서 처음 만난 폴린에게 스키를 가르쳐 주겠다며 그녀를 오스트리아로 초대했다. 둘은 곧바로 사랑에 빠졌다. 6년간의 결혼 종지부를 찍고 1926년 첫 번째 아내 해들리와 이혼한 헤밍웨이는 그해 곧바로 폴린과 재혼했다.

불륜 상대자들과 결혼… 4명의 아내 중 3명이 기자

헤밍웨이는 두 번째 아내 폴린과는 13년을 함께 살았다. 이 결혼 생활도 평탄치 않았다. 헤밍웨이가 특파원 출신인 마사 겔혼과 사랑에 빠지면서 막을 내렸다. 헤밍웨이는 3번째 아내 마사와 1940년 쿠바로 건너가 정착했다.

이 생활 역시 삐걱거렸다. 헤밍웨이는 마사가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주길 바랐지만, 그녀는 가난한 사람을 취재하기 위해 아이티로 가버렸다. 그녀는 또 헤밍웨이가 낚시하러 간 사이, 그가 기르던 수고양이들을 모두 거세해 버려 화를 돋우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결국 그런 마사가 “자신을 버렸다”며 이혼소송까지 제기했다.

헤밍웨이의 4번째이자 마지막 아내 메리 웰시는 ‘타임’지 기자였다. 그녀와의 가정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메리는 헤밍웨이를 몹시 사랑했다. 고통과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남편의 곁을 지키려했다. 훗날 아들 잭은 “헤밍웨이가 메리에게 하듯이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다면 모두 그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찌질한 위인전’(위즈덤하우스)을 쓴 함현식 작가는 헤밍웨이의 뻔뻔함에 주목했다. 함 작가는 “헤밍웨이는 기자 신분인 지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에게 끌렸다”며 “하지만 그는 막상 불륜 상대자와 결혼하고 난 뒤에는 아내가 된 그들에게 집안과 아이를 돌보는 가정적인 역할을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함 작가의 설명은 계속된다.

<장시간 집을 비우고 위험한 현장에 뛰어 들었던 헤밍웨이에게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안정적인 가정이 필요했다. 그러고는 다시 현장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뿐만 아니라 불륜의 상대를 데리고 나타나 아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헤밍웨이의 불륜녀 앞에, 본의 아니게 가정주부가 된 그의 아내들은 상대적으로 초라함을 느끼고 절망에 빠졌다.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 헤밍웨이는 아내에게 온갖 모욕적인 언사와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그의 아내는 어떻게든 가정과 부부관계를 지키려 애쓰다 결국 헤밍웨이의 뜻대로 헤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버림 받은 아내에게 “창녀같은 여자”라고 욕하는 헤밍웨이의 모습은 간통으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남자의 행동치고는 지나치게 뻔뻔했다.>

“버림 받은 아내에게 창녀같은 여자”

‘나쁜 남자’ 헤밍웨이의 마지막을 지킨 건 4번째 아내 메리다.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2일 아이다호에 있는 자신의 집 현관에서 엽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심한 우울증 탓에 61세로 삶을 마감한 것. 그는 마지막 일기장에 “나는 필라멘트가 끊긴 텅 빈 전구처럼 공허하다”고 썼다. 인생이란 그런 것. 살다보면 첫사랑도 공허하고, 여성편력도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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