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 응축된 을지로 거리, ‘재생 사업’으로 ‘재생’될까

대한민국 경제 중심→골칫거리된 ‘을지로 거리’에 부는 새 바람

악덕 대부업자 ‘이강도’가 돈을 갚지 않는 채무자의 팔을 프레스 기계에 구겨 넣는다. 채무자의 아내가 “팔이 없으면 일을 못 한다”며 울부짖지만 이강도의 표정엔 아무 변화가 없다. 몰락한 도심의 소규모 철물 공장 지대를 시종일관 음산하게 그려낸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의 한 장면이다.

피에타의 배경이 된 곳 을지로 4가는 영화에서의 강렬한 분위기와 달리 뚝딱뚝딱 기계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대며 생동감 넘치는 광경을 품고 있었다. 대한민국 경제사를 프레스 기계의 금형처럼 압축시켜놓은 을지로 4가. 이 곳은 최근 공간을 통째로 들어엎는 ‘재개발’ 대신 ‘도시 재생 사업’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재생’되고 있다.

거친 아저씨들 사이로 보이는 앳된 ‘예술’ 청년들

여름 더위가 목젖까지 차오른 이달 중순 을지로 4가역 부근의 산림동 특화 거리. 거칠게 철판을 잘라내는 ‘아저씨’들 사이로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 골목을 누빈다. 앞치마를 맨 이들이 향한 곳은 회색이 만연한 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핫핑크빛 대문의 2층 건물. 조민정(25)∙이건희(28)∙최현택(27) 세 청년이 꾸리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써클활동’의 작업실이다.

“저희는 디자인 제품을 직접 만들고 있는 디자이너들이에요. 산림동에는 중구청에서 진행하는 공간 지원 공모에 선정돼서 들어오게 됐어요.”(조민정 디자이너)

지난해 7월 서울 중구청은 슬럼 지역으로 쇠퇴하고 있던 산림동 골목 일대를 무대로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대의 묵은 때를 온 몸으로 떠안은 채 버려진 건물을 창작예술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으로 돈 없는 젊은 예술가들이 관리비 수준의 돈만 내면 2년간 작업실 걱정 없이 마음껏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자전거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주목을 받은 디자인 스튜디오 ‘써클활동’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을지로에 터를 잡은 기업 가운데 하나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예술색이 더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 부근은 묵직한 기계음이 공기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대한민국 상공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연이은 ‘재개발 논란’으로 홍역을 앓다가 최근 들어서야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 등을 비롯한 도시 재생으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이쯤에서 대한민국 경제가 응축된 을지로 거리를 되짚어 보자.

일제강점기 서울 중심된 을지로

을지로가 서울의 중심이 된 것은 일제 강점기. 1912년 당시 대한민국 땅을 강제병합한 일본이 경성(현재의 서울)의 도로계획을 발표하며 ‘황금정길(을지로)’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도로 정비 후 다시 태어난 을지로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서울 최초의 도로가 들어섰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대규모 은행과 기업이 자리를 잡은 조선의 중심업무지구로 급성장했다.

을지로 3・4가에 공업지구가 형성된 것 역시 일제강점기 때다. 당시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자리 잡으면서 인접한 을지로 일대가 자연스럽게 일본인을 위한 ‘서비스 마을’이 된 것. 인쇄∙방직∙가구 등 당시에 들어선 영세 도심형 공장들은 현재의 가구・조각・조명・공구・미싱・타일도기 거리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을지로 거리의 대한민국 상공업 역사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1960년대. 일제 지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무허가 건물만 남아버린 을지로에 ‘세운상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1966년 당시 박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후배 김현옥 서울시장이 임명된 지 일주일도 안 돼 을지로 3가와 4가 일대의 무허가 건물들을 철거하고 세련된 상가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불운’의 세운상가 이웃이 되다

‘불도저’라는 김 시장의 명성에 걸맞게 사업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고 같은 해 종묘와 남산을 잇는 거대한 8개의 건축물이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시공에 들어갔다. 세운상가 설계에 참여한 건축가 윤승중(79)은 구술집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할 정도였다. “세운상가는 토요일 오후 김수근 선생이 갑자기 불러 맡긴 과제였는데, 며칠만에 계획안을 정리해 드리면서 사업이 시작됐다… 시장이 당장 그려오라고 해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단지로 구성된 세운상가는 1968년 준공과 동시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공중에 뜬 보행 데크와 유리 천장으로 덮인 아트리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생긴 대형 슈퍼마켓 등은 배고픔의 해결이 제 1과제였던 국민들의 눈을 휘둥그레 하기 충분했다. 게다가 상가 위에 지어진 고급 아파트는 가격이 껑충 뛰어 상류층의 전유물이 됐다. 현재 분양을 코앞에 두고 있는 롯데월드타워의 평당 1억원대 초호화 레지던스 시설을 떠올리면 될 정도다.

을지로의 소규모 상공업 지역은 세운상가의 인기와 더불어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다. 금속∙기계∙인쇄∙공구∙조명 업체들이 골목마다 줄을 지었고, 이 일대가 컨베이어 벨트를 갖춘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상호 작용을 하며 움직였다. ‘청계천 일대를 한 바퀴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기 시작한 것이 이 즈음이었다.

그러나 이 빛나는 시절은 채 10년을 가지 못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세운 상권의 인기가 급하락하기 시작한 것. 건설 계획부터 준공까지 너무 급하게 이뤄졌던 터라 도시 경관문제, 주변 지역 단절 문제가 대두됐다. 게다가 ‘강남 전성 시대’가 시작되며 상류층 주민들은 강변 맨션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77년에는 전기∙전자 업종이 도심부적격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용산으로 강제 이전됐다. 여기에 신세계∙롯데 백화점이 옆동네인 명동에 자리 잡으면서 세운 상권은 급격히 시들기 시작했다.

이제 세운 상가는 더 이상 이름처럼 ‘세계의 기운이 모이는’ 건물이 아니라 서울의 ‘괴물’이 돼버렸다. 을지로 상공업 지대도 재개발이 필요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며 슬럼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을지로 ‘개발’ 막은 ‘재개발 구역 지정’, 그럼에도 공장은 돌아간다

을지로 일대에 재개발의 악몽의 시작된 건 1979년. 당시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지역이 30년 넘게 재개발 구역에 묶인 채 전혀 ‘개발 없는’ 곳으로 전락하게 될 줄은.

재개발 논의는 84년, 88년, 97년, 2006년, 2009년까지 이어졌지만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소유권이 잘게 쪼개진 을지로 땅에 주인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모두 매수하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지주 자체 조합 구성 조차 어려운 상황. 긴 세월 동안 재개발 구역으로 묶인 사이 을지로의 건물들은 점점 나이를 먹어갔다.

건물이 노후화되자 살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영세한 공장들은 점점 더 늘어났다. 을지로 일대 건물 가운데 산업 용도 건물의 비율이 1980년대 28.2%에서 지난 2003년 56.4%로 2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실제 첫 재개발 구역 지정 37년이 지난 현재도 을지로엔 총 2,324개의 가구∙조각∙조명∙공구∙미싱∙타일도기 업체들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동네가 낡았고 상권은 죽어가지만, 서울 한복판의 작은 공장들은 끊임없이 기계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재개발 대신 재생으로…슬럼화된 을지로 되살아날까

최근 서울시는 이 을지로 일대를 통째로 들어엎는 ‘재개발’ 대신 도시 생태계를 보존하는 ‘도시 재생’ 사업으로 재생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선 중구청의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도 이러한 작업의 일환. 이 프로젝트로 산림동에 둥지를 튼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는 ‘써클활동’을 포함해 벌써 8개에 이른다. 특히 이들은 ‘대한민국의 응축된 경제사(史)가 담긴 거리와 상생할 수 있는 제품 생산 및 예술 활동을 통해 을지로 생태계의 보존 및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여기 을지로에 온 이후 ‘을지생산’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이곳에서 생산되는 금속 재료나 가공기법을 활용해 촛대나 명함꽂이 같은 제품을 만드는 것인데요. 우리의 디자인에 을지로의 환경과 시대를 담고 싶었죠.”(이건희 ‘써클활동’ 디자이너)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세운상가도 ‘재개발’ 대신 ‘재생’을 통한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시가 그동안의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 대신 ‘세운상가 재생 사업’에 착수한 것. 사업 이름도 역사에서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을 되돌려 놓겠다는 의미에서 ‘다시 ∙ 세운 프로젝트’로 지었다. 건립 당시 세운상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공중 보행 데크를 살려내고 리모델링을 진행해 주변 지역으로 활력을 확산하겠다는 목표다.

서울시는 “세운상가는 서울의 도시·건축적 유산일 뿐 아니라 역사·문화·산업의 복합체로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 공간”이라며 “대규모 통합개발 방식이 아닌 도시조직을 고려한 소규모 분할개발방식으로 상가 일대를 창조 문화산업중지로 변모시키겠다“고 밝혔다.

김용창 공간환경학회 연구원은 저서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을 통해 “을지로 일대가 소규모 사업장들의 공생적∙상생적 산업 생태계 덕분에 건강성을 잃지 않고 있다”고 했다. / 김현주 기자 joo@bzu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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