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도 표현할 수 없던 그 '뭔가'라는 경이...

세계문학전집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읽다... <대성당> 책의 큰 제목이다. 이 소설이 뭔가 의미가 있기에 표제로 썼을 터. 12개의 단편 중에 가장 끝에 실린 이 단편을 제일 먼저 펼쳐든 이유다. 아내와 그녀의 맹인 친구. 맹인 친구가 집을 방문하는 대목에서 시작하는... 역자는 소설가 김연수. 그의 소설적 번역문들이 말끔하다. 얼마 전에 읽었던 김연수의 단편이 떠올랐다. 아내와 그녀의 동남아 외국인 친구가 나오는, 외국인 친구의 방문 장면과 겹친다. 해서 전에 읽은 책의 제목을 찾아봤는데,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였다. 왜 '레이먼드 카버에게'였는지 궁금했는데... 그 답을 알 듯하다. p292 그 박복한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채로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이야기였다.... 그 맹인이 약간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살았을 삶의 행로가 얼마나 가엾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 비친 자신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여인을 상상해보라. - 화자가 생각하는 맹인의 안타까운 삶과 그 연인에 대한 연민이다. 공감을 하면서도 과연 그럴까? 의문을 가져본다. '나'는 맹인에게서 눈을 감고 보는 법을 배운다. 맹인의 손을 잡고 꾹꾹 눌러 그린 그림에다 다시 눈을 감고 이어 그리는 그림에서... '정말 대단하다'며 감탄한다. 그래... 정말 대단할 것 같다. 순간 나도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그림 속을 맹인과 함께 여행하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경험에 의한 실전으로 읽는 법, 시각적 오류에 빠지지 않는 법... 그런 것들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누군가 말했던, 내 아이의 입을 통해 들었던 '빛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처럼... 카버와 김연수, 둘의 글 스타일 같은 걸까? 김연수식 번역문일까? 카버의 글은 원문조차도 김연수의 글과 같은 느낌일 것 같다. 역자는 맹인에게 배우다라는 칼럼을 덧붙였다. 나는 눈을 감고 몸으로 보기라는 다르게 보는 방법에 방점을 찍는다. <깃털들> 시가에 'It's a boy(or girl)'이라고 써서 나누어 피면서 득남이나 득녀를 알려 축하받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아들을 낳은 버드와 아내 올라의 초대를 받아 버드의 집에서 나(잭)와 프랜의 식사로 시작되는 이야기. (p31 에서...) 영어로 심한 말을 하고 난 뒤에 프랑스 말이라고 눙치는 습관들이 있었다는데...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프랑스의 은근한 라이벌 의식이 보인다. (p32 에서...) 공작을 가금류로 키우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ㅎ 소설이 수수께끼 같다. 버드 부부와의 저녁 식사 후에 잭에겐 많은 변화가 일었다. 프랜이 아이를 갖고 싶어 했고, 이런저런 변화 뒤에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날씬하고 긴 금발이었던 프랜은 머리도 자르고, 뚱뚱해졌다. 버드는 여전히 잘 살고 있었고, 잭과 프랜 사이에는 뭔가가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p42 진실은, 내 아이에게는 뭔가 음흉한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건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애 엄마와도. 특히 그녀와는. 그녀와 나는 점점 말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 화자인 나, 잭은 뭘가 시원스레 터놓지 않는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수께끼 같은 말들만을 늘어 놓고... 아이가 프랜의 외도로 생겼던지, 아니면 입양을 했던지... 버드의 집에서 식사했던 날의 고무적인 분위기는 한 순간 사그라졌다. 그 때의 그 느낌들이 공작의 깃털을 선물로 받아쥐던 그 순간에 담겨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쩌면 잭과 프랜이라는 이 부부의 삶을 김연수는 <모두가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에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김연수의 이 소설 속 주인공에겐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헤어지려 했으나 결혼했다. 아내는 많이 외로워했다. 어쨌거나 김연수는 카버의 단편들을 번역하며 자신의 소설을 구상했던가 보다... <셰프의 집> 알콜중독자 남편을 둔 한 여인이 화자이다. 남자 친구 지내고 있는 '나'에게 전 남편 웨스가 돌아오라고 '마차에 올라탔다'고 선언했다. 마차란 19세기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거리에 물을 뿌리던 물마차를 말하는데, 술 대신 그 물을 마시겠다는 금주에 대한 관용구란다... 관용구에 대해 검색해 보니 '익은이은말', 관용어는 '익은말'이라고 한다... 음... 득템한 기분...ㅎ 셰프의 딸 '뚱땡이 린다'가 있다. '뚱땡이 린다'라는 말이 '자신의 불행을 타인을 괴롭혀서 극복하고 즐거움을 찾는 여자'라는데... 어쨌든, 웨스는 뚱땡이 린다에게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셰프가 공짜로 빌려주었던 집에서... 새로 살 집을 구해야 하는 막막함을 안고... <보존> 1938년에 태어나 1988년에 암으로 사망한 카버가 살던 미국에는 이미 실업수당이란 것이 있었던가 보다. 당시 고용보험 제도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런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많이 뒤쳐져있던 때라는 실감이 비로소 드는 것이다. 1988년 이전에 이미 복지를 생각하고 있던 선진국의 모습.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는 어디까지 와 있고,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어디까지가 정당할지... 궁금해지면서, 세상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머리가 아프다. 해고된 샌디와 그녀의 남편 얘기다. 퇴근하고 온 샌디가 고장난 냉장고를 발견하고 남편과 경매에 가기로 한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살짝 졸았던 남편은 저녁이 다 되었다는 소리에 식탁으로 와서는 식탁에서 떨어지는 물에 맨발이 젖는 것을 바라보더니 도로 소파로 가 버린다. 아무 말도 없이... 미묘한 감정 변화를 알 수가 없다. 이 소설에서 뭘 말하고 있는지... 냉장고는 보존해야 하는 식품을 저장하는 장소다. 그 냉장고가 고장남으로 해서 보존은 불가능해졌고, 그들의 삶 역시 불안해졌다. 그건 생활고에 하나를 더 얹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것일까? 카버는... 그의 소설에는 지금의 우리나라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칸막이 객실> 신경과민의 알콜중독자 아내로 바꿔 놓은 '아들'이라고 했고, 자신의 청춘을 집어삼켜버린 '아들'을 만나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간다. 이혼 후 한참 뒤에 받은 아들의 편지에서 아들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했고, 엄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참에 유럽 여행을 겸하여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기차에서 일어난 사건을 아주 짧은 단편에 담았다. 아들에게 줄 선물용 시계를 도둑 맞았고, 스트라스부르 역에서 아들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하차하지 않고 여행가방이 있는 칸막이 객차는 다른 열차로 떨어져 나갔는데... 어딘지 모를 곳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너무도 편히 잠들어버리는 주인공. 뒷감당은 어찌하려는지... 모든 것을 잃었다는 홀가분함일까? 자려해도 잘 수 없던 지난 밤의 잠이 이렇게 편히 쏟아져 빠져드는 역설... 카버의 소설은 짧은 만큼 불친절해서 읽는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 그것이 참 고단하긴 하네... 역자의 해석을 보면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화자 마이어스를 표현했다고 한다. 잃고 싶은 과거를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잃었으나(시계를 도둑맞은 것) 역시 어딘가로 가고 있는데 그 역시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기차에 몸을 맡긴 상태... 어쩌면 '굴레'와도 통하고 어쩌면 '열'과도 맥락은 이어진다. 사실 카버는 자신의 아들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대학으로 유학 간 경험을 여기에 이입했다. 유학을 가는 아들에게 자신의 시계를 풀러 선물로 주었다는데 이 소설에서 그 시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앤과 하워드, 그리고 그들의 아들 스코티. 스코티는 생일날 빵집에 주문해 둔 케이크를 받기 전 학교로 가는 길에서 뺑소니 차에 치여 집으로 간다. 집에서 의식을 잃었고, 급히 병원으로 가 처치를 했으나 이틀 뒤에 죽고 만다. 단란했던 가정에 닥친 급작스런 불운, 앤의 울분은 케이크를 찾아 가라고 전화를 건 빵집 주인에게 이른다. 빵집에 들어 와 분노를 하는 앤을 빵집 주인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아이가 죽은 것을 알게 되고,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을 위해 따듯한 커피와 빵을 대접한다. p127 "내가 만든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빵을 먹는 일, 그리고 홀로 고독해진다는 것의 의미, 아이가 없이 늙어간다는 것의 외로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여러 행위들로 우리는 그렇게 견디며 산다... <비타민> 비타민 방문판매업을 하던 패티, 그리고 그녀의 친구 도나와 실라. 실라는 레즈비언이었고 패티에게 사랑을 고백하고는 포틀랜드로 떠났다. 패티의 남자친구인 화자, 나는 도나와의 하루밤을 꿈꾼다. 도나와 첫 데이트를 했던 흑인들의 술집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베트남을 다녀온 넬슨을 만나고, 넬슨의 거친 행동으로 데이트를 망치고 나니 도나가 나에겐 의미가 없어진다. 당시 포틀랜드는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었던가 보다. 도나 역시 넬슨에게 당한 모욕과 경제적 어려움을 핑계로 패티와의 동업을 깨고 포틀랜드로 간다고 했다. 그 둘을 쫓아 왔을지도 모르는 넬슨의 차를 본 것 같지만, 나는 현장에 도나만을 남겨두고 패티에게로 돌아온다. - 내 경험치 밖의 이야기라 공감은 어렵지만 영화 속에서 보았던 미국의 할렘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미국 사회의 불안이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을 졸이며 읽게 된다. 작가는 무엇을 얘기하려 했을까? 세태를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든 우리 사회는 많은 불안 요소가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그럼에도 가야할 길이 있다. 선한 사람들, 근본을 중시하는 삶, 자성력 있는 사회를 꿈꾼다. <신경써서> 로이드와 아내 이네즈. 로이드는 알콜을 끊기 위해 아내와 별거 중인가 보다. 헌데 귀지가 한 쪽 귀를 틀어 막아 괴로워했다. 결국 마침 자취방을 방문한 아내의 기지로 귀지를 녹여낸다. 베이비 오일로. 앞으로 그저 신경써서 자야할 일만 남았다. 힌쪽으로만 자지 않도록 주의하면 될 일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일. 샴페인으로 알콜 중독을 달래는 일도 신경만 쓰면 되는 일일까? 하루 세 병을 먹는 샴페인의 양을 줄여가도록 신경쓰는 일이 아마도 아내가 로이드에게 바라는 일 같다. 로이드는 단지 잠자는 자신의 습관에만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또 다시 샴페인을 들이켜는 것이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 결코 유복하지 못했던 카버. 그는 알콜중독의 경험이 있었을까? 단편의 반 이상이 알콜중독이 한 소재로 등장한다. 이 소설 역시 J. P.(조 페니)와 화자인 나도 알콜중독 치료 시설에 와 있다. 시설은 프랭크 마틴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사설 치료기관일까? 하여간 J. P.는 손을 떨고 있고, '나'는 신경 발작으로 이 시설을 다시 찾은 재범 환자. J. P.의 지난 얘기를 듣는다. 굴뚝청소부. 그가 어렸을 적 마른 우물에 빠진 얘기. 우물 속의 공포, 우물 속에서 바라본 세상과 시간, 그리고 소리들. - 난 어떤 상상을 하게 될까? 우물 속에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조금은, 아니 어쩌면 많이 두렵고, 조금은 신기하고 조금은 재미있고, 조금은 어지러울 것 같다... J. P.의 첫사랑이랄까? 굴뚝청소부 여자를 본 첫 기억. 같이 굴뚝 청소를 하며 사랑이 싹텄다. 그리고 결혼한다. 아내의 일을 모두 물려 받았다. 아이도 둘 낳았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다 맥주를 마시게 됐다. 아주 많이. 후에 진토닉으로 바꿨다. 술을 마시기 위해 일도 줄였다. 그 즈음 아내와 치고박고 싸움을 시작한다. 결국 아내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J. P.는 여기, 장인과 처남에 의해 맡겨졌다. 프랭크 마틴의 치료센터에 자발적으로 들어온 화자인 나와는 달랐다... 나는 아내의 도움으로 처음 프랭크 마틴의 치료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두번째 방문은 여자친구와 왔다. 여자친구는 암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같이 술을 마셨다. 아주 좋은 핑계거리였다. 여자친구가 여기로 올 때 내 차를 운전해 주었고 그녀도 나도 취해 있었다. 그녀의 십대 아들은 둘 다 지겹다고 꺼져버리라고 했다. - 미국의 '잭 런던'이라는 사람은 대 농장주였고 훌륭했지만 술 때문에 죽었단다. 실제 이야기인지 소설 속 얘긴지는 모른다. 프랭크 마틴이 교훈으로 삼으라며 한 얘기였으니... 내가 전화 거는 곳은 아마도 나의 마음이 있는 곳이겠다. 먼저 아내에게 걸 것이고,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여자친구에게는 어쩌면 의무이고, 아내는 마음의 본류일까? 아니면 정말 자기 짐을 정리하기 위한 것일까? 아닐 거다. 여자친구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조 없다고 했다. 무덤덤하기도... <기차> - 존 치버에게(누굴까? 존 치버...) 크라바트는 프랑스어로 넥타이라는 뜻이란다. 크라바트 연대가 착용하여 생긴 말이라는데... 음... 군대에서 나풀나풀한 넥타이라니... 역시 프랑스는 패셔너블하구나... 미스 덴트는 어떤 남자에게 총을 겨누고 겁은 준 뒤에 그가 있는 곳을 벗어나 기차역에 앉았고, 장미빛 니트 드레스를 입은 중년의 여자와 크라바트를 하고 맨발인 노인은 열을 내며 기차역에 들어섰다.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 시간이었고 기차는 실내등을 켠 채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각자 기차를 타고 역을 떠난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다. 미스 덴트가 총으로 위협한 일, 니트 드레스의 여자 열을 올리며 말한 일, 크라바트를 한 노인이 신발이 없이 맨발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기차 안의 사람들이 늦은 시각에 기차를 타는 세 사람을 보고 처음의 궁금증과는 달리 무심해지며 각자의 생각에 빠져버리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가 개별적으로 살아간다.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듯, 자신의 고민을 안고, 문제를 품고... 갑자기 에드워드 호퍼의 현대인의 고독을 연상케 하는 씁쓸함이 밀려오는 것은 카버가 의도한 작의에 맞는 그런 것이었을까? 기차는 호퍼의 그림 그 자체로 보인다. 어쩌면 문학계의 호퍼가 카버인 듯.. 작품 해설에서... <기차>는 존 치버의 <다섯시 사십팔분>에 이어 쓴 단편이란다. 미스 덴트가 어떤 일을 겪고 기차역으로 왔는지를 알려면 존 치버의 이 소설을 봐야 할 듯하다. <열> 아내 아일린이 떠나버리고 칼라일은 키스와 세라를 돌보는데 전념한다. 아일린은 칼라일의 직장 동료 리처드 훕스와 떠났단다. 열아홉 살 소녀 베이비씨터 데비는 괴이한 행동으로 쫓겨나고 칼라일은 혼란스러웠다. 아내가 그리웠다. 테네시 윌리엄스와 앤설 애덤스를 얘기할 수 있었던 리처드에게 가 버린 아내. 리처드가 알아봐 주었다던 짐 웹스터 부인이 오자 마음이 편해진 칼라일은 아이들과 다시 행복해졌다. p237 "의도가 보이면 그건 그림을 잘못 그린 거야, 알겠니?" - 예술은 왜 그래야 할까? 어쩌면 인간에 대한 기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칼라일은 열이 났다. 그 와중에 웹스터 부인이 떠나야 한다고 얘기했고, 칼라일은 자신의 삶을 부인에게 털어놨다. 아내를 사랑했고, 지금 아내는 멀리 떨났다는 걸. 그리고 아내를 이제는 보내주어야 한다는 걸. 아프고 난 후의 맑아진 정신은 이제 뭔가를 정리하고 맺을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웹스터 부인에게 더이상 의지할 수 없게 된 것도... 웹스터 부인의 포근함에 나도 젖어든다. 얼마전 읽었던 단편, 손보미의 <임시교사>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면 웹스터 부인, 또는 그 임시교사의 P 부인과 비슷한 일을 하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럴까? <굴레> 나 마지(스타일리스트라고 스스로 칭하는 미용사)와 할리는 풀턴 테라스라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한다. 아파트의 임대와 관리를 한다. 어느 날, 미네소타에서 온 홀리츠 씨와 아내 베티, 그리고 아들 둘이 아파트를 계약했다. 결국 홀리츠의 부상으로 다시 그 아파트을 떠나면서 끝나는 이 소설은... 인간이 갖는 애착이 굴레가 되는 일을 얘기한 것일까? 홀리츠는 말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경마에 푹 빠진다. 그 바람에 가난해져 농장도 잃고, 애리조나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게 된다. 이사올 때 가져왔던 말 굴레를 이사갈 때에 놓고 가버렸다. 주인공 마지는 베티를 생각하고 일부러 놓고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말을 길들이기 위한 굴레를 버림으로써 얻는 것의 상징성. 그것이 이 소설에 담겼다. ............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은 소설을 쓰는 특히 단편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로망이기도 한 소설들인 것 같다. 그의 생전의 단편들은 단편의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읽어보니 참으로 명쾌한 단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아직 생존해 있다면 멋진 장편도 나왔을까? 카버에게는 단편 자체가 그인 것 같은... 왠지 스포티한 캐주얼을 입은, 청바지 차림의 사람에게 어울릴 법한 글들이 그의 글이다. 카버의 소설들은 그가 경험한 것을 썼으나 자전적이지 않은 소설, 그의 삶이 담겼으나 그가 아닌 소설이다. 가난하고 알콜중독자가 되었던 지난 날은 모두 아이가 이유였다고 말하기도 했단다. 아이는 행복을 주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참으로 거대한... 그래서 자신이 망가지기까지 하는 그런 존재였던가 보다. 카버에게는... 카버는 '더러운 리얼리즘'으로 자기의 세계관을 담았다. 그의 소재이기도 했던 것 같다. 특히 전반기 작품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카버가 이혼을 결단하고, 재혼하여 새로운 환경에들면서 일 역시 잘 풀렸고 세상엔 뭔가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다는 설명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의 깨달음은 <대성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카버의 밝은 세계로의 진출, <대성당>에는 그런 것이 보인다. 하긴 단편집 《대성당》의 성공은 그를 글만 쓸 수 있도록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했다고 한다. 카버는 미국의 어두운 면을 캐주얼한 문장에 많이 담아냈다. 번역문에서 인칭대명사가 너무 많이 쓰여 읽는 데에 좀 걸림돌이 되긴 했다. 우리말은 영어처럼 인칭대명사를 그렇게 남발하지 않는데... 하여간에 소설 속에 나타난 미국의 어두운 사회의 모습은 어디에나 있을 것들이겠으나, 그래도 다른 점은 항상 참고될 책을 보라며 권하는 이가 있고,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 밑바닥 인생에도 책이 생활인 것처럼... 은근히 중국과 미국이 비교된다. 둘 다 거대 국가다. 그러나 교육과 문화 수준은 천지 차다. 그래도 미국은 문맹률이 현저히 낮을 거라는 생각, 또 책을 읽는 것이 미국인들에게는 삶이라는 생각. 아마도 알파벳과 한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모두가 문명인이다. 우리 한글로 문맹이 거의 없으니. 우리나라가 급속한 발전을 이룬 이유도 한글의 보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책 좀 읽자. 뭐든 읽자. 삶의 질이 바뀐다.

현대인의 고독을 에드워드 호퍼 만큼 표현한 사람이 없을 듯하다. 그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절절해진다...

사진, 역사, 건축, 문학을 아우르는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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