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수난이지만, 그래도...

<채식주의자>를 읽다... 영혜가 육식을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렇게 맞아 온 모양이다. 영혜는 몸에 그린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단지 그림이 영혜에겐 관능적이었다. 사람의 몸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자신이 식물인 양, 수분을 위해 곤충을 유혹하는 매혹적인 꽃인 양, 체액을 분비한다. 연한 초록빛의 체액을... 작가는 영상 예술가의 이미지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어쩌면 아라키 노부요시의 꽃그림을 보았을까? 꽃은 확실히 유혹적이고 관능적이며 성적 긴장감을 준다. 사진으로 꽃을 찍다가 새삼 놀라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성의 근원이 꽃에 있다하여도 믿어지리 만큼 꽃의 유혹은 본능에 의한 관능이다. 영혜는 원초적 순수를 지녔고, 이를 알아보는 원초적 감성이 예술가인 형부에게 있었다. 그렇게 교합을 하였던 것이 과연 위험한 일이긴 하다. 하필 왜 형부였냐는 말이다. 형부의 후배, J였다면 모두에게 나쁘지는 않았을까? 생물적 본성에 대한 안타까움, 본성을 억제하는 사회적 인간이라는 존재, 본성이 정신이상이 될 수 있는 사회, 또 치밀하게 정신 이상을 만드는 인간들... 인간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법을 만들고 규제를 한다. 그로 인해 인간은 또 미쳐 간다. 윤리라는 틀의 사각지대엔 나약한 인간은 설 자리가 없다. 영혜의 꿈은 그 나약함에서 왔으리라. 형부 또한 예술 본연의 나약함을 지니고 있다. 결코 아닌 줄 알지만 할 수밖에 없는 솔직한 욕망을 외면할 수 없는... 반면 언니이자 아내이고 엄마이자 맏딸인 인혜, 글 속의 그녀는 강인함으로 고독한 존재다. 스스로도 자신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단지 삶의 무게를 지탱하며 그저 살아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모두가 그녀의 짐이어서 고독한 그녀는 자신을 뿌리칠 용기가 없다. 관성으로 살아진 나날들에 짓눌려... 어쩌면 동생 영혜가, 남편이 부러웠을까? 그러나 그녀는 앞으로만 가는 시간을 되돌릴 방도를 생각하고, 이해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려 하고, 무게에 눌려 지쳐 쓰러지면서도 뿌리치지 못하는 짐을 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비겁하다 한다. 그녀 역시 정신 이상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지극히 그녀는 정상이어서 스스로가 너무 버거워 미칠 것 같다. 미칠 수 없을 만큼 버겁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문처럼... p181 환자들은 사람과 사람의 육체가 지켜야 할 적당한 간격을 무시하고, 시선을 둘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을 무시한다. -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정신병 환자들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무엇이 정상인지 무엇을 바라고 살아가는지 종종 잊게 만든다. 나는 정신 병동에 있는 영혜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하기가 싫다. 좀 다르다고 생각된다. 조금만 영역을 넓혀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사람 사이의 간격과 시간이 각기 다를 뿐이라고 그렇게 이해되는 것이다. p191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 비겁함, 생존의 방식... 성실이 어쩌면 고난에 대한 회피였을까? ◇ 해설... 열정은 수난이다 - 허윤진 p223 의식의 퓨즈가 나가는 편이 덜 고통스러운가, 의식의 퓨즈를 잇는 편이 덜 고통스러운가. 소설은 의식의 퓨즈가 서서히 끊어지는 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읽힐 수도 있지만, 의식의 퓨즈를 끊고 싶어도 이을 수밖에 없었던 이를 중심으로 지체된다고 읽힐 수도 있다. - 영혜와 그녀(인혜: 영혜의 언니)의 얘기다. p225 이처럼 앎의 욕망은 개체와 개체 사이의 핵융합을 막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거리감의 벽을 무너뜨린다. - 평론가 허윤진은 욕망이라는 열정을 주시한다. • 하얀 집의 붉은 벽 • 갤러리71: 에너지의 수혈(輸血, 樹血) - 형부 • 갤러리8.93: 목소리를 삼킨 - 영혜 • 갤러리1: 단순하게 냉정할 것 - 남편(정서방) • 갤러리42.19573587464576......: 일상은 수난이요. - 언니(인혜) • 붉은 집의 하얀 벽 평론가의 단락에 붙은 부제의 숫자가 뭘까? 곰곰히 생각한다. 언니 인혜가 마라톤이라면 다른 이들 역시 달려온 거리, 달려야 할 거리가 아닐까? 욕망의 열정과 고통을 감당하는 거리, 그 크기의 표현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인혜처럼 삶은 그렇게 힘들어도 종착 지점까지 걷든 달리든 가야하는 거리이고 폭이다... 표지 그림...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들' - 표지를 작가가 직접 선택했다고 하는데, 다만 '나무'라는 이유에서가 아닐 것이다. 에곤 실레의 작품 세계를 보면 영혜의 형부과 제작했다던 비디오 작품이 연상된다. 급진적인 표현주의자로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투쟁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때로 작품의 배경을 비워 고독과 단절감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회화의 진실은 바로 성(性)과 죽음에 있고 이를 표현하여 구원에 이르고자 했다고 한다. 표지 그림이 소설을 말해주는데... 번역본에는 표지가 달랐다. 명백한 오역도 있는 듯하고.

사진, 역사, 건축, 문학을 아우르는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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