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본패망하루전> - 일본 우익의 공포스런 신념, 그 기원을 포착하다

연합군의 파상공세로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1945년의 일본. 퇴역 장성 스즈키(야마자키 츠토무 분)는 일왕 쇼와(모토키 마사히로 분)의 요청에 따라 일흔이 넘은 나이로 새 내각의 총리 자리에 오른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연합군으로부터 무조건 항복 요구를 받은 일본 내각은 조금씩 항복 쪽으로 의견을 모으지만, 군부의 결사항전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결국 내각은 8월 15일 라디오를 통해 일왕의 항복 선언을 방송하기로 결정하고, 하타나카 소좌(마츠자카 토리 분)를 비롯한 젊은 장교들은 이를 막기 위해 쿠데타를 시도한다.

영화 <일본패망하루전>은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전범들을 영웅시하는 일본 우익 세력의 기원을 담담한 어조로 상기시킨다. '황군의 성전'이란 미명 하에 젊은 청년들이 전선에서 희생되고 본토 폭격으로 국민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실상은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일왕을 중심으로 한 각료들의 탁상공론과 군부의 맹목성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가 지닌 맹점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빤히 보이는 패전을 앞두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군부의 정체된 신념은 공포스러울 정도다. 육군과 해군의 수장은 불리한 전세를 서로의 탓으로 떠넘기며 '해군주도 육군복종'과 '육군주도 해군복종'의 철 지난 화두로 티격태격한다. 패기로 가득찬 군부의 급진파는 "천만 국민을 가미카제로 이용하면 승리할 수 있다"며 항전을 주장하고 연합군의 포츠담 선언 속 'Subject to'(종속)이라는 표현에 날을 세운다. 항복 선언 방송을 막기 위해 방송국을 점거한 하타나카 소좌가 전기가 끊긴 마이크 앞에서 호소하는 항전 결의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는다. 그렇게 영화는 자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비뚤어진 호국주의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의미한 것인지 되새긴다.

영화는 항복을 추진하는 일왕과 총리, 대신들의 모습을 그리는 와중에서도 군국주의의 추악한 이면을 포착한다. 각료들은 항복 선언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전세가 악화된 상황을 "전세가 호전되지만은 않았다"고 에두르고, '패전'대신 '종전'이란 표현을 써가며 잘난 자존심을 지켜낸다. 여기에 동물학에 정통한 일왕이 "소와 돼지는 동물학이 아닌 축산학에 속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천왕제 하에서 황국신민(皇國臣民)이라는 미명 하에 자국민을 대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시각을 대변한다.

계엄령을 발령하고 군사 정권을 수립하려던 하타나카 소좌 일행의 시도는 '당연히도'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일본은 마침내 '공식적으로'패전한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스스로의 배에 칼을 꽂아 넣고, 스즈키의 내각은 해산한다. 그들이 '비인도적 나라'라고 비난해 온 미국이 곧 일본 땅에 발을 들인다. 하지만 천왕제는 굳건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침략 전쟁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추앙받을 거란 사실을 우리는 안다. 영화 막바지, 고요한 천왕궁 어딘가에서 흐르는 은은한 재즈 음악이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2016년 8월 11일 개봉.

누군가의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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