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건축의 미 오페라 하우스 BEST 10

세계에서 아름다운

오페라 하우스 BEST 10

아름다운 건축미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오페라 하우스 BEST10

입니다!!

라 스칼라극장의 정식 이름은 Teatro Alla Scala di Millano로 1778년 이탈리아의 밀라노를 통치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황제의 명령으로 개관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에 폭격으로 부서졌다가 전쟁이 끝난 직후 3천석 규모의 대극장로 재개관 했다.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폰키엘리, 보이토, 칠레아, 마스카니 등 주요 이탈리아 작곡가의 오페라 작품들이 초연된 오페라 역사상 대단히 큰 비중을 지닌 극장이다.

그 어떤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들에 비해서 훨씬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자랑하고 있는 이 극장의 특징은 출연진의 선정과 연습을 감독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있으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들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곡들도 공연함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라 스칼라는 공연의 뛰어난 수준과 세계적인 모든 가수들과 음악가들을 위한 연습장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며, 오늘날 이 극장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이 서는 무대라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칼라스, 테발디, 프레니, 시미오나토, 카루소, 질리, 베르곤치, 델 모나코, 디 스테파노, 파바로티 등의 가수가 모두 라 스칼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

산 카를로 극장은 17세기 초에 산 바르톨로메오 극장을 대체할 목적으로 지어졌고, 1737년 11월 4일 도메니코 사로의 오페라 <스키로의 아킬레우스>를 공연하여 그 문을 열었다. 3,3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어 그 당시의 전 세계에세 가장 큰 오페라 하우스였지만 1816년 2월 2일 화재로 인해 크게 파괴되었다. 그 이후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폭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연합군의 의해 수리되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산 카를로 극장과 인연을 맺고 있는데 그 중 조아키노 로시니는 1715년에서 1822년까지 극장의 거주 작곡가로 많은 곡을 무대에 올렸다.

산 카를로 극장은 여전히 공연을 계속하고 있으며, 현대의 청중들에게 나폴리 오페라의 영광스러운 전성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건물은 여러 가지 재난과 전쟁의 피해를 입었으나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페라의 중요한 중심지로 남아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은 호화찬란한 건물로, 1898년 국가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사치스럽게 장식된 이 건물은 그 규모 면에서도 광대하여 강당에는 2,478명의 관중이 앉을 수 있으며, 오케스트라 석에는 120명의 연주가 들어갈 수 있다.

이 콜론극장은 웅장한 당당함으로 주민들의 교양 있는 본성을 반영하고 국가의 위신을 높이며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대한 행동의 결과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유럽의 수도와 동등한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의미도 간직하고 있다.

1889년, 현재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자리에 건축이 시작되어 19년만에 완공하였고 이탈리아인, 벨기에인이 설계를 했고 첫 작품은 1908년 주제페 베르디의 <아이다>였다.

영국 오페라의 중심인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1732년에 개관했다가 1808년에 화재로 무너졌고, 1809년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재개관했다. 이 건물은 런던의 거주 지역인 코벤트 가든에 위치한 이후, 종종 “코벤트 가든”으로 불리며, 로열 오페라단, 로열 발레단과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교향악단의 본거지이다.

1949년에 빅토리아 양식으로 리모델링한 이 건물은 라파엘레 몬티가 디자인 한 것으로 크림색, 금색, 빨강색이 주조를 이루며, 돔 천장은 스카이 블루로, 제대로 된 극장이 없던 시절 하늘을 지붕 삼아 공연하던 야외극장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고 한다. 무대 전면에는 라파엘 몬티의 부조 ‘음악과 시’와 빅토리아 여왕의 왕실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세계 오페라사에서 대단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1743년 국왕 조지2세가 참관한 가운데 헨델이 ‘메시아’의 초연을 지휘했고, 곡이 ‘할렐루야 코러스’에 이르렀을 때 국왕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일어서서 박수를 친 것이 그 뒤로 음악회에서 기립 박수를 치는 관행이 생겨났다는 일화를 가지고 있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작품들이 특히 자주 공연된다.

브리튼, 헨체, 홀스트, 마스네, 티페트, 베버 등의 오페라가 초연된 장소이기도 한 이 극장은 로열 발레의 공연이 전체 오페라 하우스 공연일정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발레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는 극장이기도 하며, 2,098석 규모의 대극장이다.

볼쇼이극장의 뿌리는 제정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인 17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모스크바 극장 감독 장관에 임명된 우루소프 왕자가 모스크바에 석조극장 건축 계획을 마련했고 이후 5년에 걸쳐 건설됐다. 800석 규모로 지어진 이 극장의 첫 이름은 페트로프스키 극장이었다. 그런데 이 극장이 1805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1825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다시 극장을 건립, '볼쇼이'로 명칭이 붙여졌다. 이후 몇 차례의 큰 불로 재건을 되풀이하였고, 현재의 건물은 1856년에 다시 지어진 5층 규모의 석조건물이다.

볼쇼이 극장에서는 라흐마니노프, 루빈스타인, 차이코프스키 등의 전설적인 작곡가들이 자작을 지휘했었다. 또한 볼쇼이 극장은 발레를 중심으로 명성을 획득해 갔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볼쇼이의 명성은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리노프스키극장에 가려 있었다. 그리고 1898년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성황리에 공연한 것을 계기로 기틀을 잡게 되었다. 특히 1964년 당시 37세의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영입된 뒤 볼쇼이의 대표 예술인 발레단은 전 세계적으로 기량을 인정받는 발레리나들로 채워지면서 1960∼70년대 발레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이 볼쇼이 극장은 벽면이 심하게 기운 데다 건물 기초까지 침하되고 있어 이미 1987년에 폐쇄 권고를 받은 바 있는데, 러시아 당국은 돈이 없어 보수작업에 대해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때문에 이 극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네스코가 나서서 볼쇼이극장 보존운동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 건물의 특이한 지붕 모양은 국제 디자인 공모전의 우승작 작가인 이외른 우촌이 오렌지 껍질을 벗기던 도중에 떠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분적으로 원형의 모양인 바깥표면은 그곳을 항해하는 범선의 소함대를 떠올리게 하며, 비록 많은 방문자가 공연관람에 관심이 없더라도 꼭 한 번씩은 방문하는 시드니의 주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다양한 공연, 발레, 음악회 등이 올려지는 곳이자 시드니 교향악단과 호주 오페라단, 호주 발레단, 시드니 극단, 시드니 무용단 등의 상주지인 이곳은 이러한 유명 예술단체들의 공연장으로 제공될 뿐 아니라 자체 프로그램도 제작하고 여러 가지 비전통예술장르도 계발하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소양을 지닌 예술가들의 공연도 적극 유치하고있다.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늘 참신하고 활기 넘치는 현대 및 고전 예술이 펼쳐지며 국제적인 공연예술단체들과 창조적인 공동 작업들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문화부 장관의 관리 하에 오페라 하우스 기금에 의해 운영되고,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선정되었다.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은 소설이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로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설계자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을 따 ‘가르니에 극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식 명칭은 “국립음악무용아카데미”로 1669년 대본작가 피에르 페랭이 루이 14세로부터 오페라 상연을 허가받아 1671년 로베르 캉베르와 함께 왕립음악아카데미로 개장하였다.

창립 이후 여러 곳으로 극장을 옮기다가 1862년에 착공하여 1875년에 이르러서야 가르니에가 설계한 현재의 건물이 그랑 불바르거리 근처에 완공되었다.

이곳에서 장 밥티스트 륄리, 장 필립 라모,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오페라가 공연되어 프랑스 오페라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밖에 ‘빌헬름 텔’, ‘타이스’, ‘돈 카를로스’를 공연했으며, 오늘날까지 오페라 600편 이상, 발레 300편 이상을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인 베르사이유의 안에 있는 오페라 로얄은 그 사치스러움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벽면은 모두 목재로 되어 있지만 대리석처럼 칠을 해 놓았다. 너무 완벽하게 칠을 해 놓았기 때문에 목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리석 페이트는 금색과 핑크와 그린을 조화있게 처리해 놓았다. 무대는 마치 멀리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했다. 안즈 자크 가브리엘이 1769년에 완성했다. 왕세자(훗날 루이 16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리 앙뚜아네트(마리아 안토니아)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완성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이 극장은 여러가지 국가 행사에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특별 공연이나 갈라 공연이 간혹 개최된다.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 파리의 오페라 극장과 더불어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불리는 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은 음악의 도시 빈을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이다. 연 300회 이상의 공연을 상연하는 놀라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7~8월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대작 오페라와 발레가 무대에 올려진다. 웅장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기품 있는 건물은 1869년 5월 25일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Don Giovanni)를 개막작으로 문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에 걸쳐 정부, 시청, 시민들이 눈물겨운 협력을 한 보람으로 전쟁에서 재건되어 1955년 가을에 복구되어 개장하였다. 궁정가극장의 후신인 이 극장을 사랑하는 빈 시민의 희망에 따라 외관은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으며 외벽의 새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상당한 비용을 들여 고색창연한 옛 모습의 아취를 살려 옛 도시다운 우아함을 보였다. 그러나 시설은 최신식이며 객석의 3배나 되는 광대한 무대는 몇 개로 구분되어 짧은 시간에 자유롭게 움직여 장면 전환을 빨리 할 수 있도록 장치하였다. 객석은 2,200여개로 1층 뒤쪽에 입석이 있고 천장 객석에는 열렬한 팬들을 위해 악보를 볼 수 있도록 배려가 되어 있다.

19세기 말,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가 상임 지휘로 임명되어 단원들의 기량이 향상되었고 인기도 많아졌으며, 전 세계 유명 음악가들에게는 명성을 더하는 권위 있는 무대가 되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로린 마젤, 세이지 오자와 등 거장들이 이곳의 음악 감독을 역임했다.

작품의 시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통적인 연출 방식을 오랫동안 고수해왔으며, 놀라운 수준의 무대 기술이 특별한 규모의 공연을 가능케 하는 극장이기도 하다. 1883년 10월에 150만 달러를 들여 완성, 구노의 ‘파우스트’로 개관하여 유럽 오페라계의 최고의 존재가 되었고, 세계 최고의 명가수 카루소, 샤랴핀 등이 출연하였으며, 말러, 토스카니니 등 대가들이 지휘하였다. 또한 세계적인 오페라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 그라나 도스의 ‘고예스카스’ 등 많은 오페라가 이곳에서 초연됨으로 오페라계의 스타를 탄생시킨 메트로폴리탄 극장은 1966년 링컨 센터 건축과 함께 이전하면서 거의 4천 석에 달하는 대규모 극장으로 무대 기구에서 음악 효과까지 거의 가극장으로서의 중요한 것은 모두 최신 최고의 설비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메트(Met)'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 극장은 1931년에 최초로 오페라 공연을 라디오로 방송했고, 오페라 실황 TV방송을 처음으로 주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류의 성악가들을 통해 수준 높은 공연을 올리고 있으며, 내셔널 오페라 컴퍼니를 조직하여 미국인 오페라 가수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1973년부터 전속지휘자 제도가 폐지되고 음악 감독으로 대치되었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우수한 가수를 모아 매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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