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06 / 2014 (Day 18) Mansilla del camino -> Leon
레온으로 가는 길.
드디어 레온으로 향하는 길. 레온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친한 친구 알베르토는 레온에서 살았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 동네에 대한 극찬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는 진짜 풍경이 멋진 까미노는 레온부터라며 늘 엄지를 척 세웠다.
또 집 근처에 살던 친구인 이레네 누나는 폼페라다(Ponferrada)에 살고 있었는데, 까미노에 오면 강남스타일을 추며 폼페라다까지 와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이래저래 레온을 만나고, 레온부터 걷는 여정은 굉장히 익숙할 것 같다.
이른 아침 Mansilla를 벗어나며 동네 자체가 성벽에 둘러쌓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리를 지나는 곳이 해자였던 것이다. 많은 추억을 선사해 준 Mansilla 잘 있어라!
이날은 정말 쌀쌀했다. 평소의 아침온도가 아니라 잘못하면 감기 들 수도 있겠다고 몸이 반응하는 그런 날씨였다. 빨리 해가 뜨길 바랄 정도였으니까.
숙소를 먼저 나선건 나와 프란체스카였다. 프란체스카는 친구를 만나야했기에 일찍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기봉은 우리보다 한참 늦게 출발했다. 우리가 어제 아침 6시에 출발하는 걸로 알았는데 그 예상보다 더 먼저 갈 준비를 하고 있어 서운한 눈치길래
"걱정마 우리가 천천히 걷고 있을께 빨리 따라와"
라고 말하곤 숙소를 나왔다. 어차피 기봉이의 걸음은 꽤 빨라서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다.
길을 걸으며 어제 우리에게 일용할 브라질 음식을 나눠주었던 유쾌한 브라질 신부들과 크리스티앙 아저씨를 마주쳤다. 아저씨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걷는다. 앞서가면 아저씨들이 "에헤~~" 볼멘소리를 하고, 뒤쳐지면 "먼저 간다~ "하고 약올리는 통에 은근 까미노 레이스를 펼치게 된다.
조금 걷다가 나오는 Puente Villarente 라는 마을은 레온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다.
집 앞에는 이렇게 책을 읽게 비치되어 있는 곳이 있고, 커피향이 퍼져나오는 바도 많았다. 어제 우리가 묵었던 Mansilla보다 여기까지 와서 묵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꽤 많은 순례자들이 이 동네에서 출발하는게 보였다.
마침 그 무리에서 어제 만났던 자메이카 출신 미국인 신부님을 우연히 마주쳤다. 아저씨는 이 마을에서 묵으시고 오늘 레온까지 가서 집으로 돌아가실 모양이다.
기왕 큰 마을에 왔으니 기봉이 좀 기다릴겸 프란체스카에게 까페콘레체나 먹고 갈까? 제안했다. 하지만 지금 막 몸이 풀렸는데 레온 5km 전에 작은 마을이 있으니 그곳에서 마시자고 하길래 계속 걷는다.
아무래도 이녀석, 레온에서 만날 친구 때문에 조금 서두르는 것 같다.
마을을 지나니 어느새 해가 둥그렇게 떠서, 아침 특유의 햇볕이 뒷통수를 강렬히 강렬히 때린다. 천천히 걸으면서 오래간만에 내가 좋아하는 COLDPLAY 노래를 듣는다. 이 노래를 감상하며 걸을때면 내가 되게 웅장한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것 같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예전에 스코틀랜드를 2주간 트래킹 했을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아침에 들으면 힘이 난다.
시골길을 굽이굽이지나고 언덕을 내려갔다 올라왔다를 반복하며 야무지고 열심히 걷는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올라~부엔까미노"를 주고받으며 힘차게 걷는다.
그리고 마침내 카페콘레체를 마실만한 마을에 들어섰다. 너무 열심히 걸어 프란체스카보다 빨리 도착했기에 마을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네를 한국에서 타던것처럼 좀 기교있게(?) 타다보니 프란체스카는 멀리서 걸어오면서 그게 나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단다. 심지어는 내가 그네 타는 모습이 신기해 사진을 찍어가는 순례자도 있었다. 사진을 찰깍 찍으면서 하는 소리가
"놀라운 걸 만나는게 역시 까미노의 묘미죠!" 란다.
이쯤되면 한창 인기를 끌었던 가디건 터번 시즌 2인가?
아마 비슷한 시기에 까미노를 걸었던 순례자들의 카메라에는 가디건으로 터번만들어 쓰고다니던 내 모습과 가방메고 타는 그네사진 하나씩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프란체스카를 만나고 뒤이어 토마스도 만났다. 하지만 토마스는 레온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했고, 우리 둘은 이제 막 연 것 같은 동네 까페에서 까페콘레체와 츄러스를 마셨다. 아 너무나 맛있는 것! 심지어 츄러스는 커피를 마시면 딸려온다.
속을 든든히 채우고 다시 천천히 걷는다. 원래 속도였으면 기봉이가 따라 잡고도 남았을텐데 이녀석 분명 딴짓거리를 하고 잇는게 틀림없다.
이제 레온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좀 더 속도를 내서 일찍 도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냥 걸으면 심심하니까 프란체스카아 게임 그리고 문과(?)에 대한 취업상황(왜 이런것까지 얘기했는지 모르겠네)을 하며 걷는다.
그러다 한 순례자가 데리고 다니는 귀요미 멍멍이 한마리를 만나기도 하고
계속 걷다가 이제 레온이 코앞임을 알려주는 귀요미 표지판도 만났다.
도시에 진입하기에 앞서 이런 철골다리를 지나면
큰 도시가 눈 앞에 펼쳐진다.
"대체 레온은 어딨는거야? 레온 대성당이 그렇게 크다면서 저기엔 보이지도 않는데.. 여기 레온 맞아?"
그렇게 농담조로 옥신각신하며 걷는다. 예전에 1유로를 넣으면 성당에 있는 부조들에 조명이 켜서 볼 수 있던 시스템이 생각나서
"혹시 1유로를 땅에 던지면 성당이 밑에서 튀어나오지 않을까?"
라고 받아친다. 이런 아재개그에도 우린 배터지게 웃으면서 걷는다.
성당은 언덕에 가려져 언덕을 내려오니 딱 눈에 들어왔다. 큰 도시는 늘 그렇듯이 재미없는 아스팔트 길 초입을 걸어야 한다. 예전 Fromista 마을이 생각날 정도로 끝없는 아스팔트길이다. 도착하면 반드시 아이스크림을 사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날짜를 확인해보니 '일요일'이다. 생각해보니 꼭 대도시에 도착하면 늘 일요일이었네.. 당췌 마트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일요일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아스팔트길을 지나니 구시가지로 들어왔다. 이제야 뭔가 레온에 들어온 느낌이다. 하지만 골목과 길이 너무 헤깔리게 구성되어 있어 10분을 헤매인다. Municipal (공식)이름을 가진 알베르게가 두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보이는 한 건물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곳이 알베르게인걸 알아차렸다.
도착하니 기봉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와있었다.
"뭐야 너 우리 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마도 우리가 까페콘레체 마실 때 앞질러 간 것 같다. (역시)
기봉이에게 토마스를 봤냐고 물으니 토마스는 레온에 일찍 도착해서 다음 마을까지 먼저 이동하기로 했다고 했다. 보통은 레온 대성당을 돌아보기 위해서 하루를 꼭 여기서 머무는데, 아마도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다.(토마스는 독일사람이고, 적십자에서 일하는데 보통 3주 이상을 휴가로 붙여쓸 수 있다고 했다)
알베르게 줄을 쭉 살펴보니 익숙한 얼굴도 보인다. 우리가 알베르게를 찾아 해메일때 길을 물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알베르게가 두개라고 착각한 우리는 "우리가 머물 알베르게는 다른건가봐요~"하고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았는데 결국 다 같은 곳을 찾고 있었다. 에고 쪽팔린 것.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 알베르게를 배정받았다. 배정받고 보니 그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특히 와인샘에서 한 번 뵙고 거의 열흘만에 보는 이탈리아인 귀도 아저씨도 허허 거리면서 계셨다.
간만에 아는 얼굴이 많아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