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 - 소녀를 성장시키는 판타지

"내가 지난 3월 '시간'과 다투는 바람에 이 티 파티(Tea party) 안에 갇혀 버렸어."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모자 장수가 처음 만난 앨리스에게 한 말이다. 온갖 판타지로 가득 찬 원더랜드에서는 지극히 추상적인 '시간'마저도(단편적이나마) 하나의 캐릭터로 규정된 셈이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의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이 구절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졌다.

영화는 선장으로서 3년간 온 세계 바다를 누빈 앨리스(미아 와시코브스카 분)가 런던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한 연회장을 찾은 앨리스는 우연히 거울을 통해 원더랜드에 가고, 그곳에서 모자 장수(조니 뎁 분)와 오랜만에 재회한다. 하지만 모자 장수는 과거 부모를 잃은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뿐 앨리스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이에 앨리스는 모자 장수를 위해 과거를 바꾸기로 하고, 시간여행을 하게 해주는 '크로노스피어'를 빌리기 위해 시간(사챠 바론 코헨)을 찾아간다.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전작에 이어 '판타지'라는 거울을 통해 소녀 앨리스의 성장 서사를 큼지막하게 다룬다. 재능과 무관하게 '여자인 주제에'운운하며 앨리스를 억압하는 현실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앨리스는 원더랜드의 반가운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친구를 위해 '시간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위험을 감수하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혼란을 외면하는 대신 맨 앞에 나서 여기에 맞선다. 그렇게 자신이 만든 문제를 스스로 바로잡는 동안 앨리스는 다시 한 번 성장한다. 소녀에서 여자로, '친구'에서 '영웅'으로.

앨리스의 시간여행을 다루는 와중에 '가족'에 방점을 찍는 중후반부 에피소드들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버지를 따라 모자를 만들었지만 인정받지 못했던 모자 장수. 여기에 원더랜드의 첫째 공주였지만 동생과의 일을 계기로 여왕 자리를 잃은 붉은여왕(헬레나 본햄 카터 분)까지. 영화는 앨리스의 시선을 통해 이들의 과거를 찬찬히 훑는다. 이들이 상처받은 과거를 마주하고, 오해와 애증을 넘어 결국 가족과 화해에 이르는 과정은 훈훈한 감동을 자아낸다.

차가운 인상, 검은 옷을 입은 남자로 묘사되는 시간. 그리고 그가 사는 시간의 성에 대한 묘사는 흥미롭다. 여기에 작고 귀여운 '초'가 모여 '분'이 되고 이들로 인해 '절대시계'가 돌아간다는 설정, 앨리스를 쫓아 과거로 간 시간이 모자 장수 일행을 '티 파티 1분 전'에 가두는 장면 등에서는 제작자 팀 버튼 특유의 천진난만한 판타지 감성이 느껴진다. 특히 압도적인 장면은 앨리스가 크로노스피어를 타고 거대한 시간의 파도를 헤쳐가는 시간여행 신이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건 앨리스가 해적의 공격과 폭풍우 속에서도 배를 지켜내는 영화의 첫 시퀀스와 맞물리며 시너지를 발휘되는 시너지 덕분이기도 하다.

"꿈은 현실이 아니니까."

영화 말미, 앨리스는 원더랜드 친구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우린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며 이렇게 말한다. 이에 모자 장수는 "뭐가 꿈이고 뭐가 현실인데?"라며 의미심장하게 되묻는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앨리스가 원더랜드에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분명한 건, 꿈속에서 겪은 앨리스의 모험이 현실의 그를 성장하게 만들 거란 점이다. 때론 야속할지언정 시간 덕분에 '삶'이란 선물을 준다는 것. 그리고 과거는 사라지지 않은 채 현재의 자양분으로 남는다는 사실까지. 현실 세계로 돌아온 앨리스가 선장 복을 입고 늠름하게 항해에 나서는 모습을 통해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다. 2016년 9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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