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벗겨라

부르키니 때문에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이미 프랑스에는 1989년에 Creil 사건(참조 1) 때문에 공공시설 내 히잡 착용이 금지된 바 있었다. 그런데 그 이전, 1950년대에도 비슷한 일이 “알제리”에서 있었다. 이거 상당히 미묘한 느낌이 드는 사건인데, 세상 만사가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보통 알제리 전쟁, 하면 제국주의 프랑스의 악마 이미지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FLN(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과 차별은 잊혀진 채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역사 기술을 바꿀 의도는 없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그게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실 알제리 문제는 프랑스가 제3공화국 시절 드디어 “공화국” 체제를 그럭저럭 갖춰나갈 때부터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다름 아닌 여성투표권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서프라젯(참조 2) 때문에 투표권, 하면 20세기 초반 영국 여자들의 폭력만 생각하기 십상인데, 그들만 있지는 않았다. 프랑스의 서프라젯(?) 얘기를 잠시 하겠다.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 때부터도 여자들이 기세가 등등했기 때문에 19세기 내내 투표권에 대한 얘기가 끊이지를 않았지만 여자 지식인들 스스로도 “좀…”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시골에서 몰표가 나왔던 루이 나폴레옹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게다가 19세기 내내 프랑스의 화두가 “세속주의”와 “공화국”이었음을 아셔야 한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성향상(?) 가톨릭 계 정당, 즉 왕당파로 투표할 성향이 높다는 우려 때문에 “좀…”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왕당파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정말 좌빨(!?)이었던 인민전선의 1936년 레옹 블룸 정부도 여성 투표권은 “보류” 상태로 놔뒀다. 무작정 여성 투표권이 늦었다고 뭐라 할 건 아니라는 의미다. 영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Deus ex machina 역할을 했다면, 프랑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그 역할이었다. 1944년부터 인정했으니 말이다.

다시 알제리로 돌아가 보자. 이론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알제리는 프랑스 땅이었고, 크게 세 개의 “도(département)”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연히 대표를 선출해서 의회에 보낼 수 있었는데, 당시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프랑스계 주민들은 투표를 반대했다. 수적으로 밀리니 아랍/베르베르계가 의회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무엇을 주장했느냐? 결혼과 상속, 가족 관계에 있어서 “부인들”이 “남편들”에게 독립적이어야, 이슬람법(샤리아)이 아닌 프랑스 민법(가족법)을 받아들여야 투표권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게 또 식민정부에 그대로 반영됐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 히잡/베일을 벗어야 했다!

드디어 등장했다. 프랑스가 1944년부터 여성 투표권을 인정하면서 알제리도 1947년부터 법적으로는 여자들이 투표권을 갖게 됐지만, 베일을 벗어서 민법(가족법)을 받아들여야만 했기 때문에 투표권을 가진 여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자, 문제는 위에서도 언급했던 FLN의 등장이다. 처음에는 “프랑스”와 “이슬람”이라는 두 개의 제국주의를 비난하며 알제리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단체도 있었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 전선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즉, 프랑스 여자들”처럼” 권리를 갖기 주장하는 알제리 여권 운동은 잠시 접고, FLN과 나란히 프랑스에 맞서 싸워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여기에 대해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수도의 광장(Forum)에서 베일을 벗어서 불태우는 퍼포먼스까지 하는 등, 특히 교육 받은 도시의 아랍/베르베르 여자들에게 세속주의를 강조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들 알고 계시다. FLN이 승리했다.

FLN은 베일을 벗게 하려 했던 프랑스가 이슬람 전통을, 그러니까 알제리의 전통을 없애려 든다 했고, 인구의 절대 다수인 시골에서는 그 주장이 먹혔었다. 1959년 알제리 적용을 강행했던 가족법도 결국 실행되지 못 했다. 민족주의가 결국은 승리했다. 그 시대에서야 그게 조류였지만 말이다.

독립 후 FLN은 (물론) 여자들을 다시 집 안으로, 베일 안으로 집어 넣었고 1당 독재 체제를 수립한다. 1959년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세웠던 가족법을 1986년에 드디어 채택하기는 했지만, 샤리아(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통보, 강제(에 가까운) 혼인 등)가 가족법에 섞여 들어갔다.

이런 역사가 있으니, 히잡을 벗기는 행위를 단순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지금은 옳고 그때는 틀릴까? 지금도 옳고 그때도 옳을까? 둘 다 옳을까, 아니면 둘 다 틀릴까?

----------

참조

1. 여성 무슬림 패션(2016년 4월 4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4016515974831

2. Elements of beauty(2016년 1월 17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799152994831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