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를 막은 인터넷

사실 1991년 소련의 마지막 시도였던 쿠데타(Августовский путч)의 이미지는, 탱크에 올라 타 연설을 하는 옐친의 모습 밖에 없다. 잠깐, 타임라인을 보면 이러하다.

8월 19일, 고르바쵸프가 크림 반도(!)로 휴가를 간 사이, 그는 크림 반도에서 억류되고, KGB가 이끄는 공산당 강경파와 군부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옐친이 화이트하우스(Белый дом России)로 들어간다. 여기가 바로 의회 의사당이었는데, 모스크바 시민들이 여기에 운집하고 바리케이드를 쌓기 시작한다.

8월 20일, 화이트하우스를 치냐 마냐로 군부가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이, 사람들은 더 모여들었고, 옐친 쪽인 코베츠 장군(Константин Иванович Кобец)이 화이트하우스 방어를 지휘하기 시작한다. 알파와 빔펠 특수부대는 화이트하우스행을 망설였다.

8월 21일, 결국 특수부대는 화이트하우스행을 포기했고, 쿠데타 군은 모스크바를 떠나기 시작한다. 고르바쵸프가 모스크바로 복귀하지만 며칠 후, 그는 밀려나고 소련 해체가 시작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모스크바 시민이 화이트하우스 앞으로 운집하고 어떻게 해서 서방 언론이 쿠데타를 금세 알아차렸을까? 그들 뒤에는 러시아 인터넷의 개척자들이 있었다. BSD 기반, 소련의 유사 유닉스(!) 시스템이었던 데모스(ДЕМОС)를 쿠르차토프(Курчатов) 연구소(이를테면 소련의 MIT? 본업은 원자력 연구소)에서 만든 후, 소련은 내부적으로 네트워크 망을 건설했었다.

이 소련의 내부 네트워크 망이 렐콤(РЕЛКОМ)이다. 쿠르차토프의 인재들은 렐콤을 소련 내부망으로만 만족해 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 전화선에 의존하는 네트워크망을 1991년 헬싱키 대학과 연결 시켰다! 소련이 최초로 서방과 연결됐던 해이다. “공식” 서버는 연구소에 있던 IBM PC 386. 모뎀은 9600bps 짜리였다. 그런데…

모스크바 강안에 “비공식” 백업 서버가 하나, 안가(?)에 있었다. 바로 이 안가에 데모스 팀이 밤낮을 가리잖고 작업중이었다. 그런데 쿠데타가 일어났던 8월 19일은 모스크바에서 컴퓨터 박람회가 열리던 때였다. 급하게 데모스/렐콤 프로그래머들을 모두 안가로 모은 후, 이들은 전화선 연결에만 신경쓰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옐친 쪽에서 보냈다는 한 사람이 데모스 빌딩의 문을 두드렸다. 그가 데모스가 뭐하는 곳인지 알고 온 게 아니었다. 그저 옐친의 발표문을 복사할 복사기가 안에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데모스 팀은 자기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며, 네트워크 망을 통해 퍼뜨리면 된다고 오히려 그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는 그냥 되돌아갔다.

하지만 잠시 후 다른 사람이 또 문을 두들긴다. 그는 코베츠 장군이 보낸 인물이었다. 그는 좀 달랐다. 코베츠가 원래 소련 군부 내에서 통신 특기였기 때문에 그는 통신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데모스팀은 렐콤 네트워크망을 통해 옐친의 발표문을 뿌리기 시작했다.

이때가 1991년임을 기억하셔야 한다. 마크 앤드리슨이 모자이크 웹브라우저를 만들었던 때는 1993년이었다. 이때의 네트워크는 뉴스그룹과 고퍼가 고작이었다. 지금 세대는 잘 모르실 텐데, 그냥 텍스트 밖에 없는 게시판을 생각하시면 되겠다. 유즈넷 그룹, talk.politics.soviet 는 곧 이들이 알리는 쿠데타 소식으로 가득찼다.

그런데 8월 20일, CNN이 특파원 보도에서 렐콤을 언급하는 참사(?)가 일어난다. 이제 쿠데타 군이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쿠데타 군은 다행히도(!) 무식했다. KGB가 나서기는 했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만 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데모스 팀의 여자 프로그래머가 미국으로 이메일을 보낸다. 모든 방송통신망이 막혔지만 인터넷만은 살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Dominguez Hills)의 래리 프레스 컴퓨터학과 교수는 서로의 뉴스를 교환했다. 데모스 팀은 계속 소식을 알리고, 소련 내로 또 소식을 전파했다. 어차피 버린 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은 글라스노스트를 지키고 싶었다. 그들은 군대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만 배치됐다는 사실도 알아냈고, 또 군의 움직임을 소련과 전세계에 알렸다.

쿠데타 기간 동안 세상은 소련 내 이들과의 인터넷 통신에 의존했었다는 의미다. 프로그래머들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고, 누구의 결재도 받지 않았다. 그냥 했다. 겨우 얻어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다. 참고로 이 기사는 위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하나인 알렉세이 솔다토프의 아들이 공동 저자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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