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지방대시간강사다

대리사회(18) 강태공과 허생의 아내에게. 강태공은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낚시꾼이다. 낚시터에서의 선문답을 통해 관직을 얻은 그는 폭군 주왕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웠고, 제나라의 제후가 되어 화려하게 고향 땅을 밟았다. 그는 바늘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 시대를 들어 올렸다. 그러한 스토리텔링에 더해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일화가 있다. ‘복수불반분’, 그는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강태공은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집안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책을 읽었다. 그가 공부에 매진하는 동안 아내는 홀로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느 날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큰 비가 왔지만 강태공은 여전히 책만 읽었다. 집에 도착한 아내는 마당에 널어둔 곡식이 모두 떠내려 간 것을 보았다. 가난한 그들에게 그 곡식이 어떤 의미였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강태공의 아내는 결별을 선택한다. 강태공이 만류했지만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집에서 나온다.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허생전’의 허생 역시 강태공과 닮았다. 허생전에는 “허생은 글 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고 적혀 있다. 아내가 글을 읽어 무엇하느냐며 도둑질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허생은 “아깝다. 내가 당초 글 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칠 년인걸...”하고는 책을 덮는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아는 허생의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강태공의 아내를 ‘악처’로, 허생의 아내를 철없는 인물로 기억한다. 남편을 끝까지 내조하지 않고 도망쳤고, 배고픔과 같은 사소한 욕구를 이기지 못해 남편의 앞길을 막았다고 비난한다. 말하자면 아내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태공은 아내에 대한 원한이 깊었다. 제후가 된 자신을 찾아온 아내의 앞에 물 한 동이를 쏟아 붓고는 그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가 얼마나 아내를 원망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부부는/가족은 한 동이의 물을 함께 지고 버티는 존재다. 하지만 강태공도 허생도 물동이를 지려고 하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면 그것을 내려놓게 해 주겠다면서 그 역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홀로 위태롭게 지고 있던 한 여인은, 결국 그것을 놓아버렸다. 물을 쏟은 책임은 자신의 역할을 외면한 이들에게도 있다. 그러나 강태공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대신 아내를 원망했다. 허생 역시 아내에게 7년 동안 홀로 물동이를 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아내에게 자신의 ‘대리인간’이 되기를 강요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동안 나는 아내를 강태공과 허생의 아내로 만들었다. 강태공이 그랬듯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는 주문을 외웠고, 허생처럼 몇 년이라는 시간을 벼슬처럼 정해 두기도 했다. 내 주변의 연구자들도 대개 나와 같았다. ‘학자’, ‘지식인’이 되려는 이들은 그렇게 몇 백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조금도 진화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가혹하다. 하지만 그것을 숙명이나 하나의 ‘로망’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문제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가 나의 주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공부하는 사람을 잘 내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제가 잘할게요, 라고 했고 그것으로 결혼할 자격을 부여 받았다. 질문한 사람들은 만족했고 나 역시 곁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제대로 된 삶의 방식이 아니다. 그러한 희생이 ‘내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숙명처럼 강요된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어쩌면 그때의 나를 비롯해 강태공과 허생은 자신들이 홀로 물동이를 지고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고 아내는 그 보조적 역할을 한다고 믿는 것이다. ‘내조’라는 단어에는 그러한 ‘보조’의 의미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그러면 그들이 아내에게 보인 태도들이 대부분 설명된다. 지난 7월에는 아내의 권유에 따라 파주에 6평짜리 작업실을 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는 분의 후의로 망원역 근처에 글을 쓸 공간을 얻어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가족과는 떨어져 지낸다. 그러니까, 대학에 있을 때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다시 한 번 내 역할에서 도망쳐 나왔다. 글쓰기와 대리운전으로 번 돈을 꼬박 생활비로 부치고는 있지만, 그것은 내가 맡아야 할 여러 역할 중 일부이고 가장 간편한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강태공처럼 한 시대를 들어올리거나 허생처럼 국가를 움직일 만한 자신이 없다. ‘대리사회’가 어떠한 의미를 가진 책이 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대리사회라는 글을 쓰는 한 사람의 빈자리를 대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역설에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이 크다. 고작 그것이 나를 대신해 물동이를 받치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염치다. 삶의 무게는 힘겹지만, 어떻게든 그 누구도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아내도 나도 잘 버텨내기를 바란다. 어서 돌아가 물동이의 가장 무거운 부분을 내가 받치고 싶다. 서로를 삶의 주체로 두는 가운데 글쓰기도 그 무엇도 계속 해 나가고 싶다. * 사진은 고우영 화백의 ‘십팔사략’에서 부분인용한 것인데 “어떠한 경우에도 이혼은 하지 말라는 교훈일 것이다.”라는 해석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편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관계는 유지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민섭 #대리사회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8801 * 위의 스토리펀딩 링크에서 10월에 출간될 ‘대리사회’ 단행본을 사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제가 계속 글을 쓰는, 그리고 계속 쓰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책을 구매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펀딩을 통해 책을 구매하신 분의 성함은 출간될 단행본에 각인하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출처 : 나는지방대시간강사다 https://www.facebook.com/3091201lin/ ●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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