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1990년대 미국에서 소위 가장 잘나가던 기업이 있습니다. 1985년 설립 이후 2001년까지 16년 동안 ‘1700% 성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성과가 대단했죠.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버드, MIT 등 미국 최고 명문대학 MBA 출신들의 인재들이 앞 다퉈 들어가려고 했던 회사이기도 했죠. 현재의 애플이나 구글보다도 당시 미국인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회사 이름이 뭐냐고요. 놀랍게도 미국 에너지 업계를 한 때 대표했던 엔론입니다. 세계적인 회계부정으로 한순간에 몰락했던 그 업체 말이죠. 이 회사는 무려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며 2001년 한순간에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뽑히자마자 망했으니 미국인들에게는 9·11테러 못지않은 충격을 줬죠. 보통 우리가 엔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수조원대의 회계부정 스캔들이 일어났는데도 이를 묵인할 정도로 직원들의 윤리의식이 부족해 잘나가는 회사가 무너졌다’는 설명에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엔론과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직원 윤리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쯤에서 뭔가 궁금하지 않나요. 당시 잘나가던 다른 회사들과 달리 왜 유독 엔론 직원들만 윤리의식이 부족했을까요. 당시 영국 신문 데일리텔레그래프가 지적했듯이 엔론에서는 왜 사내 불륜이 만연했고 고위 임원들의 이혼이 전염병처럼 유행했을까요. 윤리의식이 부족한 사람만 골라서 뽑은 듯이 말이죠.

이에 대한 재미난 해석이 있습니다. 벨기에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라는 책에서 엔론의 이같은 윤리의식 추락은 ‘등수 매겨 내쫓기(Rank and Yank appraisal system)’ 모델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최고의 생산성을 올린 직원에게 보너스를 몰아주고 생산성이 제일 낮은 10%의 직원은 해고하는 방식의 인사정책을 뜻합니다. 특히 해고하기 전에 공개적으로 모욕까지 주죠. 이름, 사진,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기업 사이트에 공개합니다. 한마디로 성과가 낮은 직원은 직접 해고하지 않아도 모욕을 참지 못하고 나가게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비인간적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회사 성과를 높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엔론의 경우에는 ‘등수 매겨 내쫓기’가 도입된 이후 재미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하위 10%에 포함되지 않으려는 직원들의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죠. 더 열심히 일했냐고요. 물론 그런 직원들도 있었지만 자칫 미국 최고의 기업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공포가 직원들을 지배했습니다. 꼼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친 것이죠. 따라서 이 제도가 도입된 후 5년도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직원들이 실적 조작에 나섭니다. 성과 수치를 실제보다 높게 앞 다퉈 보고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가 없었냐고요. 감사마저도 자신들의 실적을 조작했습니다. 자신들이 열심히 감사한 덕분에 부정은 없다고 보고한 거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습니다. 이런 대규모 사기극은 어떻게 됐을까요. 수조원대의 회계부정으로 확대됐고 결국 회사는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등수 매겨 내쫓기라는 지나친 성과중심의 경영이 직원들의 윤리의식을 마비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막연하게만 알았던 엔론 사태가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나요. 단순히 직원들이 비양심적이어서 윤리의식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등수 매겨 내쫓기 시스템이 직원들의 윤리의식 부족을 부추겼다는 설명입니다.

문제는 많은 기업들이 엔론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직도 등급을 매겨 직원들을 내쫓으려는 시도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국내에서는 성과연봉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금융노조가 성과연봉제 폐지를 위해 23일 ‘10만 금융노동자 9.23 총파업’이 열었고 서울 지하철 양대노조도 성과연봉제 도입 철회를 요구하며 27일 오전 9시10분부터 파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28일에는 51개 의료기관이 소속된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성과연봉제 철회를 목적으로 한 파업은 ‘목적상 부당’하다며 강경 대응할 방침입니다. 또 언론들은 ‘명분없는 노동계 추투에 몸살앓는 한국경제’(매일경제) ‘맥없이 끝난 금융 파업, 귀족노조 투쟁시대는 갔다’(동아일보) ‘일 많이 한 사람 몫 가로채자는 성과급 반대투쟁’(한국경제) 등 성과연봉제에 노조들이 억지반대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과연봉제가 뭘까요. 성과연봉제는 개인과 팀이 달성한 실적과 연계해 급여, 승진과 같은 보상을 제공하는 인사 체계를 말합니다. 근무 기간, 직급 등에 따라 보상하는 연공서열제와는 달리 개인의 업무 기여도와 역량이 평가의 주된 척도가 되는 특징입니다. 엔론의 인사제도와 무척 유사하죠.

정부와 기업, 언론들은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보상을 받기 위해서 개인이 자발적으로 일한다고 강조합니다. 성과 수준에 따라 금전 등 보상을 차등 지급하면 직원들이 이를 의식해 자발적으로 경쟁한다는 논리죠. 일한 만큼 벌어갈 수 있고 업무 성과가 떨어지는 사람은 적은 임금을 받아간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과주의가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일하지 않고 보수만 챙기는 이른바 무임승차자를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자세한 내용은 국내 최고의 경제 팟캐스트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http://www.podbbang.com/ch/9344)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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