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꼬질꼬질한 날 – 시시한 여행

몸도 마음도 꼬질꼬질해지는 주말. 이런 날엔 뜨끈한 열탕에 몸을 지지는 게 최고. 1호선 전철을 쭉 타고 가면 나오는 온양온천에 갔다. 그리고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의 맛. 크~

가자! 온천으로 아무런 약속 없이 맞은 일요일 오전. 이불에 파묻혀 인스타그램을 훑어보다가 문득, 다들 엄청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만 빼고). 친한 친구는 얼마 전 에어프랑스 기내식 사진을 올렸다. 에펠탑 앞에 돗자리를 펼치고, 노천카페에서 토마토 파스타를 먹는 사진이 실시간으로 떴다.

나도 떠나고 싶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하는데…. 맨날 보는 풍경이라도 여행지에선 새롭다. 같은 밀로 만든 빵이라도 파리바게트에서 먹는 빵보다는 파리에서 먹는 빵이 맛있는 건 당연하지. 그렇다. 여행의 좋은 점은 지금 당장 100가지라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훌쩍 떠나기가 어디 쉽나? 뉴욕이나 로마 얘기는 많이 들어서 우리 옆 동네 같지만, 버스비로는 어림도 없고 30분 만에 갈 수 도 없다.

하지만 마음을 약간 달리 먹으면, 우리 동네도 누군가에게 근사한 여행지가 될지도 모른다. LA에 사는 제니퍼에겐, 한국의 어느 작은 마을이야말로 살면서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로망 여행지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하여 일요일 오전,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일으켜 어디로든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은 개운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때를 밀어야겠다는 생각이 그 다음이었다.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싶다. 지금까지는 안 가봤던 물 좋은 목욕탕에서…. 전철 시간을 찾아보니 가는 데 2시간 30 분쯤 걸린다. 다만 구로역에서 ‘천안급행’을 타면 20분 정도 아낄 수 있다.

사이다랑 반숙 계란을 사 들고 전철을 탔다. 구로역부터 안양역이나 수원역까지는 아파트가 보이는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조금 더 갈수록 차창 풍경이 달라졌다. 푸릇푸릇한 논이 보였다. 한숨 자고 났는데도 아직 평택역.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탄 기분으로, 사람 없는 전철에서 느긋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온양온천역에 도착. 5분 정도 걸었더니 ‘신천탕’이 보였다. 입장료 7000원짜리 대중목욕탕인데, 지하 온천수를 끌어다 쓰고 시설이 괜찮단다.

목욕탕에서 낮잠을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왼쪽에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바닥에 누워 있다. 어떤 사람은 팔과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하게 잔다. 또 다른 사람은 엎드린 채 등에 부항을 꽂고 있다. 여기는 찜질방이 아니니까 옷을 걸치고 있을 리 없다. 목욕탕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낮잠이 라니. 대담하다. 박력이나 패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다른 이들이 볼까봐 문 쪽을 힐끔거리지도 않는다. 옆에서는 때가 날아다니고, 아기들은 우는데도 말이다. 세상 여유로운 아주머니들을 보며, ‘그래, 한민족은 이렇게 느긋함을 즐기는 민족이었지~’ 라는 깨달음이 새삼 온다.

나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누웠다. 바닥이 뜨끈하다. 목욕탕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에 안구는 촉촉해지고, 시야가 몽롱해진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조급했던가. 목욕탕 바닥에 누워 있으면 세상 복잡할 게 없는데. 모락모락 안개 속에서 자기만 하면 된다.

(돌려서 보세요)

나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누웠다. 바닥이 뜨끈하다. 목욕탕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에 안구는 촉촉해지고, 시야가 몽롱해진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조급했던가. 목욕탕 바닥에 누워 있으면 세상 복잡할 게 없는데. 모락모락 안개 속에서 자기만 하면 된다.

* 여탕에는 넓직한 온탕이 있다. 가로 4~5m, 세로 2~3m쯤 되어 보이는 커다란 탕이다. 탕의 끝 둥그 런 부분에 앉아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과장 을 좀 보태면 휴양지 리조트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바다를 구경하는 기분.

(‘신천탕’ 앞 ‘형제서점’. 시간이 널널하면 둘러보기에 좋다.)

걷다가 발견한 냉면집의 양꼬치

전철을 타고 온천에 온 이유는 얼마 전 읽은 책 『낮의 목욕탕과 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쓴 일본 작가는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로, 북적거리지 않는 낮에 목욕탕에서 몸을 불리는 취미가 있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나온 다음엔 맥주에 꼬치를 곁들이는데, 읽다가 그만 영업을 당하고 말았다.

이 사람 말에 따르면, 진짜 맛있는 맥주는 카스도 아사히도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바로 뜨끈한 온탕에서 몸을 불렸다가 목욕 뒤에 마시는 맥주! 목욕탕 근처엔 맥줏집이 보이질 않아서, 편의점에서 아사히 캔맥주를 사서 나왔다. 혼자 마시면 멋있을 줄 알았는데, 편의점 앞 벤치에서 비둘기 떼가 구구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마시면 처량해 보이겠다.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연길냉면’이라는 꼬치집이 나왔다. 냉면집에서 양꼬치라니…. 우선은 가보자! 냉면집에 도착했다. 동사무소와 초등학교를 지나 도착한 곳은 번화가가 아닌 조용한 동네. 이 작은 가게에 메뉴 가짓수가 어마어마하다. 양꼬치, 양갈비살, 큰소 힘줄, 큰심장, 콩팥, 염통줄기, 소 심장….

사실 나는 꼬치도 맥주도 덕후는 아니니까 큰 고민 없이 양꼬치에 칭따오를 시켰다. 흔한 조합이지만, 이미 검증된 정석을 택했다. 취기가 올랐다. 기대보다도 쫀득쫀득했고 맛있었다. 양고기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돼지고기. 내친김에 ‘어향육슬’과 칭따오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잘게 썬 돼지고기에 양파와 호박이 들어가서 느끼함을 잡아줬다.

돌아오는 전철 안. 쪼글 쪼글해진 손으로 호두과자를 뜯는 내 마음은, 출발 전보다도 느긋했다.

대학내일 조아라 에디터 ahrajo@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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