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모르는 그때 그 S.E.S

걸그룹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만한 이들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요정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지금도 요정으로 기억되는 S.E.S가 데뷔 20주년인 내년 다시 한 번 뭉친다. 이것은 유진을 로희 엄마로, 슈를 라둥이 엄마로, 바다를 '매드(MAD)'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소 낯설 그 때 그 시절 S.E.S의 이야기다.

# 알 사람은 다 아는 그 래퍼

1997년, S.E.S의 데뷔곡 '아임 유어 걸(I'm Your Girl)' 무대를 함께했던 이들이 있었다. 1세대 아이돌 팬이라면 다 아는 바로 그 두 명의 래퍼, 신화의 에릭과 앤디다. 랩을 담당했던 두 사람은 이듬해 '혜성처럼 전진하는 신화'로 정식 데뷔했다. I Like SES Ya'll!

# 벵골호랑이와 S.E.S의 상관관계

1999년 4월 11일, S.E.S의 공식 활동 중 전무후무한 행사가 진행됐다. 바로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호랑이 세 마리와 자매결연을 맺은 것. 아기 호랑이를 품에 안고 찍은 공식행사의 사진이 당시 유행했던 연예잡지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때 그 호랑이들은 잘 살고 있을까...

# 한류라는 말도 없던 그 시절

한류라는 단어도 없었던 그 시절, 1998년. 1집 앨범이 말 그대로 대박을 친 S.E.S는 일본 진출에 나섰다.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진출이었다. 프로모션 차 잠시 들러 한국곡을 부르는 것이 아닌 아예 일본어로 된, 현지 활동을 위한 곡으로 싱글을 발표하고 현지가수처럼 활동을 시도했던 것. 역시나 지금처럼 K팝 열풍이 있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고생 꽤 많이 했다.

일본활동시기에 지금도 팬들에게 명곡으로 꼽히는 노래들이 많이 탄생했다. '꿈을 모아서'의 원곡인 '유메오 카사네테', '어 송 포유(A Song For You)', '사랑이라는 이름의 용기'의 원곡 '아이토이우나노호코리' 등등. 신화의 'T.O.P'를 번안한 'T.O.P'도 들어보시라. 신화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 잭슨형 콘서트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서 콘서트를 했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대체로 30대이려나... 여하간 1999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라는 타이틀로 내한 콘서트가 열렸었다. 이때 한국 가수 중 누가 게스트로 서느냐 관심이 상당했는데, 당시 최고 인기 아이돌이었던 H.O.T.와 S.E.S가 한국 게스트로 참여하게 됐다.

마이클 잭슨의 공연에 게스트로 섰으니 엄청난 영광이긴 하다만, 후폭풍도 은근 심했다. 2곡 중 1곡을 립싱크를 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비판도 꽤 있었던 것이 당시 분위기. 지금처럼 아주 그럴싸하게 코러스가 잘 깔린(?) MR을 사용하는 시대였다면 조금은 달랐으려나.

# 왕방울머리끈과 루즈삭스

S.E.S 최고의 히트 아이템. 당시 10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왕방울 머리끈 하나는 가지고 있었다. 앞머리를 더듬이처럼 내려주는 건 선택사항. 여기에 조금 더 본격적(?)으로 접근하면 통굽운동화에 루즈삭스 정도 걸쳐줘야 패션의 완성. tvN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정은지 분)의 패션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바로 저거거든!

# 예나 지금이나 대학은 민감하지

사회적 이슈가 됐던 일도 있었다. 교육열 높은 한국에서 특히 더 예민한 바로 그 문제, 대학 입시다. 고려대 특수재능보유자 전형 수시모집에 합격한 유진과 자기추천자 전형으로 외대에 합격했던 슈, 한국에서 다녔던 외국인학교가 정식 고교 학력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로 뒤늦게 입학이 취소됐다. 입학취소 무효소송을 진행했지만 슈는 패소. 유진은 승소했다.

# 여성그룹 누적 앨범판매량 1위

지금은 '음원강자'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지만 그 시절 인기의 척도는 역시 음반판매량이었다. S.E.S는 1집 약 61만 장, 2집 약 65만 장, 3집 76만 장, 4집 약 63만 장, 5집 4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SBS '판타스틱 듀오' 참조). 활동 내내 라이벌이었던 핑클보다 더 높은 기록이었다(핑클 앨범 중 6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은 2집 뿐이다).

# 아찔한 사회면의 기억

1세대 아이돌 덕질, 참 거칠었다. S.E.S 팬들도 사회면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02년 2월 24일. T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 앞에서 생방송을 기다리던 중 현수막 문제로 S.E.S 팬과 god 팬이 시비가 붙어 4명이 입건됐다. 지금은 다들 사이 좋잖아요? 그렇잖아요?

# 가장 닮고 싶은 여자 가수 목소리

노래 실력은 데뷔와 동시에 이미 정평이 나있었다. 청아한 목소리로 시원하게 내질러주니 귀가 다 시원했던 그 시절 바다, 가장 닮고 싶은 목소리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2년 인터넷 조사 사이트 VIP가 2만 27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닮고 싶은 여자가수 목소리 설문에서 바다가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2위는 장나라, 3위는 김현정, 4위는 옥주현이었다.

역시나 오묘한 설문이 많았던 시절답게 참 다양한 설문조사에서 상위권에 오르곤 했는데, 유진은 강타와 함께 한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남녀 연예인 1위에 올랐고, 슈는 특이하게도 비키니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연예인 1위에 랭크되기도(2위는 전지현이었다. 무려 전지현!). 수학여행에 부르고 싶은 연예인 설문에서는 그룹으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 순위에서는 핑클이 1위였다.

# 2002년, 그 해 겨울

2002년 12월, 멤버 중 가장 먼저 유진의 계약 만료 소식이 공시에 떴다. 유진은 개인 활동을 위해 SM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S.E.S는 해체의 길로... 당시 유진 탈퇴 공시가 뜨자 SM주가가 급락하기도.

# 수산물 홍보대사?!

아마도 이름이 주는 신뢰 때문이었을까. 솔로로 나선 바다, 2003년 수산물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해양부 관계자는 당시 "바다가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되면 청소년층의 수산물 소비도 촉진될 것"이라고 말했다고(2003년 4월 24일 한국경제 기사 발췌). 그래서 수산물 소비는 촉진됐을까.

# 바다, 10억 원 목소리 보험 가입한 사연

솔로로 나선 후 바다는 10억 원에 달하는 목소리 보험에 가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다리보험 등 부위 별 보험을 드는 스타들이 있긴 했지만 가수 중 목소리 보험을, 그것도 이렇게 고가의 보험을 드는 경우는 흔치 않았으니 바다가 목소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포부는 좋았으나 보험이 유지되지는 못했다. 바다는 최근 '판타스틱 듀오'에서 "보험료가 너무 비싸 환급받았다"고 설명했다.

사진=S.E.S 2집 앨범 재킷, '비 에버 원더풀(Be ever wonderful)' 앨범재킷, '러브(LOVE)' 뮤직비디오 캡처, '응답하라 1997' 스틸, 바다 인스타그램

안이슬기자 drunken07@news-a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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