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탄 가족 순례자를 보다

- 가족순례자

어제의 눈보라는 물러가고 아침부터 햇살이 내리쬔다. 그러나 기온은 급강하, 순례길을 걸은 이래 가장 추운 것 같았다. 저 멀리 뒤에서 태양이 슬며시 떠오르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가 뿌옇게 투사되어 정겹기까지 하다. 시골의 싱그러운 풍경이 상쾌하다 못해 행복감에 젖게 만든다. 이른 새벽 아내와 함께 걷는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사오월의 메세타 평원은 더위로 힘들다는데 우리는 추위로 걷기조차 힘들다. 아내는 옷 속에 트레이닝복을 껴입었고, 나는 덕다운 파커를 재킷 안에 입었다. 순례 7일째 밤부터 추워지기 시작한 날씨가 좀처럼 올라가질 않는다.

하얀 서리가 증발되어 안개로 피어오른다. 카리온(Carrión de los Condes)에 들어서자 소박한 시골성당이 보였다. 그 앞으로 중세에서나 봄직한 가족 순례자들이 당나귀를 끌고 지나간다. 두 아이는 당나귀에 타고 있었고, 부모는 당나귀를 한 마리씩 끌고 있었다. 당나귀 잔등에 앉은 꼬마 아이가 코를 흘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천막과 솥 같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당나귀도 힘들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신에게 다가가는 여정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 추운 날 고행길도 마다하지 않았을까. 신이시여!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한 권의 책, 만 번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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