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가… ‘전직 조선일보 기자’로 살아가기①

Fact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이데올로기 사회다. ▲중도는 설 자리가 없다. 본인이 원하든 않든 간에 우리 사회는 두 패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항상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물으면서 어느 한 쪽에 서기를 강요한다. ▲사드 도입, 성장과 분배, 경제민주화, 근대사 논쟁 등 굵직한 논점의 복판에는 예외없이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양자택일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로봇이 인류를 대체하는 2016년 현재를 살면서도, 여전히 고리타분한 냉전 논리에 함몰돼 있는 우리. ▲이 안쓰러운 상황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 ‘전직 조선일보 기자’다. ▲좌-우 2가지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재단할 수 있을까? ▲1988년 수습 24기로 조선일보에 입사해, 18년간 근무한 김왕근 전 기자가 ‘전직 조선일보 기자로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연쇄 칼럼을 보내왔다. 1편을 소개한다.

View

나는 ‘전직(前職) 조선일보 기자’다. 나는 조선일보 ‘수습 24기’로 1988년 4월 7일 ‘신문의 날’에 조선일보에 입사했고, 2005년 말에 퇴사했다. 29세부터 46세까지 18년간의 청춘을 조선일보에 바쳤다. 혹은 조선일보가 나의 청춘을 책임져 줬다.

나의 조선일보 재직 때, 회사 안에는 ‘조선일보 맨’이란 말이 있었다. 그것이 자주, 광범위하게 쓰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누가 이런 용어를 쓸 때, 그것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나는 지금 ‘조선일보 맨’일까? ‘전직’ 조선일보 기자인 나는 더 이상 조선일보 맨이 아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의 관련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나는 조선일보 맨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퇴직한 이후 한 동안 나는 조선일보 기자도 아니면서 조선일보 안에서 몰래 근무하고 있는, 참으로 거북하고 난처한 상황에 처한 꿈을 꾸곤 했다. 기자 시절, 회사 밖에선 ‘삼성 맨’이란 말도 들렸던 걸로 기억한다. ‘현대 맨’, ‘SK맨’이란 말은 듣지 못했는데, 이런 회사들 안에서 이런 용어들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쓰였지만 밖에까지 전해지지 않았는지 나는 모른다. ‘동아일보 맨’, ‘중앙일보 맨’ 등의 단어가 있었는지, 요즘도 ‘조선일보 맨’이란 용어가 쓰이는지도 나는 모른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퇴직한 후에 조선일보를 변론한다. 반면에 (당시 조선일보와 경쟁 관계였던) A일보 기자들은 퇴직 후에 회사를 욕한다”라는 말을 나는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전직 A일보 기자’도 이를 시인했고, 그 이유를 “조선일보는 퇴사 후에 진로를 배려하는데 B일보는 그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는 설득되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신문 산업은 쪼그라들어갔고 언론사가 사원들의 진로를 배려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이는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가슴에 자크 달고’라는 표현의 의미

조선일보 기자들은 회사에 충성심이 높다. “어떻게 하면 조선일보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를 질문 받은, 내가 아는 한 유명 기업 그룹 최고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회사에 가슴에 자크 달고 근무하는 기자 있어? 없지? 그럼 그냥 ‘2등 유지 전략’으로 가. 내가 보기에 당신 회사가 1등 하겠다는 건 ‘능력 밖’이야.”

‘가슴에 자크 달고’라는 표현은, 조선일보의 한 임원이 과중한 업무 때문에 심장에 이상이 생겼고, 그래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것을 자극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조선일보 사(使)측은 “뉴욕타임즈는 좋은 신문이지만 좋은 직장은 아니다”라는 말을 즐겨 함으로써 “조선일보 기자들은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 가정도 버린 채 업무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사내에 전파했다.

1990년대에 전도유망한 편집국 기자 3명과 편집국 서무가 잇달아 암으로 사망한 것은 이런 이데올로기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들이 사측의 이런 태도를 공개적으로 정면에서 문제시한 적은 없는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가혹한 노동 조건 하에서도 조선일보 기자들이 신문사 밖에서도, 심지어 퇴사 후에도 조선일보를 변호하려고 하는 것은 “충성심이 높기 때문”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왜 충성심이 높을까? (아니, “왜 ‘높았을까’”로 이 질문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요즘 조선일보의 현직 혹은 퇴직 기자들이 조선일보에 충성하는지 어떤지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동질적인 ‘열정’과 ‘이념’으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사회를 우리가 이끌어간다”라고 하는 자부심이다. ‘판매부수 1위’라고 하는 훈장도 이런 자부심에 한 몫 할 것이다.

조선일보에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조선일보 기자들은 사주의 엄격한 통제 하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견해에 찬동할 수 없다. 타율적으로 통제당하는 기자들이 만든 신문이 ‘판매부수 1위’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랬다고 해도, 그들이 퇴사 후에 왜 회사를 변호하려 하겠는가?

조선일보 기자들이 이념으로 뭉쳐 있는 것은, 예컨대 ‘한겨레 신문’이 ‘이념’으로 뭉쳐 있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몇몇 ‘전도유망하다’고 평가된 선배들이 한겨레로 가는 것을 나는 목격했다. 그들은 조선일보가 추구하는 이념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이직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한 후배가 퇴사했는데 그 이유는 “주위에서 왜 그렇게 나쁜 회사에 다니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념의 편향은 한겨레 창간 이후, 그리고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조선일보 간 싸움을 계기로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이념으로 뭉쳐있기 때문”이라는 이런 설명이 불완전함을 나는 안다. 왜냐하면 퇴직 후에 자사를 욕하는 A일보 기자들도 ‘이념’으로 뭉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도 조선일보의 이념에 동의했기 때문에 18년 동안 조선일보 기자로 살았다. 나는 퇴직 후에도 조선일보의 이념에 동의한다.

싫으나 좋으나 나의 정체성에 영향 미쳐

나는 조선일보 구독자다. 조선일보는 나에게 매일 배달되는 옛 친구들, 선후배들의 편지와도 같다. “아이고, 이 친구가 이렇게 좋은 기사를 썼네”, “아, 이 칼럼은 참 정곡을 찌르고 있네”, “아, 이 제목 참 감동적이군”이라고 감탄하면서 나는 조선일보를 읽는다.

물론 “조선일보에는 왜 이런 기사들만 있을까”라는 아쉬움도 가끔 느낀다. ‘세월호’ 보도에 너무 인색한 것이 한 예다. 또 “이런 칼럼은 오히려 조선일보에 해가 될텐데”라고 느낄 때도 있다.

조선일보는 싫으나 좋으나 나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내가 이력서를 쓰면 경력 란의 가장 상단에, 가장 긴 기간 동안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한 내용이 들어간다.

책을 출간할 때, 인터넷에서 페이스북 친구들과 대화할 때, 논술이나 토론에 대해서 강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펙’이 되기도 하고 ‘꼬리표’가 되기도 하는 것이 ‘전직 조선일보 기자’다.

나는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역량과 활동으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에 ‘스펙’이 반갑지만은 않다. 내가 산출한 정신노동의 결과물들을 그 자체 내용으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에 ‘꼬리표’는 더욱 성가시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것은 이 ‘꼬리표’가 내게 준 ‘상처’ 때문이다. 상처는 글을 쓰는 동력이다. 나는 실연당했을 때 ‘수필 쓰기’가 마음을 치유해주며 또 실연의 상처가 훌륭한 글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나는 ‘동업’을 했다가 실패했고 이때 겪은 인간성에 대한 환멸을 ‘소설 작법’ 공부를 하면서 극복한 적도 있다. ‘전직 조선일보 기자로 살아가기’는 나의 또 다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시도다.

전직 조선일보 기자라는 ‘꼬리표’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은 2006년 이후 ‘전직 조선일보 기자’가 한국 사회를 살아낸 결과다. 그것은 ‘김왕근’이라는 한 실존의 기록이다. 그 ‘실존’은 이 사회의 반영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나의 실존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이 사회를, ‘보수’를, ‘진보’를, 조선일보를, 조선일보의 사람들을, 조선일보의 비판자들을, 조선일보 노동조합을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언급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을 비판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소통의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생길 것이 염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람은 상처로 서로 연결돼 있다”고 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대한민국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근대에 입은 수많은 상처 때문이었다”고 했다. 법륜 스님은 “내가 보안사에서 고문당하고 그 결과 깨달음을 얻어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강연하는 것이 부럽죠?”라고 했다. ‘세월호의 상처’가 소중한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함장(含藏)하고 있어서 이걸 분석하면 우리의 ‘미래 전략’과 지향점이 드러나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상처는 곧 에너지이고, 비판은 곧 사랑이다. 나는 사랑의 마음으로 비판할 것인데, 그것이 고깝게 들릴지도 모른다. 내 부탁은, 내 언어가 불완전해서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나의 글에서 ‘사랑’의 마음을 읽어달라는 것이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쓸데없이 상대의 정서를 해치지 않고, 곡진하게 뜻을 전하는 것은 나의 임무이며 ‘팩트올’의 존재 이유와도 맞는 것이리라. /김왕근 전 조선일보 기자(수습 24기) <②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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