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에 대한 단상.

허무하다는 감정은 다른 것을 통해 생겨나며 다른 것을 통해 해결된다. 연애시대에서 감우성은 손예진과의 실연으로 허무함을 느끼며 걸어가다가 멀리 떨어진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그걸 건너기 위해 다급하게 뛰어간다. 여기서 허무감은 실연을 통해 생겨났고 신호등을 통해 해소된 것이다. 순수한 허무감은 흔치 않다. 대부분 욕망의 좌절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세상이 허무하다는 것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허무감에서 벗어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시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면 된다. 물론 세상엔 좀 더 철학적이고 아웃사이더적인 허무감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것에서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허무감은 그런 철학적 의미보다는 욕망의 좌절이나 혹은 재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허무감은 세상이 허무하다는 철학적 명제라기 보다는 욕망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세상을 허무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우울증도 욕망의 좌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욕망의 능력, 욕망할 수 있는 능력이 손상을 입는 것인데 이것도 역시 욕망의 좌절에서 기인한다. 혹은 드문 경우지만 욕망의 포화상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제대로 뭔가를 욕망할 수 없는 상태가 우울증이고 그럴 때 우리는 보통 허무감을 느끼는 것이다. 세상이 허무하다는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지만 그 허무감의 원인인 욕망의 문제는 비교적 해결하기 쉽다. 욕망의 좌절로 인해 욕망할 능력이 손상당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허무감을 느낀다면 해결책은 다시 제대로 욕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욕망은 대상에 대상 a를 투여하는 일인데 이 대상 a라는 것은 원래 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투여하는 것으로 그 대상을 욕망하게끔 해주는 진짜 원인이다. 대상 a가 투여되면 그걸 가져야 내가 완벽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 대상을 가지고 나면 이제 대상 a는 또 다른 곳에 투여되고 그렇게 우리는 무한한 욕망의 연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때 우울증이나 허무감은 어떤 이유에선지 대상 a가 더 이상 어떤 것에도 투여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특정 대상이 대상 a를 먹어버린 채로 상실되었을 수도 있다. 계속 대상 a는 그 대상 안에 있는데 내가 그 대상을 상실할 경우 우울이나 허무감이 오는 것이다. 다른 것에 대상 a를 투여하지도 못하고 계속 그 대상의 상실 안에서 허무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기간이 짧은 경우 적응장애라고 하고 그것은 애도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 애도는 다시 새로운 것에 대상 a를 투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애도를 하지 못하고 계속 적응장애가 길어질 경우 그것은 이제 우울증이 된다. 대상 a는 계속 그 상실된 대상이 먹어버린 채로 있고 다른 곳에는 투여되지 못하게 된다. 실연한 사람이 적응장애 기간을 거쳐 애도를 하고 이제 다른 사람을 사귀어야 하는데 우울증은 그 실연한 대상이 대상 a를 먹어버린 채로 상실되어 다른 사람을 사귀지도 못하고 허무감을 느끼는 상태인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상 a를 투여하는 것은 의외로 하찮은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밥맛이 없었는데 뭔가 먹고 싶어졌다거나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바로 그런 예들이다. 아주 사소한 욕망이라도 불씨가 새로 생겨나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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