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핏_문화] 성소수자의 삶을 이해하는 시작점,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처음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게이가 된 홍석천 씨도 2000년대 초반 처음으로 커밍아웃 기자회견을 했을 때는 거의 모든 방송활동을 접어야만 했을 정도로, 당시만 해도 '동성애'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됐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친구의 고백이 놀랍다고 느껴지거나, '어떻게 동성을 사랑할 수 있지'하는 식의 의문, 나아가서는 거부감이나 혐오가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때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러면서 느낀 감정을 얘기했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느꼈을 첫사랑의 풋풋함과 아련함, 딱 그거였다. 상대가 이성이냐 동성이냐는 논외다. 내가 행운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동성애를 처음 접했기 때문에 나는 그 이후로도 LGBT 문화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시선은 따갑고 쓰리기만 하다.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되고, 심지어 교황마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을 포용하는 시대다. 우리는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머리로는 안다. 물론 이성적으로 이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만,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 그러면 모두가 힘을 합쳐 세상을 더 적극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해를 강요하거나 주입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부드럽게 다가가는 일. 올해 6회째 개최된 서울프라이드영화제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서울프라이드영화제는 우리나라에서 대중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퀴어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성소수자의 존재와 인권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영화제다. 지난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총 7일간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렸다. 이제까지는 서울LGBT영화제로 알려져 왔으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Questioner), 남녀한몸(Intersexual), 무성애자(Asexual)를 덧붙인 LGBTQIA로 확장되어가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 지난해부터 '프라이드영화제'로 이름을 바꿨다. 프라이드(Pride)는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단어로 2010년대부터 성소수자운동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상영작 수도 두 배 가까이 늘어 영화제 자체도 훨씬 풍성해진 데다, 개최되는 장소도 기존 서울극장에서 명동 CGV로 바뀌어 접근성도 높아졌다. 서울 내 가장 비싼 땅이라는 명동에서,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지나다니는 명동 한복판에서 개최되는 퀴어영화제라니! 비록 명동 거리 전체가 영화제로 들썩이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일반 시민들이 오며 가며 영화제 개최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영화제의 위상과 위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는 '다양한 가족 형태와 이를 뒷받침해줄 사회제도화'. 사회 구조의 변화를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지난해 ‘결혼평등과 파트너십’이라는 기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작품 중 하나인 <어바웃 레이> 역시 레즈비언 할머니, 싱글맘, 트렌스젠더 아들이 한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수잔 서랜든, 나오미 왓츠, 엘르 패닝 등 유명배우들이 출연해 사람들의 기대감을 더 높인 데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화제가 됐던 <캐롤>이나 <데니쉬걸>처럼 대중들에게 큰 부담 없이 주제를 전달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가 하면 퀴어영화 특유의 도전정신을 잘 드러내는 영화들도 대거 상영됐다. 아예 '스페셜 프라이드'라는 특별전을 열어 성적 표현의 금기에 도전한 영화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퀴어영화의 본질이 사회적 금기와 검열에 대한 도전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특별전을 통해 영화제의 성격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특히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국내에서 포스터조차 블러 처리가 된 상태로 개봉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 감독판>은 무려 5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성적 금기, 동성애와 이성애,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함 등 다양한 소재와 감정들을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맞닥뜨리는 성소수자들의 삶은 아마 너무 단편적이고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들 안 그럴까? 실제 삶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처절하고, 어렵고, 좌절의 순간이 훨씬 많은 것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매한가지다.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어려워하는 성소수자들, 그래서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대신 전해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일단 알아야 이해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다만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나러 가면 좋겠다. 그렇게 3회, 4회, 5회쯤 되면 자연스럽게 스크린 밖에서도 거리낌 없이 그들의 삶을 들려주는 성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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