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의 ‘인생 피봇’, 자기 삶 찾는 데 걸린 시간 40년

[대한민국에서 여성 CEO로 산다는 것] 5번의 진로변경, 2번의 경력단절 통해 얻은 이진주 ‘걸스로봇’ 대표의 창업 방법론

전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원래 ‘위지아(wisia)’라는 정보추천사이트였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의 첫 시작은 위치 공유 서비스였고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를 만들겠다 나섰던 벤처기업은 ‘트위터’를 세상에 내놨다. 이 기업들은 스타트업 ‘피봇(pivot)’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방향 전환’이라는 뜻으로 보통 쓰이는 ‘피봇’이란 단어는 에릭 리스가 창업 방법론을 담은 저서 ‘린 스타트업’에 언급하면서 아이템이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등 사업 구조를 180도 바꾸는 것을 지칭하는 스타트업 비즈니스 용어로 자리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대학 전공을 바꾸거나 이직을 하는 등 크고 작은 ‘인생 피봇’을 겪는다. 이공계 여성을 위한 소셜벤처 ‘걸스로봇’ 이진주(39) 대표는 19년간 이런저런 분야를 넘나들며 무려 다섯 차례나 진로를 ‘피봇팅’한 케이스다. 남들이 보기엔 ‘산만하고 서로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각각의 경력들이 창업의 근간이 됐다고 말하는 이 대표. 5번의 진로변경 그리고 2번의 경력단절 끝에 그녀가 얻은 창업 방법론은 무엇일까.

다섯 번의 인생 ‘피봇’, 두 번의 ‘동굴의 시간’


지금도 스스로를 ‘로봇덕후’라 칭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이 대표는 첫 진로 선택의 순간 자연스럽게 공대 진학을 택했다고 했다. 공학자의 꿈을 꾸던 그녀를 막아선 건 ‘여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고 견뎌야 했던 아주 작고 사소한 사건이었다.

“한 실험조교가 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어요. 제가 거절을 했더니 납득할 수 없는 학점을 준 거에요. 보복인 것 같은데 뚜렷한 근거가 없으니 따진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식으로 여학생들이 겪는 작은 불이익들이 많았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학점에 그치지만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한 큰 사건이 생기면 어떡하나.’ 그때 공대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공대를 자퇴한 이 대표는 ‘시집을 잘 가려면 선생님이 돼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범대로 재진학했다. 그러나 교사로서의 확신이 없었던지라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졸업 직전 그녀는 선생님 대신 직장인의 삶을 택했고, 삼성전자 해외영업부에 일자리를 얻었다.

“전자 회사다보니 공대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세계더라고요. 당시 회사 내에 여자 비율이 2% 정도였으니까. ‘고명딸’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곳에서 저는 떡국 위에 올라가는 고명같은 존재였어요. 예뻐는 해 주는데 큰 일을 맡기지 않는거죠. 남자동기 보조만 1년 반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그만뒀어요.”

그렇게 첫 직장을 나온 그녀가 새롭게 도전한 일은 아나운서였다. 전문 아카데미에 다니며 3년동안 시험을 보러 다녔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직업에 대한 이해도 높지 않았던 게 패인인 것 같다고 이 대표는 그 때를 회상한다. 결국 아나운서를 포기한 그녀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뒤 바로 첫 아이를 낳았다. 첫 번째 경력단절이었다.

“저는 그 때를 ‘동굴의 시간’이라고 표현해요.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면 3~4년은 무능해지거든요. 다른 일을 하기가 힘드니까 동굴에 갇힌 것처럼 집에서 애만 보는거죠.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아카데미에서 절 아껴주던 선생님이 ‘작은 방송사에서라도 일을 해보라’며 국회방송에 저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렇게 국회를 무대로 기자 생활을 하다보니 또 다른 눈이 열리더라고요.”

기자 일을 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이 대표. 아이가 두 돌 되던 해 공채 시험을 봐 중앙일보 최초의 ‘애엄마 수습기자’가 됐다. 경찰서에서 매일 밤을 새고, 몸도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이른바 ‘사스마와리’(사건 담당 기자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 시절을 견뎌야했지만 그녀는 일이 즐거웠다고 했다. ‘이제야 내게 맞는 일을 찾았구나’ 싶던 때 둘째 아이가 찾아왔다.

“아이가 한 명일 때는 일할 만 했는데 둘 되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때 또 다시 경력 단절을 겪었죠. 열심히 베를 짜다 한 순간에 잘라내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옷감도 실도 아무것도 아닌 느낌. 피눈물을 흘리며 일을 그만두면서 든 생각은 ‘이제 기존 조직에서 일하는 건 끝이다’였어요. 그렇다면 답은 창업이고 내 방식으로 창조한 세계에서 여성이 받는 고통을 줄여주고 싶다는 결심을 했어요. 남편에게 ‘지금까지 희생했으니 이제 내 차례야’라고 말했죠.”

점을 이어 선을 긋다 보면 어느덧 큰 그림이 탄생한다


긴 방황 끝에 창업을 결심한 이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꿈을 되찾는 것’이었다. 남몰래 로봇 피규어를 수집하며 공학자의 피를 숨겨왔던 그녀. 젊은 공대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로봇 공학을 위한 열린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강단에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할 기회가 왔고 그 자리에서 이 대표는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제가 공대생일 때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학생들, 제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 ‘누나’가 생각났다는 남학생들을 만나면서 이공계 여성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40년을 방황했구나’하는 소명을 느꼈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로봇하는 여자들의 네트워크 '걸스로봇’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클릭)

여성 공학자 네트워크를 조직해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진출을 돕는 소셜벤처 ‘걸스로봇’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20~30대를 낭비하지 않고 창업을 좀 더 일찍 결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감히 비유하자면 스티브 잡스가 ‘점을 이어 선을 긋다보면 상상할 수 없던 큰 그림이 된다’고 했잖아요. 제 경력이 산만하고 쓸데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기자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글을 썼던 것, 아나운서 준비를 하며 익힌 화장법과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법 같은 것들이 큰 도움이 됐어요. 이 모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근본이 되는 것들이거든요.”

남들보다 잦은 방향 전환, 그리고 두 아이를 낳은 뒤 보낸 ‘동굴의 시간’. 그 경험을 통해 이 대표가 얻은 창업 노하우는 이렇다.

“일단 저지르세요. 걸스로봇을 창업할 때 저도 비전만 갖고 있었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어요. 기자라는 천직을 찾았을 때, 그리고 걸스로봇의 비전을 세울 때 뼈저리게 느꼈던 건 ‘일단 업계에 들어가보는 것이 중요하다’였어요. 비전이 있고 될 만한 일 같으면 일단 시작하세요. 우선 저지른 뒤 뭐라도 해 보고, 부딪혀보는 거에요. 망해서 폐업하는 것도 공부가 되니까요.”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이들이여.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자들이여. 창업을 꿈꾸는 예비인들이여. 이 대표의 창업 방법론 세 가지를 기억하라. 첫째, 골방에서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저지를 것. 둘째, 아니다 싶으면 빨리 ‘피봇’ 할 것. 셋째, 이거다 싶으면 최대한 버틸 것.

기사/영상편집= 비즈업 김현주 기자 joo@bzup.kr

사진 및 영상 촬영= 비즈업 백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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