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7가지 명언

1. "무릇 잘된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전대의 잘 다스린 세상과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요, 그 사적을 보려면 오직 역사의 기록을 상고해야 할 것이다."

(세종대왕은 역사를 중시하였다고 합니다. 역사에 좀 유별난 분이어서 중국의 역사서인 <자치통감> 해석본을 썼을 정도라고 합니다.

위 발언은 세종이 정치기록서인 <치평요람> 편찬을 정인지에게 명할 때 한 말입니다. 역사공부의 필요성을 잘 함축한 명언이지요.)

2. "내가 깊은 궁중에 있으므로 민간의 일을 다 알 수 없으니, 만일 이해관계가 민간에게 절실한 것이 있게 되면, 너희들이 마땅히 모두 나에게 아뢰게 하라."

(세종대왕이 정사를 보던 중 민간에게 대여한 곡식을 강제로 징수하지 못하도록 명할 때

언급한 말이라고 합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왕도정치의 의의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읍니다.)

3. "관직이란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데려다 앉히는 것이 아니다.

그 임무를 가장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을 택해 임명하는 것이다."

(세종 인사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능력만을 판별해 인재를 뽑았지요.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신하와도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공론을 이끌어냈고 이런 토론의 정치는 국가의 유래 없는 발전을 이끌어내었습니다.)

4.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니, 만물이 그 처소를 얻지 못하여도 오히려 대단히 상심할 것인데 하물며 사람일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진실로 차별 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과 천민을 구별애서 다스릴 수 있겠는가."

(권채라는 신하와 그의 부인이 자기 집안의 노비를 무고하게 죽였을 때 한 발언입니다.

당시의 법으로 사노비는 물건에 가까운 것이라 대부분의 신하들은 권채에게 죄를 묻는 게 옳지 않다고 말했으나 세종은 위 발언을 하며 권채 내외를 형벌로써 다스렸지요.

당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앞서나간 의식입니다.)

5. "설령 오해와 그릇된 마음으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아예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찌 백성을 탓할 것인가."

(토지소송에서 억울한 판결을 받은 조원이라는 사람이 분에 못 이겨 임금이 어질지 못하다고 비방한 일(난언죄)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잡혀 들어갔고 신하들은 임금의 존엄을 해친 만큼 엄벌(참형, 혹은 장 100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세종은 이에 대해 위와 같은 답변을 했고 조원을 풀어줍니다.)

6. "남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위엄과 무력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자는 항상 사람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세종이 회령 절제사 이징옥에게 내린 말입니다. 그는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용맹한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 원망도 많이 받았지요. 이징옥을 아낀 세종은 그의 용맹을 칭찬함과 동시에 과거 장수들의 성공과 실패를 제시하며, 반드시 인의와 자애로 이민족들을 다스릴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7. "지금 세상의 일을 노래로 찬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뒷세상에서 평가하여 그때 노래하게 하라."

(태조와 태종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지을 때 김종서 등이 이에 겸해 현재의 일도 함께 노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상소한 일이 있었습니다.이에 대한 세종의 답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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